로마서 5:1-11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어떤 이는 교회에 나가든, 절에 나가든 착하게 살려면 된다고 말하지만,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의롭다’ 칭함을 얻게 된 것은, 그 사람이 착하고 많은 선행을 하여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로마서 5:1]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성도가 누리는 축복 중의 축복이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얻어, 하나님과 화평한 관계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과 원수되는 것입니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는 하나님과 원수지간으로 사는 것보다 무섭고 두려운 일은 없습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형통해도 하나님과 원수지간이 된 사람은 가장 불행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영원한 심판이 그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5:3]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는 환난 중에도 즐거워 하는 삶을 살 것을 말합니다. 여기 ‘환난’은 외적 환경에 의해서 생기는 궁핍, 곤란, 근심, 재난을 나타냅니다. 로마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많은 핍박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초대교회의 신자들은 여전히 고난 가운데서도 즐거워하며 자신의 믿음을 지켰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그들은 ‘환난’을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가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로서 영광에 참예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 구원을 이루어가는 데 있어 필수 코스로 받아들였습니다.

[롬 8:17]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로마서 5: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忍耐生老练。老练生盼望。

환난 중에 인내하라 했고, [4절]에 인내는 연단을,연단은 소망을 가져온다 했는데, 환난도 알고, 인내도 알겠는데 연단은 또 무엇입니까? ‘연단(老练)’이란 단련받아 ‘성숙한 인격(character)’을 말합니다. 연단이란 불을 통과하여 일체의 불순물이 다 타 없어진 순금과도 같은, 여러가지 시험과 고난 중에서 인내로 믿음을 지킨 사람에게 나타나는 ‘훌륭한 품성’ 인 것입니다. 믿음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환난과 시련을 인내하는 연단의 과정을 거쳐 얻는 것입니다.

○ 요즈음 도로에서 주차로 방해가 되었다고 순간의 분노를 참지 못하여 골프채로 상대방의 차를 부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이를 잘했다 칭찬합니다. 그러나 이런 성격은 그 사람의 평생을 불행하게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환난을 당하면 인내하고 믿음으로 승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연단’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에게 환난을 허락하십니다. 환난을 거치면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더 믿음으로, 더 순수한 신앙인 모습으로 서게 되는 것입니다.

○ 마지막으로 살펴보는 ‘소망’은 연단을 이룬 사람에게 내리는 특별한 축복입니다.소망은 미래의 구원을 말하기도 하지만 죽어서 가는 ‘천국에 대한 소망’ 만이 아닙니다. 여기서 소망은 장래 천국이 아닙니다. 여기서 소망은 좋은 것을 기대를 나타내는 ‘마음 상태’를 말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늘 ‘일을 주님께 맡기고 기도하는 중에 기대하는 소망’ 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에 좌절하지 말고 맡기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이 것을 ‘산 소망’이라 말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아무것도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내 호주머니에 돈이 떨어지고, ‘내일 하늘이 무너진다’ 하여도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나의 기도를 듣고 계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나의 소망이 '산 소망' 인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3]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시어 우리를 위한 산 소망의 중보자가 되셨습니다. ○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그것은 자기 최면일 뿐입니다. 세상의 정치가들은 환상적인 미래를 제시하며, 사람들은 미래의 풍요를 꿈꾸며 현재를 인내하고 극복하라 말하지만 그렇다고 매순간 찾아오는 죽음과 패배의 공포로부터 자유한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스스로의 장래를 위하여 온갖 생각을 다하며, 머리를 굴리며 애쓰고 힘써서 내일을 이루어 가려 하지만 이것이 참 소망 있는 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 야곱의 아들 요셉은 인내의 표상입니다. 요셉은 그의 나이 17살에, 형제들에게 노예로 팔려 애굽 바로 왕의 경비 대장인,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 생활을 했습니다. 보디발 아내가 그에게 성추행의 누명을 씌운 결과, 요셉은 까닭없이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감옥에 갇혀서 수 년이 흐른 후에,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을 담당하는 관원장이 감옥에 들어온 일이 있었습니다. 관원장들은 둘 다 꿈을 꾸었는데, 요셉이 그들의 꿈을 해몽해 주었습니다. 요셉의 해몽대로 술을 맡은 관원장은 옥에서 풀려나게 되었고, 요셉은 자신의 억울함을 바로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러나 왕의 술을 맡은 관원장은, 요셉의 간절한 부탁을 까마득히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나 2년 뒤에 요셉은 바로 왕의 꿈을 해몽해 주는 것이 계기가 되어서,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통해서 그 시대의 기근을 해결하게 하셨고, 요셉을 사용해서 요셉의 가족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버렸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인내하는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만을 바라는 성숙한 신앙인으로 성장하였고 때가 이르매 하나님이 그를 불러 세상을 구원하는 자로 쓰신 것입니다.

◉ 지난 복지회의 장소에서 주인이 절반의 공간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정리하라 했을 때는 다소 실망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너무 많은 사용하지 않는 짐들을 치우는 과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후에도 몇 차례 정리를 하게 하셨습니다. 수개월 전부터 새로운 이사 장소를 구하여 많이 다녔습니다. 구로동에서 그나마 마음에 드는 장소를 보았는데, 곧 다른 사람에게 계약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적지아니 실망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그 장소는 주차나 실내장식을 새로 해야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사장님과 저희는 인내함으로 기도했고, 결과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나은 장소를 허락하셨습니다.

○ 주님은 오늘 내게 평강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인생의 주인 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한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기뻐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 구약성경은 장차 있을 구원의 날을 말하였지만,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으로 구원이 이미 임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구원을 미래의 일로 여기지만, 이제 구원은 그리스도 안에서 현재가 된 것입니다. 마태복음에 세례요한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이 말은 (죽은 뒤에 가는) 천국을 말하는 것이 아닌 “주님이 우리 가운데” 오셨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었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으며, 성령의 도우심을 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생명이신 주님이 내게 오셨으니 구원 받은 것이고,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없으면 이미 심판받아 죽은 존재인 것입니다.

○ [고린도전서 13:13]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 이라 했습니다. 소망은 믿음, 사랑과 함께 그리스도인의 기본 요소입니다. 이 요소들 중 어떤 한 요소라도 없으면, 다른 두 요소가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없이는 소망이 있을 수 없습니다. 소망이 없으면 믿음 자체도 공허하고, 사랑도 무익한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사람을 사랑으로 대한다 하더라도 그리스도 안에 소망이 없다면 헛된 것입니다. ○ ‘산 소망’ 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5: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이 말은 어떤 경우에도 그리스도인의 소망이 흔들리거나 연약해지지 않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늘 함께합니다. 사람은 늘 거짓말을 하고 약속을 파기하지만, 하나님은 무슨 일이든 그 분의 작정하신 바를 행하시며 약속을 성취하시는 분이십니다. 바울은 이 소망의 근거를 하나님의 사랑에 두고 있습니다.

[로마서 5: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란 ‘우리가 아직 도덕적으로 무기력한 상태에 머물러 있을 때’ 를 말하는 것으로, 우리 자신의 노력으로 우리가 새사람이 될 수 없음을 말합니다. ‘경건치 않은 자’ 란 본래 하나님과 원수된 자. 죄 가운데 있는 자. 영원한 멸망을 향해서 나아가는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의로운 자를 대신해서 죽는 것도 매우 드문 일인데, 하물며 불의한 자를 위해 죽는다는 것이 어디 가당한 일인가요? 그럼에도 주 그리스도께서는 연약한 자, 경건치도 않은 불의한 자를 대신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 예수님이 우리의 소망이 되셨습니다.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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