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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5:1-11 <말씀에 의지하여>
누가복음 5:1-11 <말씀에 의지하여>
[누가복음 5:1-3절]을 보면 주님은 갈릴리 호숫가에서 무리에게 말씀을 가르치실새 시몬 베드로의 배 위에 올라 가르치셨습니다. 이날 베드로 일행은 밤새 수고하였으나 고기잡이에 실패하고 허탈한 심정으로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어떤 이는 예수님이 우연히 베드로의 배를 만나 앉으셨다.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우연이 아닙니다. 세상에 우연은 없습니다. 물론 주님이 일차적으로는 많은 무리에게 복음을 효과적으로 가르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다른 배가 아닌 시몬 베드로의 배에 올라 가르치신 데에는 또 다른 이유, 즉 주님이 베드로를 보시고 친히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장차 베드로가 주 예수님을 따라 제자의 길을 선택할 것을 아셨습니다.
○ 어떤 사람은 “하나님은 너무나 큰 분이라 우리가 볼 수 없고 우리는 너무나 작은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지 않는다.”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너무 크셔서 우리가 볼 수 없을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은 나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을 다 지켜 보고 있는 분입니다. [마 10:30]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라 했습니다.
○ [4절]에 보면 무리를 향해 가르치기를 마친 주님이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명령하셨습니다. 만일 제가 베드로라면 이 명령을 받고 어떻게 했을까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거절하지 않았을까요? 베드로는 전문 어부로서 갈릴리 바다에서 수십년 물고기 잡아 온 경험과 노하우(know-how)를 지닌 사람입니다. 그에게 깊은 데로 가서 고기를 잡으라는 주님의 명령은 일반 어부라도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명령이었습니다. ○ 갈릴리 바다에서 물고기는 밤에 잘 잡힌다고 합니다. 그것도 물이 깊지 않은 곳에서 잘 잡힌다고 합니다. 그러니 베드로에게 주님의 명령이 얼마나 무지한 말처럼 들렸겠습니까? 인간적으로 보아 이 말은 어부를 무시하는 말로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였습니다.
“선생이여 우리들이 맘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5절] 하고 그대로 실행했습니다.
○ 베드로는 아직 예수님을 ‘선생이여’하며 부르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방금 바닷가에서 그물을 씻으면서 들은 이분의 말씀은 참으로 훌륭하고 감동적인 지금까지 듣지 못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에게 아직 이 사람은 많은 훌륭한 선생 중의 한 사람, ‘선생’일 뿐이었습니다. ‘주님’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베드로는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한다 했습니다.
○ 베드로는 이제 몇 시간에 걸쳐 그물을 다 씻고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그는 밤새 물고기를 잡는다고 수고하였고 피곤합니다. 다시 그물을 던진다는 것은 너무 성가신(啰嗦) 헛수고하는 일일 것입니다. 그가 깊은 바다에 나가 그물을 던지면 물고기를 잡는다는 소망과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을 따른 것은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듣고, 기뻐하였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안에서 ‘권위 있는 말씀’으로 들은 것입니다. ○ 믿음은 듣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세상이 창조되고, 세상을 바꾸고, ‘나’라는 사람이 만들어지고, 나를 변화시키는 것은 말씀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말씀이 내게 권위 있는 말씀으로 다가와야 합니다. 그리고 들은 말씀을 실천할 때 기적이 따르는 것입니다.
○ 우리는 이방 백부장의 하인이 죽게 되었을 때 그가 예수님 앞에 나와 간구한 사건을 기억합니다. 그가 예수님 앞에서 “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할 때, 주님은 “이스라엘 중에 이만한 믿음을 만나지 못하였다.” 칭찬하였습니다. 그리고 하인이 나음을 입었습니다. 백부장은 예수님을 권위자로 생각하였고, 예수님의 말씀이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지금 세상은 모든 권위가 무너진 세상입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의 권위가 무너지고, 집에서 부모의 권위가 무너지고, 세상에서 집권자의 권위가 무너지고, 교회에서 하나님의 권위와 성경의 권위가 무시되고 있습니다.
○ 모든 권위는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이며 하나님이 세우신 것입니다. 바울은 공회에서 그가 대제사장을 비방하였다는 책망을 들었을 때 바로 그 자리에서 “내가 알지 못하였노라. 하며 기록하였으되 너의 백성의 관리를 비방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사과하였습니다.
○ 베드로가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렸다는 것은 그가 예수님의 말씀을 권위 있는 말씀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말합니다.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따른다' 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과연 헛수고하였습니까? 주님의 무식함이 드러났습니까? 아닙니다. 베드로의 순종은 참으로 놀라운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6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이는 베드로가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한 결과입니다. 그물이 찢어지도록 엄청나게 물고기를 잡았고, 다른 배에 나눠 실었어도 두 배가 물에 잠길 정도로 많이 잡았습니다.
○ 주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되 풍성하게 베풀어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세상의 가진 자들이 가난한 자들에게 몇 푼 적선하듯이 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실 때도 남자만도 오천 명이 배불리 먹고도 남은 것이 큰 광주리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찰 정도로 걷히게 하셨습니다.
◉ [열왕기상 17장]에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엘리야는 사르밧 성문에 이르러 한 과부가 그 곳에서 나뭇가지를 줍는 것을 보고 말합니다. “청하건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 그가 가지러 갈 때, 엘리야가 또 그를 불러 말합니다. “청하건대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그가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一把)과 병에 기름 조금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에 그 과부는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습니다.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16절]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했습니다.
○ 실천과 순종은 믿음의 표현입니다. 요즈음 많은 기독교인들이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하나님의 기쁨을 구하지 않고, 찾지 않고, 순종하지도 않는 것을 봅니다. 이는 무엇을 말합니까?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거짓 신앙입니다.
[누가복음 5:8]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베드로가 일어난 일을 보고 주님께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베드로는 이 일을 통해 주님이 세상의 인간 이상의 존재임을 안 것입니다. 물에 밖에 서서 저 먼 호수 중간의 깊은 곳에 물고기가 있음을 안다는 것은 인간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이 신적 권능의 소유자이심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주님의 ‘무릎 아래’ 엎드렸습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주’라고 불렀습니다. 조금 전에 ‘선생’이라고 부른 것과는 대조를 이룹니다. 예수를 하나님으로 높인 것입니다. ○ 사람이 어두운 곳에 있으면 자기 얼굴이나 몸에 더러운 것이 묻은 것을 잘 모릅니다. 그러나 밝은 곳으로 나오면 자신의 몸에 더러운 것이 묻은 사실을 발견합니다. 시몬 베드로가 존귀하신 주님을 발견하는 순간 자신의 죄인 됨을 깨달은 것입니다. 자신의 죄인 됨, 어리석음, 작은 자임을 아는 것, 이것이 곧 신앙생활의 출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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