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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2.01 시편 25:1-7 <주를 의지하였사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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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5:1-7 <주를 의지하였사오니>
시편 25:1-7 <주를 의지하였사오니>
[시편 25]은 원수들의 핍박으로 인하여 고난 중에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하는 다윗의 비탄의 시입니다. 그러나 이 시는 고난에 대한 비탄보다는 대적들에 의해 고난을 받는 중에도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며, 믿음을 지키리라는 결의를 보여주는 시입니다.
[1절]에 다윗은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나이다"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이 고백으로 우리는 그가 지금 매우 어려운 처지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곤경에 처하여 있음은 [2절]에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의 원수들이 나를 이겨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그런데 우리가 유의할 것은 지금 이 시대에 우리의 원수는 나의 길을 막고 있는 사람이나 환경이 아닙니다. 이 모든 재난과 고통 미움과 다툼의 배후에 있는 악한 영들, 마귀가 곧 우리의 원수입니다.
여기서 ‘우러러 보다’라는 것은 ‘소망을 두다’라는 말입니다. 즉 다윗은 비록 원수들로 인해 괴로움을 받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는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다윗의 소망은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께만 있었던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환경의 지배를 받습니다. 환경의 변화에 따라 사람들은 마치 부평초처럼 생활합니다. 부평초는 뿌리가 땅에 박혀있는 식물이 아닌 물에 떠 있는 풀입니다. 부평초와 같은 사람은 세상에 목적도 의지도 없이 물 흐르는 대로 자신을 맡겨 사는 사람입니다. 그들에게 소망은 단지 좋은 환경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세상은 마귀가 공중권세 잡은 세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 다윗은 환경의 변화와 관계없이 하나님이 유일한 소망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만 의지하였습니다. 다윗은 그의 환경이 좋지 않을 때 낙망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통하여 그 환경을 개선하고자 하였습니다. 우리는 환경의 변화에 흔들리는 사람이 아닌, 세상의 유혹에 마음을 빼앗기는 사람이 아닌, 세상을 고치는 소금과 빛이 되어 살아가는 사람, 다윗왕이 한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지금 세상을 보면 이 세상은 우리의 능력으로 도무지 감당할 수 없고 도리어 절망적인 전망이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다윗처럼 견고함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시편 121:1,2] "내가 산을 항하여 눈을 들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다윗은 왕이 되기 이전에 나라를 위해 전쟁터에 나가고 사울 왕에게 충성하였으나 사울의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가 왕이 된 후에는 여러 정적들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다윗의 충성심은 인정받지 못했고, 다윗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은 다윗을 배반했습니다. 다윗은 사람들에게 부끄러움을 당하는 듯하였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그와 함께하셨고 그는 승리의 개가를 불렀습니다.
○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 이전에 남유다를 구한 선지자가 이사야입니다.
[이사야 50:7]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내가 부끄러워 아니하고 내 얼굴을 부싯돌같이 굳게 하였은즉 내가 수치를 당치 아니할 줄 아노라." 하였습니다.
○ 사실 이사야는 사실 인간적으로 자신의 백성에게 수치를 당하였습니다.
[이사야 50:6]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이사야가 당한 고난과 수치를 말합니다. 동시에 예수님이 당하실 고난과 수치를 말하기도 합니다. 분명 예수님도 같은 고난을 받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7절] 이사야는 여호와께서 도우심을 입어 자기 얼굴을 부싯돌 같이 굳게 하였다 했습니다. ‘부싯돌’은 매우 단단한 돌입니다. 이것은 여호와의 종이 치욕과 고난과 수치를 당할지라도 낯빛이 변하지 않고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며, 전혀 부끄럽거나 약하여지지 않을 것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여호와의 도우심에 대한 확신과 진리 위에 서 있음을 알기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들 예수님을 무덤에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어둠의 땅에 소망과 생명의 길을 여신 것입니다.
[이사야 61:7] 너희가 수치 대신에 보상을 배나 얻으며 능욕 대신에 몫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할 것이라 그리하여 그들의 땅에서 갑절이나 얻고 영원한 기쁨이 있으리라
○ 이스라엘은 환난 날에 인생을 의지하였다가 부끄러움을 당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대신에 애굽과 같은 이방을 의지하였다가 그들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나라가 패망하여 백성은 이방 땅에 포로로 끌려가는 수치를 당하였던 것입니다.
○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윗의 통치 후반기에 다윗에게는 최대의 위기였던 다윗의 아들 압살롬의 반역 사건이 있었습니다. 압살롬과 그의 일당은 거짓으로 백성들을 속이고 민심을 도둑질하여 다윗에 대하여 반역하고 왕권을 찬탈하였습니다. 다윗은 황급히 왕궁을 빠져나와 피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다윗에게는 다시 소망이 없어 보였습니다. 다시 왕권을 되찾을 가망성은 거의 없었습니다.
○ 그가 도피 중에 사울의 친족 한 사람 시므이가 나와 다윗과 왕의 모든 신하들을 향하여 돌을 던지며 저주합니다. [삼하 16:5]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를 이어서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기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이므로 화를 자초하였느니라” 하는지라. 왕의 한 신하가 말합니다.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하건대 내가 건너가서 그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하니 다윗 왕은 말하기를 “내버려 두어라.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다” 그러나 이때도 다윗은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삼하 16:12) “여호와께서 나의 억울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날 그 저주 까닭에 선으로 내게 갚아주시리라”
압살롬의 모사였던 아히도벨은 [삼하17:1] “오늘 밤에 내가 일어나서 다윗의 뒤를 추적하여 그가 곤하고 힘이 빠졌을 때 기습하리라” 주장합니다. 그러나 압살롬은 그의 계략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 반대로 “다윗에게는 전쟁에 익숙한 사람, 용맹한 자가 많은즉 길에 매복하였을 수가 있습니다. 더 많은 군대를 모아 다음 날에 쳐야 합니다.” 하는 사람의 주장을 받아들입니다. 이에 아히도벨은 자신들의 반역이 실패로 돌아갈 것으로 알고 고향으로 돌아가 자기 집에서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사실 아히도벨은 모사 중의 모사였던 것입니다.
뒷날 위기를 넘긴 다윗의 신복들은 전열을 정비하여 압살롭의 군대와의 싸움에서 이겼고, 압살롬은 그가 자랑하던 머리가 상수리나무에 걸림으로써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해야 했습니다. 실로 하나님은 다윗의 억울함을 친히 갚아주신 것입니다. 전쟁의 승패는 하나님에게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
‘연단한 금’은 변치 않는 순전한 믿음을 말합니다. 믿음은 금보다 귀한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흰옷을 사서 입으라' 함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죄에서 벗어나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 거하라’ 하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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