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빌립보서 1:12-21 <나의 간절한 기대>
빌립보서 1:12-21 <나의 간절한 기대>
[빌립보서 1:12]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12절은 ‘형제들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로 시작하고 있는데, 이 표현을 빌립보 서신 다른 곳에도 6회 기록하고 있고, 다른 서신에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지금은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이고, 혈연관계도 아니지만, 진실한 신앙의 동반자로서 영원한 천국에서의 형제자매로 인식했음을 보이는 것입니다.
바울은 12절부터 26절까지 간증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자신의 상황과 심경을 빌립보 교인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먼저 ‘나의 당한 일’을 말하는데, 이는 바울이 여전히 로마 감옥에 미결수로 연금 상태에 있음을 말하는 것일 것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그 자신의 상황을 진술하여 말하는 초점이 ‘자기 자신'이 아닌 ‘복음전파의 진전’에 있음을 봅니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강조하여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상황이 더 큰 복음의 진보를 가져온 일을 기뻐하고 있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1:13]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 시위대 안과 기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사도행전 28:30]에 의하면 바울은 2년여 기간 셋집에서 시위대의 통제를 받으며 상당한 자유를 누리며 복음전파의 생활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주의할 부분은 ‘시위대’라는 단어 프라이토리온(πραιτώριον)입니다. 이 단어는 [막 15:16]에서 ‘브라이도리온’이란 헬라어 그대로 쓰이고 있는데, 이는 총독의 관정, 로마의 집무 장소입니다. 이로 보아 바울은 로마 관정의 감시를 받았으나 여전히 자유롭게 로마의 시위병들, 관헌들, 황제의 친척들, 그 밖의 방문자들을 만나서 복음을 전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1:14]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을 인하여 주 안에서 신뢰하므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말하게 되었느니라.
그렇다면 ‘매임을 인하여 주 안에서 신뢰한다.’라는 표현은 무슨 의미일까요? ‘신뢰한다.’ 이는 ‘~을 확신하다.' 혹은 ‘담대하여 용기를 얻다’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번역하면 “나의 매임 때문에 주 안에 형제들이 더욱 담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함에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는 바울이 옥에 갇혔으나 변함없는 바울의 의연한(毅然的) 태도와 형편이 오히려 성도들에게 위로를 주고, 대담하게 만드는 동기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바울은 주후 61-63년까지 로마 감옥에 투옥되어있었습니다. 이러한 바울의 투옥은 인간적인 시각에서 보면, 복음전파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할 만한 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지난날 많은 동료와 성도들은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을 반대하며, 예루살렘과 가이사랴에서 그가 받는 고난을 안타까워하였고 하나님의 복음 사역의 길을 막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바울의 투옥이 로마 관원들과 일반 성도들에게 복음 전파하는 계기가 되고, 이제 로마에까지 하나님의 복음의 불길이 왕성하게 일어남을 본 것입니다. 일반적 상황에서는 로마 관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일은 불가능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바울의 여정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빌립보서 1:15]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이어지는 [15-17절]에서는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는 자들 가운데는 선한 의도를 가진 자가 있는 반면에 그렇지 않은 자도 있음을 밝히며,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들 중에 상반된 동기가 있음을 말합니다. ‘착한 뜻으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바울의 매임이 로마인들에게 전한 복음은 이단이 아닌 진리에 기초한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가 참 구원자 되심을 알리는 기회가 된 것을 안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파하는 자 중에 ‘어떤 이들'은 바울이 로마에 이르기 전에 이미 로마에 있었던 유대주의적 경향을 가진 교회의 지도자들로서 이들의 마음은 사람을 구원하는 일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확보된 자신들의 지위가 바울의 전도 때문에 흔들리게 되자 시기와 다툼으로 전도에 힘쓰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고린도 교회가 보인 파당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 그들은 자기 자신의 이익과 명예를 위해 분파를 형성하여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복음전파는 결코 자기의 유익이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행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복음 증거의 사명은 오로지 영혼을 구원하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는 일이 되도록 하기 위함이라야 합니다.
물론 바울은 본문에서 다툼으로 복음을 증거 하는 모습조차 긍정적으로 말하고 있지만, 투기와 분쟁으로 행해지는 복음전파 사역은 결국, 당파를 만들게 되고, 교회가 몇몇 사람들의 욕망의 수단으로 변질하게 되고, 또 이들의 전도의 노력은 전도 받은 사람에게 신앙이 바르게 성장하도록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 저는 2020년 처음 교회를 시작할 당시 중국에서 알던 한국에 이미 들어와 있는 몇몇 청년들이 있어서, 그들이 저와 함께하여 예배를 돕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웬걸요, 교회를 다니려면 저들이 다니는 교회에 다녀야 한다며 저와 함께하던 청년조차 자기 교회에 가자고 말하더랍니다. 물론 기존에 와 있던 청년의 신앙이 성숙하지 못해 한 말이겠지요.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교회가 이를 조장하고 방치하는 것입니다.
○ 저는 분당우리교회 담임목사인 이찬수 목사님이 “교회의 장로 권사 중직 되는 분들은 주위에 작은 교회에 참석하여 돕는 이가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말씀하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 저는 지금, 이 교회가 작아 도움을 바라…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큰 교회는 큰 교회의 장단점이 있고, 작은 교회는 작은 교회의 장단점이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 ‘네 교회 내 교회’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나라 안에서 한 가족입니다. 물론 많은 사람의 필요에 충족하는 많은 프로그램과 활동이 있으면 좋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앞서 교회가 감당해야 할 기본은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성숙한 믿음의 자리에 이르는 것입니다. 목회자의 사명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신앙의 중매자 역할을 잘 감당하는 것입니다. 교인 수가 늘고 교회의 규모가 커지는 것이 목적일 수 없습니다.
[빌립보서 1:19] 이것이 너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바울은 지금 빌립보 교인들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자신의 가는 길에 마지막까지 힘써 감당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땅에서의 성공과 부귀 명예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21절]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했습니다.
○ 복음 전도의 근본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기초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전파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베드로 사도는 말하기를 [벧전 1: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했습니다. 바울은 멀리 로마에서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빌립보 사람들에게, 천국의 소망을 함께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형제자매로서 편지하고 있습니다.
◎ 어제 동기 목사님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중국 심양에 갔다 왔다며 소식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교회 현황이 어떠냐? 제게 묻기에 소수의 인원으로 예배를 드린다 했습니다. 저를 위로하며 하는 말이 “한 생명이라도 구원으로 인도하는 일을 감당하여 수고하고 있으니 얼마나 귀하냐?” 하는 것입니다.
'설교2025'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디모데전서 2:1-8 <간구와 기도와 도고> (5) | 2025.03.23 |
|---|---|
| 데살로니가전서 5:12-18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 (3) | 2025.03.16 |
| 에베소서 1:11-19 <하나님의 기업> (1) | 2025.03.02 |
| 예레미야 10:11-16 <그의 택하신 기업> (2) | 2025.02.23 |
| 이사야 43:1-11 <두려워 말라> (0) | 2025.02.1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