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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0:1-10 <목자의 음성>
요한복음 10:1-10 <목자의 음성>
양이 우리로 들어가는 문은 하나밖에 없으며 양들은 밤이 되면 우리 속에 들어가 보호받습니다. 여기서 ‘양의 우리’는 구원이 주어지는 주님의 품으로 복음이 선포되는 ‘교회’를 비유하는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도가 교회 안에 있어야 구원받는다.” 말하면 이단이라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은 정상적인 신앙 생활하기 어렵습니다.
목자는 양의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갑니다. 그 ‘문’은 [7절]에 밝힌 바와 같이 구원의 유일한 방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이 문은 목자가 지키고 있었기에 도적들이 우리 안으로 들어가려면 담을 넘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자신 문을 통하지 않고 양을 훔치려고 담을 넘는 자, 절도며 강도라 말씀하십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부류의 사람, 교회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찾고 예수의 십자가를 말하기보다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축복만을 말하고, 웅장한 건물과 웅장한 예배 의식에 만족을 주고, 끊임없는 교회의 행사와 봉사를 신앙생활로 착각하게 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 양은 눈은 양옆에 있어서 고개를 돌리지 않고도 주변을 넓게 둘러볼 수 있지만 시력이 좋은 편이 아닙니다. 양은 사나운 짐승이 가지고 있는 뿔이나 날카로운 이빨, 뛰어난 속도와 같은 도주 수단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양은 발밑의 그림자, 연못, 고인 물, 작은 장애물에도 쉽게 놀라고, 작은 소리에도 민감합니다. 양이 이런 지속적인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건강이 급격히 악화됩니다. 양이 목자 없이 생명을 보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사람은 참으로 약하고 무지한 양 같은 존재입니다.
[10: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이름을 각각 불러’라는 말은 목자가 자기에게 속한 양들에 대해 하나하나 개별적으로 철저하게 알고 있음을 뜻한다. 그 수많은 양을 하나하나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영혼의 목자 되신 예수께서는 우리 각 사람을 개인적으로 모두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처한 형편, 해결해야 할 문제, 내면의 고뇌 등 모든 것을 완전하게 아시고 적절한 방법으로 인도하십니다. 따라서 목자이신 예수님에 의해 이름이 불러진, 그분의 인도를 받는 성도들은 때때로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있을지라도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세를 가지신 목자가 우리의 보호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10:4]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본문의 말씀 중에 우리에게 생소한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양을 다 내놓은 후에”의 ‘내어놓은’ 에 해당하는 ‘에크발레’입니다. 헬라어 원형은 ‘에크발로’(ἐκβάλλω)인데 에크(ἐκ)는 "~밖으로", 발로(βάλλω)는 "던지다", "몰아내다"라는 의미입니다. 에크(ἐκ)와 발로(βάλλω) 단어가 합쳐져 "밖으로 던지다" "강제로 내쫓다"라는 의미가 됩니다, 양을 내어놓는데 주님은 왜 갑자기 이 같은 강제적 의미의 단어를 쓰셨을까요? 많은 양을 사육하다 보면 때로 어떤 양은 목초지로 나가 먹이를 먹는 것보다 우리에서 쉬는 것을 더 좋아할 수도 있고, 목자의 부름에도 불구하고 목자를 따르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는 강제적 방법으로 양을 우리 밖으로 몰아내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동 역시 양을 미워하기 때문이 아니라 양에게 더 큰 유익을 주기 위한 목자의 깊은 사랑에 의한 행동입니다. 그러므로 양은 싫어도 목자의 음성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이는 계속해서 따라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양들은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목자가 인도하는 곳으로 따라갈 뿐입니다. 목자가 어디로 가든지, 언제든지 그 뒤를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 ‘아는 고로’라는 말은 ‘사귀어 알다’,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라는 뜻입니다. 그리하여 양은 그 목소리를 쉽게 구별하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이라는 이름은 가지고 있으나 주의 목소리를 듣고서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는 주님과 밀접한 관계를 갖지 못했으므로 그분의 음성을 바로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양들이 목자의 음성을 모르면 길을 잃어버리듯 우리 역시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면 그분이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갈 수 없는 것입니다. 주의 목소리를 정확히 구별할 줄 모르면 사단의 미혹에 쉽게 넘어갑니다. 왜 주 예수를 믿는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이 왜 때때로 병들고, 사고가 나고, 생각지 않은 어려운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물론 신앙생활을 잘하는 사람에도 고난이 임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다가, 혹은 하나님의 알 수 없는 계획으로… 그러나 대부분 경우에 우리가 당하는 환란은 우리 스스로 초래한 경우가 많습니다.
◎ 저는 많은 조선 교포들이 자녀를 조부모에게 맡기고 부모는 돈을 번다고 한국에 와서, 열심히 재물은 모았으나 나중에 한국에 데려온 자녀는 공부와 담을 쌓아서… 공부해도 머리에 들어가지 않고, 날마다 핸드폰 게임에 빠져 산다거나, 아이가 정서불안으로 문제를 가진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누구의 죄입니까? 부모가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제 마음대로 살아온 까닭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렇게 살지 않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인도하심,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살아가야 합니다. 주의 음성을 알지 못하고, 분변하지 못하니 죄악의 길을 가다가 망하는 길로 가는 것이고, 사망에 이르는 것입니다.
“목자의 음성을 듣는 성도는 들어가도 나와도 주님의 풍성한 은혜를 받는다” 하셨습니다.
[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여기서 주님은 두 가지 은혜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죽어가는 양을 구원하시는 은혜요 둘째는 그렇게 소생된 양을 자기 것으로 삼으시고 꼴을 먹여 길러 주시는 은혜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은 거짓 목자인 종교 지도자들이 주는 엄격한 종교 규례와 율법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야 했습니다. 인간은 율법으로, 인간의 선행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었고, 사탄의 궤계와 거짓 목자로 인해 사망의 길에 있었습니다. 사탄의 궤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어디 있냐?, 세상에 이적과 기사가 어디 있느냐?” 거짓말하는 것입니다. “기도해도 소용없더라” 속이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를 위하여 주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주시어 대속하시고 하늘의 기업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은혜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입니다.
◎ 허드슨 테일러는 중국선교에 대한 열망이 불타고 있었습니다. 1850년 5월 중국선교를 위한 첫 준비로 의학공부를 시작했는데 동시에 테일러는 “중국에 가게 되면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영국을 떠나기 전에 하나님의 도우심과 공급을 받는 영적 훈련받아야 하리라” 생각하고, 빈민촌에 방을 얻어 어려운 환경에 적응하며 어떠한 어려움이 온다 해도 사람을 도움을 청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겠노라고 결심했습니다. 어느 토요일 테일러는 하루 종일 전도와 심방을 하고 밤 10시에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때 어떤 남자가 찾아와 죽어가는 자기의 아내를 위해 기도를 부탁하였습니다. 테일러가 그 사람을 따라서 심방을 가보니 초라한 방에는 다섯 명의 아이들이 영양실조에 걸려 있었고 냄새나는 돗자리 위에 갓난아이를 품에 안은 한 여인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테일러는 주머니 속에 있는 은화를 의식하면서 속으로 “크라운 은화 대신에 잔돈이 있었다면 기쁜 마음으로 1실링을 줄 수 있었을 텐데” 생각했습니다. 그 은화를 통째로 준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당장 내일 먹을 끼니조차 없는 형편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양심은 날카롭게 그를 꾸짖었습니다. “이 위선자야, 구원받지도 않은 이들에게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라 말은 잘하면서 네 주머니 속에 은화는 통째로 줄 수 없단 말이냐!” 이런 숨 막히는 갈등 속에 기도하고 일어서려는 순간…
그의 마음속에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라'는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결국 그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은화를 그에게 주면서 신실하신 하나님을 증거하고 돌아왔습니다. 다음 날 아침 끼니가 없어 걱정하고 있는데 집주인이 소포 꾸러미를 하나 건네주는 것이었습니다. 놀랍게도 그 속에는 금화 한 개가 들어있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훗날 그가 선교 현장에서의 수많은 역경 가운데서도 굴복하지 않고 기도로 승리하는 비결을 얻었습니다.
约翰福音 10:1-10 《牧人的声音》
羊进入羊圈的门只有一个,到了晚上就羊进入羊圈里得到保护。这里的 “羊圈” 可以说象征着赐下救恩的主的怀抱,就是“教会”。实际上,在这个世界上,教会就是主怀抱之作用的场所。如果说 “信徒必须在教会里才能得救”,人们可说异端。然而,不在教会里过信仰生活的人,很难过正常的信仰生活。
牧人通过羊的门进入羊圈。这“门” 指的是唯一救恩的耶稣基督。因为这扇门有牧人看守着,所以盗贼若想进入羊圈,就只能翻墙。耶稣说,那些不从这门进入,却翻墙进来的人,就是贼和强盗。
今天也有这样的人或教会。他们不寻求耶稣,不寻求耶稣的旨意, 也不讲耶稣的十字架,而是只讲听起来都令人心情愉快的祝福;他们让人满足于宏伟的建筑上, 或是庄严的敬拜仪式上,让人不断参加教会的各种活动, 或服事, 就说信仰生活。对我们来,重要的是聆听耶稣的声音。
○ 羊的眼睛长在头部两侧,因此即使不转头,也能广泛地观察周围,但羊的视力并不算好。羊也不像凶猛的野兽那样,犄角、锋利的牙齿或出色的速度逃跑的手段。羊很容易被脚下的影子、池塘、积水以及小小的障碍物吓到,对细微的声音也十分敏感。如果羊长期处于这种持续的压力之下,健康状况就会急剧恶化。羊若没有牧人的看顾,几乎不可能保全自己的生命。人也实在是像羊一样,是软弱而无知的存在。
[10:3] 看门的就给他开门,羊也听他的声音。他按着名叫自己的羊,把羊领出来。
“按着名叫自己的羊” 这句话,意味着牧人对属于自己的每一只羊都了如指掌。作为我们灵魂的牧人,耶稣完全认识我们每一个人。我们所处的环境、需要解决的问题、内心的苦恼等一切,祂都完全知晓,并且以恰当的方式引导我们的主。因此,那些被耶稣呼唤名字、接受祂引导的信徒,即使有时遇到自己前障碍,也不必灰心丧气。因为这拥有天上地下所有权柄的牧人,正是我们的保护者。
[10:4] 既放出自己的羊来,就在前头走,羊也跟着他,因为认得他的声音。
在主的话语中,有一个我们比较陌生的词语。那就是 “放出自己的羊来”中的 “放出来”一词,对应的希腊语是 “埃克巴洛”(ἐκβάλλω),其中 “埃克”(ἐκ)是“向外”的意思,“巴洛”(βάλλω)是“扔” “驱赶”的意思。这两个词组合在一起,就有了 “扔到外面去” “强行赶出去”的意思。那么,牧人把羊领出来时,主为什么突然使用这样一个带有强制意味的词语呢?饲养许多羊时,有时会有一些羊比起到草场上吃草,更喜欢留在羊圈里休息;即使牧人呼唤,也不愿跟随牧人。这时,牧人就会用强制的方式把羊赶出羊圈。这种行为并不是因为牧人憎恨羊,而是出于深深的爱。因此,即使羊不愿意,也跟随牧人的声音是当然的。“因为认得他的声音,就跟着他走”,这句话包含着, 羊不去自己想去的地方,而是牧人所引导的方向, 持续跟随的意思。无论牧人去哪里,无论随时羊都必须跟在他的后面。这里 “认得”是 “交往而认识”、“拥有亲密的关系”的。因此羊能够轻易地辨别牧人的声音,并跟随他。○ 然而,这时代有许多人虽然拥有基督徒的名分,却听不见主的声音, 不跟随祂的。这是因为他们没有与主建立亲密的关系,所以不能正确地分辨祂声音的原因。
○ 羊若听不见牧人的声音,就会迷失方向;同样,我们信徒也如果不能准确地分辨主的声音,就很容易受到撒但迷惑。为什么我们这些相信主耶稣、属于神的儿女,有时会生病、遭遇事故,或发生意想不到的困难呢?当然,即使是信仰生活很好的人,也会遭遇苦难。有时是在担当神的事工时候,或是因为神难以测透的计划当中……然而,在大多数情况下,我们所遭遇的患难,往往是我们自己造成的。
◎ 我见过许多朝鲜族同胞,把孩子托付给祖父母照顾,父母则来到韩国赚钱。他们虽然努力积攒了很多财富,但后来把孩子接到韩国时,却发现孩子已经对学习失去了兴趣……即使学习也进不了脑子,每天沉迷于手机游戏,或者因为情绪不稳定而出各种问题。这样的情况我见过很多。
这是谁的罪呢?是因为父母不明白神的旨意,按照自己的心意生活所造成的。敬畏神的人不会这样生活。人应当在神的引导和帮助下生活。人人因为不认识主的声音,也不能分辨主的声音,所以才走上罪恶的道路,最终走向灭亡,走向死亡。
主说, 听见牧人声音的信徒,无论出入,都必领受主丰盛的恩典。
[9] 我就是门,凡从我进来的,必然得救,并且可以进出,找到草吃。
主在这里提到了两个恩典。第一,是临死亡的羊得拯救的恩典;第二,是将这样被救活的羊归为自己所有,并喂养它们,使它们得以成长的恩典。
在耶稣的时代,人们背负假牧人—宗教领袖所加给他们的严格宗教规条和律法的沉重负担而生活。人无法靠律法,也无法靠自己的善行获得救恩,并且因着撒但的诡计和假牧人的迷惑,走往死亡的路上。撒但的诡计是什么呢?就是撒谎说:“神在哪里?这世上哪里有神迹奇事呢?” 又欺骗人说:“祷告也没有用。” 对于这样的我们,主将自己交在十字架上,为我们作了赎罪的祭,使我们得以承受天上的产业。
第二个恩典是: “可以进出,找到草吃。”
◎ 戴德生对中国宣教怀着炽热的渴望。1850年5月,他开始学习医学,为前往中国宣教第一步准备。与此同时,戴德生想 “如果到了中国,我将无法得到任何人的帮助。因此,在离开英国之前,我必须接受属灵操练,学习如何得到神的帮助和供应。” 于是,他在贫民区租了一间房子,让自己适应艰苦的生活环境,并下定决心,无论遇到什么困难,都不向人求助,只单单依靠神。一个星期六,戴德生整天都在传福音和探访信徒,直到晚上10点才回到家。这时,有一个男人来找他,请求他为自己濒临死亡的妻子祷告。戴德生跟着那人去探访时,发现一间简陋的房间里有五个营养不良的孩子,而一位妇女正躺在散发味的垫子上,怀里抱着一个刚出生不久的婴儿,奄奄一息。戴德生想到自己口袋里的银币,心里暗自盘算:“如果我带的不是一枚克朗银币,而是一些零钱,我就可以很乐意地拿出1先令给他们了。” 要他把整枚银币都给出去,是他根本无法想象的事。因为他自己连明天吃什么都没有着落。这时,他的良心尖锐地责备他:“你这个伪善的人啊!你口口声声对那些尚未得救的人说,神是满有慈爱的神,可你竟然连自己口袋里的整枚银币都舍不得给出去吗!” 就在这样令人窒息的内心挣扎中,他祷告着,正准备站起来的时候…… 这时,他心中响起了主的声音:“有求你的,就给他。” 最终,他把一切都交托给神,将自己所有的银币给了那个人,并向他见证了信实的神,然后才回到家中。第二天早晨,他正为没有饭吃而发愁,房东却递给他一个包裹。令人惊讶的是,包裹里竟然有一枚金币。
通过这次经历,他学会了一个秘诀。后来,即使在宣教事工上遭遇无数艰难困苦,他也能够不向困难屈服,而是借着祷告得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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