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3:53-58   <은혜의 통로>     2017. 2. 29

[마태복음 13:54] 고향으로 돌아가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그들이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냐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는 그 날이 ‘안식일에 규례에 따라’ 라고 분명하게 적어 놓았습니다. ‘규례’는 ‘습관에 따라’입니다. 안식일이면, 꼭 회당이나, 성전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배우며, 사람들을 만나 교제하는 생활 습관입니다.

◯ 우리는 예수님의 중요한 신앙의 원리를 하나 봅니다. ‘습관의 원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신앙에 있어서 습관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자라나신 나사렛 고향 동네 사람들이 배타적인 사람들이고, 고집스러운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잘 아셨을 것입니다. 자신이 전하는 말씀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을 모르셨을까요? 그것 때문에 동네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받고, 핍박을 받으실 것을 아시면서도, 예수님은 안식일이면 산골자기 작은 마을의 회당예배에 회당에 꼭 참여하신 것입니다.

◯ 습관은 달팽이의 집과도 같습니다. 나를 지켜주는 틀과도 같습니다. 우리가 교회에 올 때에, 매 예배시간마다 은혜를 받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기도할 때마다 능력 있는 기도를 드리며, 찬양할 때마다 기쁨이 솟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실제로 우리들의 신앙생활은 그렇지 못합니다. 어떤 때는 예배당에 와서 졸기도 하고, 어떤 때는 새벽 기도시간에 푹 자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의 신앙을 지켜 주는 것이 습관입니다.

◯ 보십시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 한복판에는 얼마나 많은 이유가 있고, 얼마나 많은 유혹이, 얼마나 많은 반대이론들이 있습니까? 우리가 세상이 속삭이는 소리 다 듣고,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정에 다 따라서 산다면, 정상적으로 믿음이 생기지도 않을 것이고, 정상적으로 신앙생활도 가능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변함없이, 하나님과 일단 한번 약속한 것이면 반드시 지키는 그런 거룩한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 신앙생활을 잘하는 사람의 특징 중요한 특징의 하나는 성실함입니다. 그 어떤 환경, 어떤 경우에서도, 내 몸을 쳐서, 하나님의 뜻 앞에 복종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하기 싫어도 무릎을 꿇는 습관, 예배당 가기 싫어도, 성경책 들고 나서는 거룩한 습관, 그 거룩하고 경건한 습관이 바로 우리를 지켜 주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35]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누가복음 22: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40 그 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 예수님의 신앙생활의 또 하나의 원리는 말씀의 사역이셨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말씀을 전하는 사역에 올인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4: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마태복음 4: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 우리 난치에서도 더 좋은 설교를 듣기 위하여 교회를 떠난 성도가 있습니다.

● 한국교회가 많은 일을 하였습니다. 철야기도 산상기도를 했고, 성경공부를 하고, 교회를 세우고, 찬양대회도 있었습니다. 사회봉사를 하고, 선교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복음이 이제 겨우 130년 정도 지난 왜 교회는 사람이 줄고, 젊은이 가운데 믿는 사람이 5%정도 입니까? 미전도 종족 수준입니다.

◯ 이처럼 어려운 때에도 흔들리지 않는 교회는 결국 말씀을 열심히 <읽고>, 배우고 읽는 교인이 안정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봅니다. <배우는> 것만이 아닌 말씀을 스스로 읽고 듣고 나누는 생활이 우리의 삶에 힘의 원천입니다.

◯ 왜 그토록 열심히 기도하고 성경공부를 했는데 쇠퇴의 과정을 밟고 있을까요? 이것저것 열심히 했지만, 중요한 것은 나 스스로 골방에서 기도하고 나 스스로 성경을 묵상하고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자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했습니다. 많은 부모들은 자녀에게 더 좋은 대학에 가라하고, 주일학교에 가서 성경 공부하라 하고, 중고등부에 맡겨 자신들은 가정예배를 인도하지 않았습니다. ◯ 그렇게 살도록 해야 했는데, 온전한 변화가 없었던 것입니다.

 

[마태복음13:55]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56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냐 하고

말씀과 능력에 감탄하는 것과 예수님을 믿는 것과는 별개입니다. ◯ 지금도 한국교회 교인들은 목사님에게 감동적인 설교 기대하고, 또 찾아서 듣습니다.

◯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의 지혜와 능력에 대하여 감탄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최소한 예수님의 하시는 말씀과 행하신 능력을 보아 ‘저가 선지자와 같다.’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과 능력에 그저 감탄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있어서, 예수는 과거 목수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이고 야고보와 유다와 시몬의 형이 아니냐? 라는 것이었습니다. ◯ 네가 아무리 놀라운 말을 한다 할지라도 너는 여전히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 육신의 모습만을 보는 사람, 나사렛 동네사람들은 은혜에서 멀어진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불신과 차별 자존심이 그 큰 은혜를 받지 못하게 막은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사모하는 열정과 마음으로 그 분 앞에 나아가는 사람들은 예비 된 놀라운 축복들을 받습니다. ◯ 은사 중에 가장 크고 중요한 은사가 바로 믿음의 은사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믿어지는 것,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는 것, 세상에 그 보다 더 크고 귀한 은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 믿음이란 동의가 아닙니다. 긍정도 아닙니다. 믿음이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나의 이성적인 판단, 나의 주장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의 말과 삶을 나의 삶의 속에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 저에게 비판의 은사가 있었습니다. 문제점을 발견하는 은사가 있었습니다. 늘 Way!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도마보다도 질문이 많았고, 믿어지지 않는 것이 많았습니다. ◯ 확실히 알기를 원했고, 의의를 알기를 원했습니다.

● 저는 예수님께서 겨자씨만 한 믿음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저 바다에 빠지라 하여도 그대로 될 것이라고 하신 말씀을 어떻게 믿는가?

●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5개로 어떻게 5000명을 먹이고 12광주리를 남기는가? ● 어떻게 사람이 물위로 걷는다는 말인가?


◯ 비판은 목회를 하는데 있어서 아주 유익하고 요긴합니다. 이단을 분별해야 하고 진리를 바로 분별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성이 강하면 마음이 냉랭해지고 말씀이 마음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신자는 어느 정도 판단이 필요하지만 판단을 멈추고 자신을 내려놓고 용납하고 받아들이는 태도가 있어야 합니다.

◯ 은사 중에 최고의 은사는 믿음의 은사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려고 별로 노력하지 않아도 믿어지고 이해되어집니다. 모든 것이 믿음의 문제입니다.

[마 8:13]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

[롬 4: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 나사렛 사람들은 자신들의 기존의 생각과 자존심을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세상에서 가장 선하고, 의롭고, 아는 사람들입니다. 스스로 도덕적으로나 인격상 제일이었습니다. 이외의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외고집 통은 바로 마음이 좁은 자들입니다.

 

[고린도후서 6:11-13]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었으니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양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이라.

◉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게 우리가 마음을 넓히고 있으니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고 권면 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은혜를 받고 성령의 은사가 충만한 교회였으나 어느덧 하나님의 말씀과 멀어진 自高한 사람들이 되어있었습니다. ◉ 사도 바울도 예수님을 만나고 초기에는 자기의 주관과 고집아 강한 사람이었으나, 예수님을 믿은 후로부터는 마음이 넓어졌습니다. 자기를 죄도 없이 때리고 가두고 핍박한 사람들을 위하여 복음을 전하고 용서와 사랑을 베푼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달라지는 마음 중에 하나는 마음이 좁았던 것이 이제는 넓어지는 것입니다. 이해되지 않았던 사람이 이해가 되고, 보기 싫었던 사람이 불쌍해 보이고, 무시했던 사람이 이제는 귀하고 존경스러워 지는 것이 믿음의 열매입니다. ◯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예수를 진실 되게 믿으려면 마음을 넓히고 살아가야 합니다.

[빌립보서 2:5]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마태복음 13:58]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인하여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치 아니 하시니라

물론 예수님은 믿든 안 믿든, 강권적으로 기적을 나타내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는 고향사람들 앞에서는 그 믿지 않음을 인하여 많은 능력을 행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언제나 협력하여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바클레이 목사는 ‘설교는 목사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들으러 오는 사람이 절반은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들으나 마나 빤한 거다. 다 아는 똑같은 소리다 하면 사람의 소리에 불과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다 알고 들었던 말씀도 마음을 열어 들으면, 성령의 감동을 받으면, 항상 새롭게 들리는 것입니다. ◯ 똑같은 설교라도, 전하는 곳에 따라 다 다릅니다. ◯ 어떤 교회에 가면, 그냥 말씀이 술술 나옵니다. 그런데, 어떤 교회에 가면, 똑같은 설교인데도, 그저 땀만 쭐쭐 흘리고, 말도 막히고, 뭔가 꽉 내리 눌려서, 한참 헤매다가 옵니다. 정말 기도로 열심히 그 심령이 준비되고,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을 준비된 심령들이 모인 곳에서는 저절로 설교가 되지만, 설교비평이나 하고, 온갖 딴 생각만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어떤 교회가 부흥합니까? 어떤 교회가 복을 받습니까? 어떤 교회에서 기적이 일어납니까? 모든 성도들이 다 함께 제 몫을 담당하는 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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