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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전서 1:1-10 <믿음 소망 사랑>
데살로니가전서 1:1-10 <믿음 소망 사랑>
1:1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 교회’ 이 말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축복어구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면서 각각 ‘아버지’ 와 ‘주’라는 단어를 덧붙이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는 예수님의 새로운 언어입니다. 이는 유태인에게 구약적 사고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대부분 이방인들로 구성된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해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 ◯ 여러분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르시나요?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사시나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가 됩니다.
1:1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 여기 ‘은혜’에 해당하는 ‘카리스’는 자기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선물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은혜는 받을 만한 공로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거저 주시는 것으로 그 수혜자에게는 너무나 과분한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카리스’를 베풀어 죄인들을 구원하시며, 하나님은 그의 구원된 백성들에게 영적 부요함을 내려주십니다.
◯ 또한 ‘평강’에 해당하는 ‘에이레네’는 단순히 불화와 전쟁의 반대 개념이 아니라, 건강, 경제, 정치, 인간관계 등등 모든 면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음을 나타내는 개념입니다. ◯ 하나님의 ‘카리스’를 입은 자에게 이루어지는 완전한 평강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이루어질 때 모든 문제가 사라집니다. 이처럼 ‘평강’은 ‘은혜’가 있음으로 해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자신이 여전히 내 안에 두려움과 염려, 짐을 지고 살아간다면 나는 아직 하나님의 선물, 은혜 ‘카리스’를 소유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이와같은 ‘평강’을 소유하여 살아가십니까?)
1:2 바울은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감사한다 했습니다. 데살로니가인 교인들은 이런 은혜를 경험했고 또 지금 은혜 가운데 있습니다. ‘만물보다 심히 부패하고 타락한 인간’(렘17:9)이 사람이라 했는데…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으로 변화 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지금 성도들이 아닌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2-3절]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로 인해 기도하면서 감사하는 3중 근거를 말합니다.
① ‘믿음의 역사'가 있습니다.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믿음에서 비롯된 역사’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역사’는 일 or 행위라는 의미로서
◯ 사람의 어떤 사건. 사물에 대하여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믿는 자로서의 일과 행위를 반응이 있어야 합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약 2:26)
◯ 믿음은 행함을 통해 증명되는 것이고, 이런 행함이 하나님에 대한 순종입니다. 그리고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 초대교회에는 이적과 표적은 앉은뱅이가 일어나기도 하고, 환자가 병 고침을 받기도 하고, 귀신이 쫓겨나갔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5]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고린도전서 4:19]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
◯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말씀을 들을 때 단지 평범한 말로 끝난 것이 아니고 능력과 큰 확신으로 이르렀다 했습니다. 복음을 받은 사람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시므로 그 사람의 모든 삶이 변화되어집니다.
②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랑의 수고’가 있었습니다. ▶사랑의 수고가 있는 교회.
[살전 4:9]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가 친히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여기에서 ’사랑‘은 친구처럼 서로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 간에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피차간의 끌림, 우정, ‘필리아’가 아니고, 이성에 대한 강한 집착하는 육체적 사랑인 ‘에로스’도 아니고 아가페입니다. ‘아가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나와는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 죄인을 향한 무조건적인 보편적인 사랑입니다. 우리가 필로스에 머물러 있는 한 우리는 우리의 지경을 넓힐 수 없을 것입니다. 에로스나 필로스는 모든 사람이 행하고 있는 사랑의 형태입니다. 세상의 빛이 되고자 한다면 ... ‘아가페’를 배워야 합니다.
◉ 사랑에는 수고가 따릅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 수고하지 않으면 그것은 추상적인 사랑입니다. 사랑은 희생이 들고 비용이 듭니다. 사랑을 그냥 마음속으로만 가지고 있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여기서 `수고`는 피곤할 정도의 고된 노력을 가리킵니다. 녹초가 될 정도로 고된 노력을 의미합니다.
◯ 교회를 사랑합니까? 교회를 위해, 무엇인가 해야 한다고 생각 하시나요? 교회의 형제자매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짐을 나눠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나의 재물과 재능 지식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둘째입니다. 사랑의 짐은 믿음과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을 감당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③ ‘소망의 인내’가 있습니다.
인간은 '소망의 존재'인 것입니다. 소망이 없이 산다는 것은 육신의 본능에 따라 사는 짐승과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소망은 믿음을 지속하게 하고 믿음을 자라게 하며, 사랑을 실천하게 하는 힘을 제공합니다. 소망이 없는 삶은 어두운 밤길을 등불도 없이 걸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 현대는 과학 기술의 시대요, 참으로 편리한 세대입니다. 무엇이나 급하게 처리 되어야 만족되는 시대입니다. 사람을 찾아도 머리가 빨리 돌아가는 사람을 찾습니다. 인스턴트의 대용품의 시대입니다. 라면에는 끓인 물만 부어도 먹게 되어 있지요. 밥을 할 때도 전자밥통, 압력솥이 있어 무엇이든지 삽시간에 처리가 됩니다. 돌을 고를 필요도 없고 불을 지필 필요도 없습니다. 정성도 기다림도 사라져 갑니다.
◯ 무수한 범죄가 인내심이 없어서 발생합니다. 어른의 특징은 인내심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초년부부가 처음에는 부딪칠 때가 있습니다. 도저히 평생을 함께 살아갈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런데 인내하고 함께 살아가는 중에 서로 이해하게 되고, 서로를 맞추어 살게 되는 것입니다.
◯ 그래서 학생은 소망으로 공부하고, 농부는 소망으로 농사를 지으며, 또 상인은 소망으로 상업을 경영합니다. 그런데 이땅의 육신의 소망은 결국 잠시 잠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긍극적인 소망은 세상의 성공, 사업의 번창 이런 것이 아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것' 입니다.
[야고보서 5:7-11] 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8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9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10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살전 2:19-20]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 우리의 최대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입니다. 우리의 궁극의 진정한 소망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앙망하여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 이 세상이 멸망으로 향하는 종말의 시대에 ‘나는 예수님과 함께 천국에 있으리라’는 천국의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천국의 소망이 있는 사람은 지금 현재 아무리 내 삶이 어려워도, 내게 문제가 많아도, 아픔이 있고 실패가 있더라도 실망하지 않습니다. 너희가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면 참으로 기다릴지니라. 라고 했습니다.
●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집을 떠나 가나안 땅에 마침내 도착한 것은 75살이었습니다. 그가 인정받는 믿음을 얻기까지는 25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 신앙생활은 이 땅에서 하늘의 소망을 가지고, 믿음으로 싸우며, 사랑의 수고를 다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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