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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 1:1-12 <골로새 성도들>
골로새서 1:1-12 <골로새 성도들>
사람들에게는 '관점'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물을 보는 눈'입니다. 심리학자는 심리학의 관점으로, 경제학자는 경제의 관점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봅니다. '세계관'이란 무엇입니까? 세상을 보는 눈입니다. 달리 말하면 세상을 보는 안경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빨간 안경을 낀 사람은 세상을 빨갛게 보며, 렌즈가 노란 안경을 낀 사람은 세상이 노랗게 보일 것입니다. '세계관'에 따라 사람들의 '가치관'이 결정됩니다. 세상이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고, 한 때 먹고 마시고 즐기는 곳이라 생각한다면 그저 열심히 벌어서 먹고 마시고 즐기는 일에 몰두하면 됩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는 이유가 한 세상 먹고 마시고 즐기는 데 있습니다.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을 향해 '은혜와 평강'을 기원하며 '하나님으로부터'라는 수식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세계관'을 가져야 합니다. 어떤 사람을 보든, 어떤 일을 하든, 어떤 상황에서든 하나님이 뜻에 합한 것이라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볼 때 하나님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대로 생각해야 하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세상을 볼 때 하나님을 빼놓고는 볼 수 없었습니다.
[마 12:50]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
● 골로새 교회는 일반적으로 바울이 제3차 전도 여행 당시 에베소에 머물며 복음을 전했을 때 복음을 들은 에바브라에 의해 개척되었다고 보여집니다. 즉 골로새 교회는 바울이 직접 개척하여 세운 교회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뿌린 복음의 씨앗이 싹이 나고 결실을 맺게 되었다는 점에서 바울에게는 남다른 애착과 관심의 대상이 되는 교회였습니다. 실로 골로새 교회 성도들은 얼굴도 보지 못한 생면부지의 사람들이었지만 바울에게 그들은 특별한 사랑의 대상이었습니다.
○ 바울의 그 사랑의 표현이 무엇입니까? 바로 기도입니다. [3절]에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바울과 디모데는 골로새 성도들을 위해서 꾸준히 기도하였습니다.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이 자신의 기쁨이 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위해 주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그들에게 믿음, 소망, 사랑을 주심을 감사했습니다.
● 많은 사람이 인생에 큰 문제가 있을 때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기도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바울이 골로새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떼놓지 않았던 것은 간구만은 아니었습니 다. 바울이 기도할 때마다 빼놓지 않고 했던 것은 ‘감사' 였습니다. 감사는 이미 이루어진 일도 감사하지만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일도 감사해야 합니다. 신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들으셨으니 …
○ 기도 가운데에는 약 다섯 가지의 요소가 있어야 합니다. 먼저는 하나님을 높이는 경배와 찬양, 죄에 대한 고백, 간구, 남을 위한 중보 그리고 마지막이 감사입니다. 한국의 교인들은 새벽에도 모여 기도하고, 금요일 저녁에 모여서도 기도하고, 금식하며 기도하고, 심지어는 시간을 내어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 나라 성도입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의 기도 내용이 ‘…달라'는 것이 전반을 이루었습니다. 이런 신앙은 어린아이의 모습입니다. 균형잡힌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신뢰하는 기도는 사람을 평강에서 평강으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마음에 기쁨과 감사가 있습니다.
[엡 1:15,16] "이를 인하여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 아니하고 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노라"
[빌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달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4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또 하나 바울이 감사 기도를 드린 이유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음이요"라고 하였습니다. 믿음과 사랑은 동행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내 마음 속에 일어나는 내적 확신이고 동기인데, 믿음이 행동으로 나타나는 외연이 사랑입니다. ○ 저는 나무가 성장할 때 그 키만큼 뿌리가 사방에 퍼진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만약 나무가 위로 줄기가 자라고 크지 않는다면 뿌리가 퍼지고 자라날까요? 사랑은 믿음이 밖으로 표출 되는 것이지만 동시에 사랑의 행동이 있음으로 해서 믿음은 더 깊이 뿌리를 내리는 것입니다.
주일 예배만 참석하고 말씀만 듣고 끝! 하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신앙이 자라나지 않습니다. 신앙은 내 마음에 믿음을 실천할 때, 세상에서 사랑을 실천하고 교회 안에서 봉사를 통하여 견고한 믿음, 자라나는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 선교사를 파송할 때, 모든 성도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선교사 파송식 때는 눈물을 쏟아가면서 선교사님을 후원하겠다, 기도하겠다 약속하지만 한 이삼 년 지나면, 그 선교사에 대한 관심이 없어지고 점점 기도와 후원도 안하고 잊고 지내다가 찾아오면 부담스럽게 여길 때가 있습니다. 이는 사랑으로 행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선교지를 위한 선교가 아닌, 교회 명분으로의 선교가 행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 이를 수정하고 바른 선교가 되게 하는 것은 교회의 책임이기도 하고, 선교사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저는 한 때 한국교회가 썩지 않고 성장이 멈추지 않으려면 선교만이 길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선교를 지망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저의 잘못된 소견이었습니다. 이제는 선교지를 위하여, 선교사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우리가 주를 위하여 무슨 일을 하든 지식이 있어야 하고 행함으로 사랑을 표시해야 합니다. 사랑이란 쉽지 않음을 늘 깨닫습니다.
[골로새서 1:5,6]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 [5절]을 보면, 골로새 교회가 믿음과 사랑이 있는 교회, 하늘에 소망을 쌓는 교회가 된 것은 복음은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했고, 깨달은 날로부터 열매 맺어 자란다 했습니다. 골로새 성도들이 온전한 신앙을 갖기 전에 선행되었던 것은 바로 그들이 '복음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 없이는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없습니다. 복음의 말씀을 들을 때 목표가 생기고, 분별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복음을 들을 때 나아갈 길을 보게 되어집니다. 골로새의 성도들은 에바브라를 통하여 말씀을 배웠습니다.
○ 믿음은 자라나는 것입니다. 나무가 열매를 맺지 않으면 농부는 헛일을 한 것입니다. 주님도 열매 맺지 않는 무화과 나무를 보며 저주하셨던 일이 있습니다.
○ [5절b]에 사도 바울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둔 소망"으로 인해 주께 감사 기도를 드렸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하늘에 쌓아둔 소망'이란 장차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릴 때 성도들이 받게 될 영광과 특권을 의미합니다. 특히 ‘쌓아두다'라는 말은 하늘에 쌓아둔 소망은 하늘에서 보존되고 때가 차면 성도들이 그것을 누리게 될 것임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성도가 세상에서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해 수고한 대가를 얻지 못한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헛된 것일 수 없습니다. 골로새 성도들에게 ’하늘의 소망‘은 그 어떤 역경 속에서도 자신들에게 하나님의 맡기신 일에 책임을 능히 감당하게 하는 원동력이었습니다.
○ 그들은 골로새라는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세상에 주소가 있습니다. 동시에 그들은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하늘의 시민권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중 국적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 세상에 속한 세상의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지역에 살고 있다 대단한 자부심을 가집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강남에 사는 것을 자랑합니다. 똑같이 어떤 신자들은 자신의 교회당을 자랑하고 자신의 교회의 목사님을 자랑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교회를 선전하며 가자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는 너무도 어린 신앙의 모습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큰교회 작은 교회 네 교회 내 교회를 나누는 것이 한국이란 한 지역 안에서 ”꿩잡는 것이 매다.“ 즉,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는 풍조를 만들었습니다. 서로를 돌아보지 못하고 이기적인 교인, 이웃에 무관심한 교인들로 만든 것입니다. 세상의 것들은 자랑할 만한 것들이 없습니다.
[골 3:1]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8절] 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알린 자니라
○ 에바브라는 바울을 향한 골로새인들의 구체적인 사랑을 전하였습니다. 말과 혀로만 사랑한다 하는 것은 실제로 공허한 것입니다. 사랑은 진실함에서 우러나오는 구체적인 행함이 있으므로 참된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 내가 협력하고 기도하는 그 사람이 진정 복음에 헌신하고 수고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을 위한 나의 어떤 희생도 수고도 아깝지 않은 것이 신앙 안에서의 교제입니다.
● [9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9-12절에서 우리는 비로소 바울이 골로새교회 성도들을 위하여 행한 중보기도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됩니다. 즉 바울은 골로새 사람들이 진리의 말씀을 들을 때,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지혜와 총명이 있기를 선한 일에 열매 맺는 성도가 되기를 간구한 것입니다.
에바브라가 신실한 일꾼이었으나 그에게는 또한 기도의 동역자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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