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 5:15-22 <좋은 것을 취하라>

항상 기뻐하라기쁨은 신자의 일상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 넘쳐야 할 덕목입니다. ’항상' 이라는 부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갈 5:22) 성령의 열매 가운데 하나로서 환경에 지배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환경에 지배되지 않는 초월적인 기쁨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떠나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7:38) 약속하셨는데, 이 생수의 강은 영혼의 만족에서 흘러나오는 내적 기쁨을 말합니다. 이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속을 받은 자에게 성령이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 하나님을 알고난 이후에라도 믿는 사람들은 자신 죄인의 모습, 너무나 흠이 많은 자기 자신의 실체를 보며 비탄에 젖을 때가 있습니다(롬 7:24). 또 주 예수를 믿는다 하지만 현실의 고통 속에서 ‘항상 기뻐하라' 이 명령을 지키는 게 불가능하게 여겨질 때도 있습니다. 이는 육신을 입은 인간의 참 모습으로 무어라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다시 주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기쁨을 회복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이 명령은 하나님을 믿고 그 영광의 나라를 바라보는 성도가 마땅히 지향해야 할 삶의 목표입니다.

[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이는 ‘어떤 경우에나 중단 없이 계속하여' 란 의미입니다. 바울은 인간이 견디기 어렵고 이해할 수 없는 극한 상황에 있을 때에도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기도했습니다. ◉ 바울은 빌립보 감옥에서 매 맞아 상처 나고, 배고프고, 추웠습니다. 무엇보다 이 곳 빌립보에서는 그가 연락 할 어떤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엎어져 포기하지 않고 한 밤중에 기도했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기도하라'에 해당하는 단어의 원형 ‘프로슈코마이’는 기도하는 사람이 자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기도, 곤란할 때 하는 그런 기도가 아닌. 예배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뜻에 초점을 맞추고 기도를 할 때 주로 쓰이는 단어입니다. ○ 사도 바울은 빌립보 감옥에서도 자신의 필요을 채워 달라는 그런 기도가 아니라, 늘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도를 드렸음을 말합니다. 어떻습니까? 내가 필요를 구할 때 끊임없이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 더 가능하다 생각되지 않나요? 아닙니다. 고난 속에서든지 아니면 좋은 일을 당해서든지 하나님의 뜻을 구하여 쉬지 말고 기도하는이 모습이 진정 성숙한 기도자의 모습이고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5:18] ‘범사에 감사하라.’ 여기 ‘범사’는 ‘모든 일에’ 또는 ‘어떠한 환경에서도’ 라는 의미입니다. 범사에 감사는 하나님의 선하신 분이다.’ 깨달았을 때 비로소 가능한 신앙적 태도입니다. ◉ 출애굽 이후 40년 내내 시내 광야를 통과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하나님께 원망, 불평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에 대하여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애굽의 압제에서 구원하여 주신 분이라는 사실, 또 조상들에게 약속한 가나안 복지로 능히 들여보내 주실 분이라는 사실을 생각지 않았습니다. ○ 이상하지요? 홍해를 건넌 이적, 애굽에서의 10가지 재앙과 구원의 기적, 광야의 이적을 수 없이 보고 듣고 했는데도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못했습니다. 신약에서 이스라엘의 무리들은 제 눈으로 예수님에 의해 수많은 병자들이 고침을 받는 것을 보았음에도 그들은 믿지 못하고 끝없이 의심했습니다. ○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을 믿음으로 받지 못했습니다. 믿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하늘에서 떨어진 것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믿음으로 받지 않으면 기적을 보아도, 제 아무리 美辭麗句로도, 논리적 설득으로도 믿게 할 수 없습니다.

본서의 수신자인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당시 여러가지 어려움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살전 2:14]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자 되었으니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동족에게서 동일한 고난을 받았느니라.

[살전 3:4]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장차 받을 환난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는데 과연 그렇게 된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2:14]은 동족으로부터 [3:4]은 정치적은 박해를 의미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인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그들은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불평하지 않고 감사하는 생활을 하려면 먼저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다’ 라는 사실을 깊이 인정해야 합니다. ○ 고난 중에서라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범사에 감사>는 하나님은 선하신 분, 나를 이런 환경에 두신데는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다. 그의 선하심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비롯되는 것입니다.

● 바울은 ‘기뻐하라'와 ’기도하라' ‘감사하라' 이 세 개의 명령을 단순히 자기 자신의 권위가 아닌 신앙의 대상이신 하나님의 권위로 선포하고 있습니다. ○ 바울은 이 하나님의 뜻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라는 전치사구로 수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보여주셨고, 또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러한 삶이 있어야 합니다.

○ 그리스도인의 무기는 두가지입니다. 말씀과 성령입니다.

[5:19-22]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19절]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 [엡 4:30]에서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는 했습니다. 성령은 여기에서 불의 이미지로 형상화되었습니다. 불과 같은 속성으로 사람의 내면에 있는 죄악을 불태우고, 하나님은 사람에게 뜨거운 마음을 주셔서 자신의 뜻을 드러내십니다. 따라서 성령을 소멸한다는 것은 성령의 활동을 억눌러 억제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사람이 자기 본성대로 살아가며,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의도적으로 활용치 않을 때의 현상입니다.

[20] ’예언을 멸시치 말라

● 여기서 말하는 예언이란 무엇일까요? 우선 주께서 미리 보여주시는 사건일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기록된 예언인 성경을 풀어 설명하고 하나님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목회자들이 성경의 말씀을 사용하여 선포하는 하나님의 말씀도 예언입니다.

○ 데살로니가 교회 안에 예언을 제지하는 사람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예언을 멸시치 말라‘ 이 말씀은 문자적으로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다' ‘얕보다' 라는 의미입니다. 그들은 그 예언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예언하는 자들을 제재하기까지 하였습니다. ◉ 오늘날에도 많은 신자들이 합리적이고 지적이고 사람의 지혜를 의지하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자.” 하면 의례이 하는 말로 여기고 귀담아 듣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이라면 어찌 하셨을까?”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는 것은 예언을 통해 교회를 세우시는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죄입니다. ’예언을 멸시하는 것‘은 ’성령‘을 소멸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 성경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선포하는 자가 없이 바르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 자의적으로 해석되고 문란한 때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설교를 무시하고, 헛되이 듣고, 듣기를 거부한다면, 이것이 ’예언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바른 깨달음 없다면 신앙성장도 기대할 수 없는 일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22] ’범사에 헤아려이는 모든 것을 시험하여 입증하라는 것입니다. 첫 번째가 [19,20절]의 성령의 은사 혹은 예언을 검증 없이 있는 대로 다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 진위를 시험해 보아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아니면 악한 영에게서 온 것인지, 아니면 말하는 사람 개인의 의견인지 밝히 알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 그러면 바르게 아는 첫 번째 조건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나 자신 속에 관심과 노력입니다. ◉ 요즈음 가장 욕을 먹는 자동차 부속 중의 하나가 네비라고 합니다. 네비만 믿고 따라가다 보면 돈 낭비하고 시간 낭비합니다. 어느정도 길을 알고 있을 때 네비는 큰 도움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미래를 말하는 예언도 하나님의 신탁의 말씀도 물항아리에 물이 가득할 때 기적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 그리고 그 평가의 시금석은 그 예언이 예수를 주로 시인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주로 시인한다' 라는 것은 입술로만의 고백이 아니라 그분을 전적으로 순종하고 따르겠다는 의지가 있을 때 그 진정성이 있는 것입니다.

[7: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라고 했습니다.

◉ 오늘날 예수의 말씀을 신학적으로 가르치고 그의 역사적 존재도 시인하지만 실제로 주 예수를 주님으로 모시지 않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면서 늘 하는 말이 정의를 말하고, 윤리를 말하고 선행을 말하고, 사람의 지혜를 말합니다. 이는 모두 ‘예수를 주로 시인하지 않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취하고 했는데 그 은사나 예언의 말씀을 시험해 본 후에 과연 ‘좋은 것'이다.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판별되고, 확신이 들면, 신자는 이를 꼭 붙잡아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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