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3:10-24 <진실한 사랑>

악한 자에게 속한 가인이 의인 아벨을 증오했듯이 마귀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자녀를 미워합니다. 세상의 가치관과 하나님의 가치관은 다르기 때문에 겉으로는 평화와 화목을 말하지만 깊은 골이 있습니다. 그런데 [13]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 본문은 세상과 형제를 대비하고 있습니다. 물론 세상은 우리의 사랑의 대상이지만 본문은 특별히 주 안에서 지근의 형제를 말하고 있습니다. [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라는 본문을 보아 더욱 분명합니다.

[요일 3:14]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이 말은 “우리가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가는 것은 형제를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안다.” 라는 이 말을 자칫 구원의 조건으로 오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원문 그대로 우리가 지금 형제사랑을 행한다는 사실이 우리가 구원 받았음 말해주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이는 예수께서 이미 산상수훈을 통해 교훈하신 내용입니다. 미움과 살인은 동일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살인은 미움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 창세기 4장을 보면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죽이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사건은 가인이 아벨을 미워하게 된 데부터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모든 살인은 한 가지 동기, 미움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이 미움은 마귀의 획책입니다.

[요한복음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 살인은 살인의 원조인 마귀에 속한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살인자는 마귀에게서 났고 그에게 속한 자들입니다. ○ 마음에 내가 누구를 미워해야 미움(恨)이라 생각하는 것은 협소한 생각입니다. 형제를 돌보지 못하게 마귀가 심은 마음이 다 미움입니다. ○ 미움과 동일한 부류의 마음이 시기심, 무관심, 이기심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미움을 품은 자들은 천국의 시민으로 부적격한 사람들입니다.

○ 우리는 보통 ’살인‘을 생각할 때 고의적으로 계획한 살인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법은 자신이 몰랐다 하더라도 사망의 위험성을 방치하면 살인죄와 동일하게 취급합니다. 공사장에 난간을 제대로 설치하지 않은 것, 부모가 더운 날에 어린아이를 차 안에 방치한 것, 이것 역시 살인죄로 다스립니다. 알면서도 죽음에 이르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살인 방조죄이며 의도적인 살인과 동일하게 보는 것입니다. 탈북한 북한주민을 북한으로 다시 돌려 보내 죽게 한 것도 살인입니다. 왜 그런 것입니까? 무관심이고 부주의이고 이기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생각할 때 “나는 몰랐다. 내가 안 했다” 변명해야 소용이 없습니다.

[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말씀에서 요한은 형제 사랑의 이유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우리를 향한 희생의 사랑을 제시합니다. ○ 주님은 대속적 희생, 고귀한 죽음으로 우리 인간에게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요한은 이 그리스도의 죽음을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따라야 할 사랑의 모습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 그런데 유의할 것은 목슴을 버린다는 것은 그리스도처럼 실제로 죽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이타적 자세로 희생적인 사랑을 베푸는 것을 의미합니다. ○ 그리고 희생이 없는 사랑은 값어치 없는 가벼운 사랑입니다.

[17] 누가 이 세상 제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즐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

이는 형제를 위하여 목슴까지도 버리는 사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것입니다. ○ 진정한 사랑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까지도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21)고 했습니다. 주위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형제들을 물질로 돕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주는 것과도 같다는 것입니다. 현대인에게 물질은 죽고 사는 목숨과도 같은 것입니다. 진정 그리스도의 사랑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은 물질로써 증명해야 합니다. ○ 사랑이란 추상적인 내면의 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사랑은 직접 행동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을 채워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사랑과 세상이 말하는 사랑을 구분 짓는 것입니다. 행동이 없는 사랑은 공허한 개념에 지나지 않습니다.

[19, 20]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 우리가 참된 사랑을 소유하고 실천함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과 신앙의 더욱 큰 확신이 생기게 된다 말합니다. '진리에 속했는가?'의 증거는 '행함과 진실함'입니다. 나의 행동, 나의 결단이 하나님을 향한 나의 믿음의 진실함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의 믿음을 보이고 나면 나는 자유롭고 담대한 믿음을 회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 어느 목사의 가정에서는 매주 성경 한 구절씩 암송하기로 하였습니다. 두 딸은 부모보다 더 성경 암송을 잘했습니다. 어느 날 두 딸이 소리를 지르며 싸움이 붙었습니다. 서로 소리를 지르며 싸우고 있을 때, 아버지인 목사님이 큰딸을 불러 물었습니다. 이번 주 성경 구절이 어디지?" 그러자 딸은 "요한일서 4장11절이에요. 사랑 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라고 줄줄 암송하며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방으로 들어가 더 심하게 싸우더랍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고 진리에 속한 자라고 말하지만, 진리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아무리 성경을 읽고 외우고 하면 무엇합니까? 삶 속에 진지하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적용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욥기 31:6-8] 하나님께서 나를 공평한 저울에 달아보시고 그가 나의 온전함을 아시기를 바라노라 만일 내 걸음이 길에서 떠났거나 내 마음이 내 눈을 따랐거나 내 손에 더러운 것이 묻었다면 내가 심은 것을 타인이 먹으며 나의 소출이 뿌리째 뽑히기를 바라노라

[고후 8:10,11] 이 일에 내가 뜻만 보이노니 이것은 너희에게 유익함이라 너희가 일 년 전에 행하기를 먼저 시작할 뿐 아니라 원하기도 하였은 즉 이제는 행하기를 성취할지니 마음에 원하던 것과 같이 성취하되 있는 대로 하라

○ 일찍이 아모스 선지자는 하나님은 “내가 기근을 땅에 내리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니라" (암8:11)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문제는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도 기갈이지만 말씀을 실천하려 하지도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도 않는 데 있습니다.

○ 한국에서 수능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시험이 있는 날에는 김포비행장에 비행기도 뜨지 않습니다. 교회마다 고3 아들을 둔 부모가 있습니다. 시험을 한 달 앞 두고야 그 부모는 매일같이 철야기도 금식기도 새벽기도를 합니다. 하나님께 24시간 찾아가 매달립니다. 그리고 교회는 이런 학부모의 마음을 맞추어 고3시험생 특별기도회 시간을 만들어 실시합니다. 그리고 모두들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당신의 자녀입니다. ‘성경에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우리 아들 녀석이 이번에 좋은 점수를 맞게 해주십시오”

○ 좀더 일찍 하나님의 기쁘심을 구하여 살았으면 얼마나 더 사랑을 받았겠습니까? 천지 우주만물의 창조자 만왕의 왕이 되신 주님을 믿었더라면 얼마나 담대함으로 구하여 기도할 수 있었겠습니까? ○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사랑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사랑이 어떠한 사랑인지를 보이셨습니다. ○ 우리는 그의 계명, 그의 원하시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 이 시대에 사람들은 c19로 전염병에 걸릴까 염려합니다. 그런데 정작 이혼, 살인, 자살, 마약중득, 낙태, 동성애 등등 범죄가 만연하여 사망의 길을 가고 있음을 통탄해 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이들에게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이 해주어야 할 것은 진실한 사랑과 관심입니다.

[20]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거든 하물며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일까 보냐

하나님 편에서 우리를 보신다면 우리는 책망 받을 일들이 엄청나게 많을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바로 책망하지 않으시며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이런 오래 참으시는 속성으로 인해 사람들은 하나님은 죄를 지어도 심판하지 않으시는 분, 하나님은 죄를 덮으시는 분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따르고 자신을 섬기는 자에게 한없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22,23]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요. 우리에게 보이신 그의 계명대로 서로 사랑을 행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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