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0:17-22   <선한 선생님이여>

[마가복음 10:17]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마가는 예수께 달려온 사람을 ‘한 사람’ 이라 기록할 뿐 그의 다른 신상 정보가 없습니다. 그러나 마태는 ‘그 청년’ 이라고 기록하여 그 사람의 연령을 밝혀 줍니다(마 19:20). 또한 다른 공관복음 저자인 누가는 ‘어떤 관원’이라 기록하여(눅 18:18). 어떤 관원인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으나 그 사람의 신분을 보여줍니다. [마가복음 10:22]의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라는 기록을 볼 때 그는 부자이며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마가는 이 사람이 “달려와서 끓어 앉았다” 했고, 그가 예수를 ‘선한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했습니다. 아마도 그는 당시 소문을 통해서 예수는 다른 랍비들과 달리 초자연적인 이적을 행하며, 탁월하게 교훈을 베푸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신적인 권세를 가지고 탁월한 교훈를 베푸신다 해서 예수님 앞에 나와 무릎을 꿇는다든지 ’선한 선생님‘이라 부르며 ’영생 얻는 길‘을 묻지 않았습니다. 이는 이 사람이 매우 겸손하며 영적 갈급함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며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으로 보여집니다.

그는 주님 앞에 나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물었는데 ’얻으리이까‘ 이말은 헬라어로 (클레로노메소)인데 이 말은 수고한 것 없이 주어지는 것, 상속 받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무엇을 하여야” 라는 조건을 말하고 있으니 그의 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입니다. 진정으로 이 청년은 영생을 어떻게 소유하게 되는 것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 사실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에게 귀중한 것들일수록 값없이 얻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금을 귀하게 여기지만 우리가 숨쉬는 공기나 늘 마시는 물만큼 귀한 것은 아닙니다. 세상의 기후가 변하고 건조해지면서 물이 귀해지고 산업이 발달하면서 공기가 탁해졌지만 처음 하나님은 우리에게 물과 공기를 값없이 거져 얻게 하셨던 것입니다. 마찬가지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구원도 하나님 편에서 아들을 희생양으로 내 주심으로써 믿기만 하면 값없이 구원 얻는 길을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 마가는 “선한 선생님이여” [마가복음 10:17] 부르며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물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즉 마가는 ‘선하신 예수’에 초점을 두고 말하고 있는데, 누가복음의 병행 구절에서도 “선한 선생님이여” 동일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눅 18:18). 그러나 마태는 이와 다르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9:17]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이에 예수님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대답하셨습니다. 마가는 부자 관원이 ’선한 선생님‘ 이란 호칭에 초점을 맞추어 불렀고, 마태는 ’선한 일‘에 촛점을 맞추고 있는 것입니다.

○ 사실 부자 청년은 율법을 잘 준수하였던 사람이었지만 과연 자신이 율법을 잘 준행한다고 해서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으며 자신이 행하고 있는 일들을 ’선‘이라 말할 수 있는가 규명하고 싶었고, 자신이 ’선한 선생님‘으로 인정한 예수께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은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부자 청년의 관심사는 ’선한 자‘가 되는 일이었고, 이를 위하여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17절). ○ 이 모든 것을 볼 때, 부자 청년은 율법의 기능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으며 영생이 어떻게 얻어지는지도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가복음 10:1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여기서 우리는 ’선한 자‘가 되기 위해 ’해야 할 일‘을 묻는 이 사람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시고 예수님은 동문서답을 하고 계신 것이 아닌가 생각 됩니다. 또 우리가 ’선한 자‘로 믿고 따르는 예수님이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신 말씀에 크게 놀라게 됩니다.

○ 결국 예수님이 부자 청년에게 하신 이런 답변은 “사람이 선을 행함으로 결코 영생에 이르지 못한다” 는 사실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인간은 윤리라는 상대적인 선의 개념에 머물러 있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결코 율법으로 하나님 앞에서 선해질 수 없는 존재입니다(갈 3:11). 이에 예수께서는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다” 하시며 ’절대적 선‘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11]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사람이 의롭다 칭함을 얻는 길은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누가 더 옳은가?” 끊임없이 서로를 평가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의롭게 여깁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을 평가합니다. 예수님도 죄를 짓지 않으셨는가! 성전에서 분노하지 않으셨는가? 부모의 말을 거역하고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이 있지 않았는가? 사람은 윤리와 율법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예수님을 평가하고, 하나님을 평가하려 합니다. 왜 하나님은 세상에 전쟁을 보고 계신가? 왜 불의한 자가 잘 되는가?

○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율법의 기능은 죄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어떠한 선한 행위도 인간이 천국에 이르고, 영생을 얻게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 그러나 부자 청년은 율법으로 무엇인가를 이루려 했고, ’선한 자‘가 될 수 있다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이 세상에는 ’선행으로 천국에 간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람이 착하게 살면 천국에 가고, 착하게 살기 위해 교회에 다니고 종교를 갖는 것 아니냐?” 말합니다.

○ 그럼에도 예수님은 부자 청년에게 율법을 행하라고 말하십니다.

[마가복음 10:19]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말라…말라…말라…말라…말라…그리고 마지막으로 공경하라. 여기서 말씀하신 계명들은 10계명 중에 사람을 대한 여섯가지 계명들입니다. 왜 예수님은 10계명 모두를 말씀하신 것도 아니고, 사람을 대한 계명들 만을 말씀하셨는지 그리고 제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를 마지막으로 말씀하셨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이러한 계명의 열거 순서는 마태나 누가복음에서도 동일하게 보입니다.

○ 부자 청년이나 대부분의 유대인들이나 어려서부터 율법 교육을 받으면서 이 율법의 조항들을 철저히 지켜왔을 것입니다. 이러한 계명들은 성경의 모든 계명 중에 가장 기본 되는 계명들입니다. 예수님이 부자 청년의 율법 사랑과 준수를 모르셨을까요? 알고계셨습니다. [10:20]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 부자 청년은 자신이 외형적 율법을 잘 지켜왔다는 데 대한 자부심과 예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그 정도라면 별 문제가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매우 자신 있게 대답하였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율법은 그들 자신의 의를 쌓아 영생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졌던 것입니다. 마태복음에서 이 부자 청년이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라고 말하며 이러한 확신을 강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21절]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라 했는데, 여기서 보이신 예수님의 사랑은 일차적으로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며, 나름대로 영생에 대한 관심을 갖고 계명을 지키기 위하여 힘쓰는 부자 청년에 대한 칭찬의 의미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칭찬이라기보다는 이어 말하고자 하신, 청년에게 부족한 면, 즉 가산은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사랑의 요구‘를 할 만한 마음 밭을 발견한 예수님의 기쁨이 아닐까? 합니다.

○ 예수님 한번은 율법사가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질문하였을 때 [마태복음 22:3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주님은 율법사의 질문에 특별한 계명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율법사는 가장 큰 계명을 물었지만 예수님은 두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그 중에도 먼저 말씀하신 것이 ①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②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모든 계명은 사랑 안에서 완성하는 것입니다. ○ 지금 사람들에게 사라진 것이 두가지입니다. 먼저 사라진 것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고, 그리고 다음으로 사라진 것이 사람에 대한 사랑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부자 청년에게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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