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14-18  <은혜와 진리>

[요한복음 1: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은혜와 진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왔다고 했습니다. ‘은혜와 진리’는 희랍 원어로 볼 때, 바로 뒤에 ‘왔다’ 동사가 단수로 쓰여있어, 단수 취급하고 있음을 봅니다. 다시 말해, 실제로 ‘은혜와 진리’는 하나의 인격체라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당신이 은혜를 전파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우리는 진리를 알아야 해요.' 하면서 분리해서 말할지라도 인격적으로 말하면 ‘은혜’와 ‘진리’는 하나(一个)입니다.

똑같이 바로 앞에 구절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이 말씀은 예수님 자신이 곧 ‘은혜와 진리’ 되신 분, ‘복되신 분, 보배로우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 요한은 지금 모세를 통해서 받은 율법과 예수를 통하여 오는 ‘은혜와 진리’를 대조시켜 말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모세를 통해 주어진 것이지만 "은혜는 왔다." 했습니다. 주는 것과 오는 것은 다릅니다. 율법은 일종의 도덕 체계로 인간이 자신의 규율과 선행으로 하나님께 다가가는 수단이지만,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이는 모세를 통하여 받은 율법이 최종적인 진리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진리는 진리이되, 그 자체로 완성된 유용한 진리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사야 28:10] 대저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되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는구나 하는도다.

완전하고도 최종적인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으로 완성된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 인류에게 주어진 구원의 소식은 부분적이었고 구체적이지 않았습니다. ○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하였을 때 뱀에게 저주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창세기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구약의 시대 사람들은 이 성경 말씀을 읽으면서도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어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 승리하셨을 때, 비로소 그 뜻을 알게 된 것과 같습니다.

○ 유대인들은 구원자 메시아가 이 땅에 오실 때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나리라 기대하였습니다. 그들은 구약성경 [이사야 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말씀을 보면서도 고난 당하는 메시아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신약의 시대를 사는 우리는 이사야의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기 때문입니다.

○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통로를 계시(revelation)라고 하는데, 우리는 자연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게 하신 것을 자연 계시라 하고, 자연 계시 외에, 특별한 방법으로 하나님을 알게 하신 것을 특별계시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이 특별계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으로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알게 된 것이며,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참모습을 보이시고, 하나님의 뜻을 알리셨습니다.

○ 예수를 알아야만 하나님을 알 수 있고, 예수를 통해서만 그의 은혜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모든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을 원하는 사람,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알고자 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 이 시대의 최고 지성을 가진 사람, 박사, 의사, 전문가일지라도 예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그저 피상적인 지식의 소유자, 여전히 어둠에 빠져있는 사람입니다. ○ 사람은 먼 과거에 일어난 일도 가까운 장래 일어날 일도 알지 못합니다.

 

◉ 얼마 전 국립박물관에 간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신석기 시대의 배가 전시된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저는 있었으니 찾았겠지 하며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한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2003년 9월 12일. 태풍 ‘매미’가 한반도를 강타했습니다. 남부지역을 지나, 7시간 만에 동해로 빠져나간 역대급 태풍이었습니다. 그때 낙동강에서 4km 떨어진, 경남 창녕군 비봉리 배수장이 침수되었습니다. 그곳에 물이 빠지고 나서 그곳에서 귀중한 신석기 시대의 유물이 발견되었습니다. 신석기 유적은 대개 바닷가에 있어 그때까지도 한반도에는 제대로 보존된 유물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원형이 잘 보존된 도토리, 가래, 솔방울, 조개무지와 빗살무늬 토기가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일본에서는 발굴되었지만 한반도에서는 발견하지 못한 것이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신석기시대의 배였습니다. 그래서 일본은 늘 대한민국의 신석기 시대는 일본의 영향을 받았다. 말하였습니다. 배라는 것은 나무로 만든 것이라 저습지가 아니면 발굴되지 않는 것입니다. 국립진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 임학종씨는 배를 찾고 싶었습니다. 단원들을 격려하며 계속 찾았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고대하던 성과는 없었고 몇 달이 지나도 한여름에 물구덩이 안에서 발굴단원은 지치고 힘들게 수고하였지만 배를 찾을 가능성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시원한 포크레인에서 쉬는 기사를 보며, 기사를 부러워하는 단원들에게 임실장은 배를 찾는 사람에게 포크레인을 사주겠다. 약속까지 하며 찾고 싶었습니다. 어느날 임학종씨는 꿈에 선명하게 십자가가 보이고 그 위에 끈이 보였습니다. 끈을 따라 갔더니 배를 찾았습니다. 꿈이었습니다. 그날 오후에 발굴단원 중에 한 사람이 집에 일이 생겨 집에 가야 했고 임학종씨가 그 자리에 투입되어 작업하는 과정에서 길이 3m 되는 통나무로 된 기원전 6000년경의 신석기 배를 찾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신석기 시대의 배를 찾는 영광을 그에게 주신 것입니다.

[골로새서 2: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말합니다. ○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보여 달라는 빌립의 요구를 받으시고는 말씀하시기를 [요한복음 14:9]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여기서 『우리』는 이미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을 말합니다. 우리가 그의 충만하심에서 받는 은혜는 ‘은혜 위에 은혜’(one blessing after another)라 했습니다. 이는 다함이 없는 은혜라는 뜻입니다. 주님이 그의 거듭난 백성에게 베풀어 주시는 은혜는 구원과 관련되는 은혜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생활 가운데서 일이 풀어지고, 건강이 회복되고, 소원을 이루게 되는 것, 모든 은혜를 포함합니다. 주 안에 있는 자는 때에 맞춰 베풀어 주시는 은혜를 체험합니다. 때가 되니 학교에 가고, 때가 되니 직장을 얻고, 때가 되니 대상을 만나고, 때가 되니 자식이 생기고, 때가 되니 시냇가에 심긴 나무와 같이 결실하는 것, 주님 맡기신 일을 잘 감당하다가 나중에 천국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것,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야고보서 1: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주님은 [요 6:35]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 이스라엘 땅이 3년 6개월을 비가 내리지 않아 메말랐을 때, 하나님은 엘리야을 요단 시냇가에 두시고 까마귀를 보내 떡과 고기를 주셨고, 그 시내가 마르자 다시 그를 사르밧으로 보내 여인의 도움으로 음식을 먹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집에는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기름이 그치지 않고, 통에 가루가 떨어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은 무엇이 필요할 때,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히브리서 4: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을 얻고 필요한 때에 도우시는 은혜를 얻기 위해 은혜의 왕좌로 담대히 갈 것이니라.

각양 은사와 선물은 위로부터 임하는 것입니다. 인생에 꿈을 이루기 원하는 사람, 하나님의 은사를 구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나를 도우시리라’ 믿음을 갖고, 기쁨으로,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 땅에 오신 그분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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