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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1:1-15 <믿음의 시련>
야고보서 1:1-15 <믿음의 시련>
[야고보서 1:2]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시험'이란 헬라어 ’페이라스모스(πειρασμόϛ)'입니다. 이 단어는 ‘시험(test)', ‘시련(trial)’, ‘유혹(temptation)’ 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야고보는 이 단어 ‘시련’과 ‘유혹'을 한 본문 안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시험(test)와 유혹(temtation)의 의미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것인가요? 야고보는 1-12절까지 본문에서 시련(trial)에 관하여 말합니다. 시련은 모든 사람에게는 예외 없이 찾아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자녀의 문제, 관계의 문제, 건강의 문제 등등… 성도 역시 세상을 살면서 시련(trial)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를 믿어 만사가 형통하고, 건강하고, 풍족하고, 즐거운 나날이 이어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시련이 다가올 때,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고, 믿음을 지키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 카프만 부인의 [광야의 샘]이란 글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는 누에고치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마침 여러 마리의 누에고치가 나비로 탈바꿈을 하는 중이었다. 너무도 작은 구멍을 통해 나오려고 애쓰는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불가능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마리, 두 마리, 그토록 작은 구멍을 통해 천신만고 애쓰더니 결국은 빠져나와서 공중으로 훨훨 날아오르는 것이었다. 나는 마침 또 나오려고 애쓰는 고치를 발견하고 가위로 그 구멍을 넓게 잘라 주었다. 그러면서 나는 나의 사랑과 자비가 자족하면서 혼자 웃었다. 내가 넓게 열어준 구멍으로 나비는 쉽게 나왔으나 문제가 생겼다. 공중으로 솟아오르려고 몇 번 시도하면서도 결국, 땅바닥에서만 맴돌 뿐 날아오르지 못하였다.“
성경은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기뻐하라 했습니다. 바울도 [롬 5:3] “환난 중에도 즐거워한다.” 말했습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 이스라엘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도자기를 만드는 사람은 망가진 도자기를 손가락으로 두드려서 시험하지 않는다. 그러나 좋은 도자기를 만들었을 경우 손가락으로 두들겨 시험해 본다." 이처럼 하나님은 합당한 사람만을 시험하신다."
○ 이처럼 하나님은 시련을 주시며 사람을 시험하는데 왜 성경은 “하나님은 시험하지 않는다” 하는 것일까요?
[야고보서 1: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본문[13절]에서 ‘시험’ 다른 의미가 유혹(temptation)입니다. 유혹은 사탄이 하나님의 자녀를 꾀어 죄악의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시련 당할 때,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다” 하나님을 원망하며 죄의 책임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시련은 분명 하나님의 계획과 허락 속에 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면 사람을 넘어뜨리는 유혹도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일까요.
[창세기 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동산 중앙에 있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동산을 오가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날마다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따먹지 말라 명하신 그 나무에 조금의 관심도 없었습니다. 죄의 유혹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귀가 그들 마음속에 유혹한 후로는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인에게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죄가 문 앞에 엎드려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창 4:7] 하셨습니다. 다스릴 수 없다면, 다스리라 말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죄의 유혹은 죄성을 가지고 태어난 인간이 떨쳐 벗어야 할 굴레(束缚)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죄를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굴복했습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게 세례식을 하던 날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예수이십니다.
[마태복음 4:1] “그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셔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밤낮 40일을 금식하신 후에 주리셨다.” 했습니다. 그때 마귀가 찾아와 “이 돌들로 떡 덩이가 되게 하라” 유혹했습니다. 사탄은 누구보다도 우리의 약점을 잘 아는 악한 영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단을 물리치셨습니다. 이 말씀은 [신명기] 말씀의 인용입니다.
[신명기 8: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산 주변을 40년간 방황하는 중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무수한 적들의 공격을 막아냈고, 그들이 떠돌던 광야에는 그들의 식물 ‘만나’를 갈던 돌절구가 발견되었습니다. 그들이 마실 물이 없고, 밭을 갈아 종자를 심지 않았건만 그들은 하나님의 입의 선포에 따라 이슬처럼 내린 만나를 먹고,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반석을 칠 때 나온 샘물로 목을 축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그들이 지나던 광야에는 갈라진 큰 반석이 있는 것을 봅니다.
○ 하나님은 우리 안에 순전한 믿음, 확실한 믿음, 변치 않는 믿음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결국, 죄를 다스리고 모든 시험을 이기고 승리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죄를 이기고, 죄에서 우리를 구속하시는 분이십니다. 가인에게 주었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하신 명령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망은 이 땅에서 우리가 부유하고, 재미있고, 평안하기를 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물론 믿음의 가정에서 나온 사람이 세상에서 머리가 되고 세상의 지도자가 되고, 하나님의 남다른 축복이 있음을 봅니다. ○ 그러나 하나님은 궁극적인 바람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녀 되기를 원하십니다.
[야고보서 1: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 오늘 야고보 선생은 구하는 자에게 필수로 있어야 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입니다. ○ 한 눈은 세상을 바라보고, 한 눈은 하늘을 바라는… 세상도 가지고, 하늘의 영광도 취하고자 하는 두 가지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8절]에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라.” 했습니다. 이런 사람의 믿음은 정한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 영광과 세상의 영광을 동시에 누리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두 마음을 품은 자를 하나님은 싫어하십니다.
이런 사람에 향하여 말씀하기를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지 말라”[7] 말합니다.
○ 주님은 우리가 눈에 보이는 것을 믿고, 의지하고, 우리의 힘과 지혜가 허락하는 가능한 범위 안에서 사는 것, 나의 한계 속에서 사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마가복음 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나님은 내가 믿음의 무한한 가능성,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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