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 1:17-2:10   <기도하는 요나>

[요나 2장]은 물고기에 삼킴을 당하여 사실상 죽은 목숨인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를 드리는 모습입니다. 요나는 그동안 하나님을 찾지도, 기도 생활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탄 배가 풍랑을 만나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도 잠만 자고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가 바다에 던져진 이후로 기도하는 것을 봅니다. 사람이 배부르고 편안하면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하는 사람을 징계하십니다. 사람은 고난당 할 때, 자신이 무기력한 존재임을 깨닫고 현실을 깨닫습니다. [시편 119:71] 고난당 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요나 2:2]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3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에 던지셨으므로

○ '스올'은 지옥, 무덤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요나는 자신이 물고기에게 삼킴을 당하는 순간에 그가 인생의 깊은 수렁에 빠진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동안 그는 얼마든지 자신이 하나님의 징계가 없이 다시스까지 가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 꿈꾸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의 행위를 보시고, 간여하고 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 그런 요나가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말합니다. 그가 어떻게 그는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는 자가 된 것일까요? 그가 아직 ‘스올의 뱃속에서’ 살아있는 까닭입니다. 그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가고, ‘땅이 빗장으로 오래도록 막았으나’ ‘그의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신’ 분이 여호와이신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하나님을 잘 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믿는다’와 ‘아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지식으로 ‘긍정하고 동의한다.’ 하는 하나님과 ‘체험의 하나님’은 차원이 다릅니다.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에 던지셨다.” 요나는 말하는데, 실제로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진 이들은 배의 선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요나는 자신을 바다에 던진 이가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 지금까지 요나는 “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며 달과 별로 밤을 주관하게 하신 하나님, 폭풍까지도 주관하시는 하나님” 이는 요나가 말씀으로만 듣던 하나님, 귀로 듣기만 한 하나님, 머리로 생각한 하나님, 관념적인 하나님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은 나의 일이나 세상사에 어쩌다가 관여하시는 분, 나의 일에 간여하지 않으시는 분, 솔직히 살아 계신지, 존재하는지 알 수 없는 분”이라 말합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자연현상이며 우연과도 같습니다. ○ 그러나 이런 말들은 다 자신이 직접 일을 당하지 않아서 하는 말들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작은 신음에도 귀를 기울이시는 분이시며 나의 생각을 통찰하시는 분이십니다. 결혼식 날 비가 오는 것, 바람이 부는 것, 화창한 것 모두 하나님의 하시는 일입니다.

◉ 야곱의 아들 요셉은 형들이 그를 죽이기 위해 구덩이에 던진 일, 자신을 애굽으로 가는 상인에게 팔아넘긴 일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일들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획하심, 하나님의 뜻이 있는 까닭입니다.

[창세기 45: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했습니다.

◉ 예수님이 말씀하신 비유 중에 집을 떠난 탕자는 집에 돌아와 아버지를 향하여 [누가복음 15:21]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했습니다. 탕자는 쥐엄나무 열매로 배를 채우고, 의지할 이, 하나도 없는 타지에서 고난당 하는 중에 자신의 죄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우리가 죄를 고백하여야 할 대상은 첫째가 하나님 앞에서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기도 하시고 택하기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나의 생사 권한이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 사람이 선을 행하여 축복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나, 사람이 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떠나야 했던 것이나, 결국 이 모든 선택은 자신이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이는 우연이 아니고 다 하나님이 보고 계신 일이었으며, 둘 다 하나님의 열어놓으신 길이며,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시편 1:3-5 ]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요나 2:4]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 요나는 자신이 '쫓겨났다' 말하고 있습니다. '쫓겨났을지라도' 이 말은 자신이 선지자 직이 박탈되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선지자 직분을 내버린 것은 요나 자신이 아닌가요? 그런데 왜 요나는 여호와의 목전에서 '쫓겨났다' 말하는 것인가요? 이는 요나가 불순종하여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떠날 때, 하나님이 “그럼 네가 원하는 대로 되어라.” 하신 일입니다. 사람이 떠나고자 한다면 언제든지 떠날 길을 열어두십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쫓겨난 자와 같았습니다. ○ 바울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환경이 허락하지 않아 떠나야 하고, 피해야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이고, 인도하심이었습니다. 바울은 전도하는 중에 성읍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아 성벽을 타고 내려 도망해야 했던 애매한 고난을 받았는데, 죄를 짓고 오는 고난을 주를 위한 고난으로 말하면 안 됩니다.

○ 그런데 사람이 하나님의 징계를 모르고, 자신의 고집과 죄로 인하여 일어난 일을 자신은 의롭다 여기고, 사람을 원망하고 환경을 탓한다면 참으로 미련한 사람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 자신의 길을 갈 때 하나님은 침묵하십니다. 그렇게 요나는 다시스로 가는 길에 배를 순적히 만나고, 순풍이 불어, 가는 길이 형통하고 신세계의 소망이 넘쳤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 같습니다.

[요나 2:5] 물이 나를 영혼까지 둘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워싸고 바다풀이 내 머리를 감쌌나이다.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 요나는 바람 부는 바다, 깊은 물 속의 절망적인 상황 속에 이르렀습니다. 심지어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다 했습니다. 깊은 심연에 이른 것입니다. 그때, 요나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요나는 선원들 앞에서 이 모든 재앙이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여 일어난 재앙이라고 말합니다. 요나는 정직했습니다.

[요나 4:2]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 교만한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당할 때, 자신의 죄악이 드러날 때, 오히려 마음이 강퍅해져서 돌이켜 회개할 줄을 모르고, 변명하며 고집하는 사람입니다. ○ 출애굽기의 애굽왕 바로가 그랬습니다. 바로는 10가지 재앙이 임하여 망하게 되었을 때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매를 맞고 죄를 뉘우친다는 것을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멸망으로 가는 길을 선택한, 하나님을 대적한 어리석은 자였습니다.

[요나 2:8,9]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모든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9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그러나 

요나가 절체절명 순간에 자신의 고집과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선택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자원하는 심령을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 구원의 길, 소망의 문을 열리는 것입니다.

[요나 2:10]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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