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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46:1-10 <누구를 의지할까>
시편 146:1-10 <누구를 의지할까>
[146:3]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 ‘귀인들’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은 사람들이 보기에 힘이 있고 권세를 지니고 있으며충분히 의지할 대상으로 보이지만, 결국 도울 힘 없는 허탄한 존재에 불과함을 말합니다. 여기서 ‘인생’이란 원어로 ‘아담’으로 ‘흙’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시인이 이 단어를 사용한 것은 이유는 명백합니다. 세상에서 볼 때 아무리 권세 있고 능력이 있는 자라 해도 그들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멸망하여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인생이란 의지하는 자에게는 물론이고 자기 자신조차도 도울 힘이 없는 자, 스스로를 구원할 수도 없는 자들입니다. 그들의 생명은 마치 ‘바람’처럼 덧없고 순식간에 일어났다 사라지는 존재입니다.
[146:4]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 ‘그 도모’란 ‘생각하다’라는 말로 바꿀 수 있습니다. 사람이 미래를 예측하고 세우는 ‘만들어 낸 훌륭한 생각이나 사상’ 혹은 ‘장대한 삶의 목표들’, ‘고상한 사상들’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도모는 조만간 무용지물이 되고 말 것입니다.
[146:5]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말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곱에게 오셔서 친히 언약을 맺으시고 그의 여정 가운데 닥쳤던 온갖 위기와 어려움 속에서 그를 책임지고 보호하신 분입니다.
[146:6] 여호와는 천지와 바다와 그 중의 만물을 지으시며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며
○ 본 절은 창조의 대상을 열거합니다. 먼저 천지와 바다는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 영역을 말하고, ‘그 중의 만물’은 그 영역 안에 존재하는 개별적인 동식물들, 자연 만물을 지칭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이심과 또한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심을 말합니다. 그러면 ‘광야와 사막’도 하나님의 창조에 속하는 것일까요? 성경에는 직접 "사막을 만드셨다" 하는 말은 없습니다. 대신 성경에는
[시편 104:10-11] "그가 샘을 골짜기에서 솟아나게 하시고 산 사이에 흐르게 하사 들의 모든 짐승에게 마시게 하시니 들나귀들도 해갈하며"
[이사야 41:18] "내가 헐벗은 산에 강을 내며 골짜기 가운데에 샘이 나게 하며 광야가 못이 되게 하며 마른 땅이 샘 근원이 되게 할 것이며“
○ 하나님은 모든 지형을 이루시고 만드실 수 있는 분이니 ‘광야나 사막’ 또한 그분의 권능 아래 있다 할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에 하나님이 어둠을 창조하셨다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요?
[이사야 45:7]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만들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 여기서 의미는 하나님은 빛과 어둠, 평안과 재앙 모두를 주관하시는 분이심을 묘사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첫날에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빛이 없는 곳은 어둠입니다. 하나님은 빛을 만들고,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크신 능력으로 지극히 높은 하늘, 광활한 땅, 헤아릴 수 없는 깊고 넓은 바다를 지으신 분임과 동시에 그 모든 공간에 아름다운 것으로 채우사 조화를 이루게 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심판으로 황폐한 곳, 사람이 살 수 없는 헐벗은 곳에 은혜로 강이 흐르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과 장소는 황무한 곳, 피폐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 여기서 흥미로운 표현은 [6절] ‘여호와는 진실함을 지키시는 분’이란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진실로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분’이라는 말 대신에 시편 기자는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 자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46:7] 압박당하는 자를 위하여 공의로 판단하시며 주린 자에게 식물을 주시는 자시로다
○ 이처럼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으로 악인들에게 압박당하는 자들을 위하여 공의를 행하시고 구현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단지 옳고 그름을 판단하시는 분이 아니고 의로운 재판장임과 동시에 풍성하신 자비를 베푸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늘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계신 데 왜 고통(전쟁, 기아)이 존재하는가?' 이 질문은 기독교 신학에서 오래된 '신정론(Theodicy)’ 즉, "하나님은 정의로우신데, 왜 세상에는 악과 고통이 존재하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 성경과 신학자들의 대답은 분명합니다 ‘인간은 자유의지와 책임이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로봇처럼 만들지 않고 자유의지(Free Will)를 주셨습니다. 전쟁과 기아는 하나님이 직접 일으키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탐욕, 권력욕, 자원 독점 등 '죄'의 결과로 발생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여 하나님을 떠났을 때 세상에는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나듯, 자연계와 사회 안에 고통이 들어온 것입니다.
○ 하나님이 제 3일에 창조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창 1:11]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그런데 놀라운 것은 제 4일에 해와 달과 별을 만드셨다는 사실입니다. 해와 달과 별이 있기 이전에 어찌 풀과 씨 맺는 채소가 가능하다는 말입니까? 그 대답이 [창세기 2:5]에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라 했습니다. 세상의 만물과 해와 달과 별을 다 만드시고, 마지막에 만드신 것이 사람입니다. 사람이 있기 이전에 채소가 있었고, 해와 달과 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있고나서 비가 내리고 채소가 나는 일이 의미가 있고, 해와 달과 별이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죄악과 고통에 처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인간의 지혜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더 큰 계획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고통 자체가 선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그 고통을 통해서도 선을 이루어 가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이사야 55:8-9]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하나님은 고통에 동참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멀리서 인간의 고통을 구경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통해 인간의 고통에 들어오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죄악과 굶주림 전쟁으로 죽어가는 이들의 곁에서 함께 울고 구원의 줄을 던지시는 분이십니다.
[146:8] 여호와께서 의인을 사랑하시며…
여기서 말하는 ‘의인’은 죄가 하나도 없는 완벽한 사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의미는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살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자, 더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지킴으로 인해 악인들, 불의한 자들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의로운 일로 고난을 당하는 자들을 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짓지 않는 자를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죄인이라도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살기 위하여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하는 자들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모든 복과 저주는 자신의 선택에 따른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诗篇 146:1-10 <要倚靠谁>
[146:3] 你们不要倚靠君王,不要倚靠世人,他一点不能帮助。
“君王” 和 “没有能力帮助的世人”,在人看来是有权有势、足以倚靠的对象,但实际上不过是无法提供帮助的虚空存在。这里的 “人生” 在原文中是 “亚当 (Adam)”,意指“泥土”。诗人使用这个词的原因是显而易见的。世上的人,无论看起来多么有权有势、大有能力,其本质上都是因神的审判而走向毁灭、归回尘土的存在。所谓人生,不仅对于倚靠人生的人,甚至连对他自己也是毫无帮助、无法自救的。他们的生命就像 “风”一样虚无,转瞬即逝。
[诗篇 146:4] 他的气一断,就归回尘土;他所打算的,当日就消灭了。
“其打算” 可以换成 “思考”。指的是人预测未来并制定的 “精心构思的想法或思想”,或是 “宏伟的人生目标”、“高尚的思想”。然而,所有这些打算迟早都会变得毫无用处。“雅各的神” 是指以色列的神,是那位亲自临到雅各身边与他立约,并在他人生旅途中所遭遇的各种危机与苦难中,负责到底并保守他的那一位。
[诗篇 146:6] 耶和华造天、地、海,和其中的万物;他守诚实,直到永远。
○ 本节列举了创造的对象。首先,“天地海”是指耶和华神的创造领域,而 “其中的万物”是指存在于该领域内的各个动植物及自然万物。这表明耶和华神不仅是创造天地的创造主,也是统治世界的上帝。那么,“旷野和沙漠” 也属于神的创造吗?圣经中并没有直接提到 “创造了沙漠” 这样的话。代之的是,圣经中……
[诗篇 104:10-11] “耶和华使泉源涌在谷中,流在山间,使野地的走兽有水喝,野驴得解其渴。”
[赛亚书 41:18] “我要在净光的高处开江河,在谷中开泉源;我要使旷野变为水池,使干地变为涌泉。”
既然神是成就并创造所有地貌的一位,那么 “旷野或沙漠” 也自然在祂的权能之下。那么,圣经中提到神创造“黑暗”又是什么意思呢?
[赛亚书 45:7] "我造光,又创造黑暗 我施平安,又降灾祸;造作这一切的是我耶和华。"
○ 这里的意义是描写神是主宰光与黑暗、平安与灾祸的那一位。神在第一天说 “要有光”,就有了光。理所当然地,没有光的地方就是黑暗。神是创造光并赐予光的那一位,神是施予恩典的那一位。神以伟大的能力创造了至高的天、广阔的地、深不可测且辽阔的海,同时也以美好的事物充满所有的空间,使其达成和谐。
神是使因审判而荒废之地、使无人能居的赤露之地,因着恩典而流淌江河的那一位。然而,那些拒绝并拒不接受神恩典的人和地方,终将成为荒芜之地,沦为疲惫颓废的人生。
这里有趣的表达是 [第6节] “耶和华守诚实”。诗人并没有说“神是真实守护以色列的那一位”,而是表达了神本身就是信实的一位。
[诗篇 146:7] 他为受屈的伸冤,赐食物给饥饿的。
○ 如此看来,神是公义的一位,祂为那些遭受恶人压迫的人施行并彰显公义。神不仅仅是判断是非的一位,祂既是公义的审判官,又是施予丰盛慈爱的一位。世人总是否定神的存在,并这样问說:“既然神存在,为什么会有痛苦(战争、饥荒)存在?” 这个问题是基督教神学中悠久的 “神正论 (Theodicy)”,即 “神是公义的,但为什么世上会有邪恶与痛苦存在?” 这一疑问。对于这一提问,圣经和神学家的回答是明确的,即 “人类是拥有自由意志与责任的存在”。神并没有把人造得像机器人一样,而是给了人自由意志 (Free Will)。战争与饥荒并非由神直接引发,而是因人类的贪婪、权力欲、资源垄断等 “罪” 的结果而产生的。正如亚当和夏娃堕落并离开神时,土地上长出荆棘和蒺藜一样,痛苦也随之进入了自然界和社会之中。
○ 神在第三天创造了什么? [创世记 1:11] “地要发生青草和结种子的菜蔬,并结果子的树木,各从其类,果子都包着核。”
但令人惊讶的事实是,神在第四天创造了日、月、星辰。在日、月、星辰出现之前,青草和结种子的菜蔬怎么可能存在呢?其答案就在
[创世记 2:5] “野地还没有草木,田间的菜蔬还没有长起来,因为耶和华神还没有降雨在地上,也没有人耕地。”
○ 神创造了世间万物和日、月、星辰后,最后创造的是人。在人出现之前,已经有了菜蔬,也有了日、月、星辰。然而,正因为有了人,降雨和菜蔬的生长才有了意义。
○ 神爱世人。然而,人类却陷入了罪恶与痛苦之中。即便在这种情况下,我们也必须明白,神有着人类智慧无法理解的更伟大的计划。虽然痛苦本身并不是善的,但事实是,神是那位即便通过痛苦也能成就善工的一位。
[赛亚书 55:8-9] 耶和华说:“我的意念非同你们的意念,我的道路非同你们的道路。天怎样高过地,照样,我的道路高过你们的道路,我的意念高过你们的意念。”
○ 神是参与苦难的神。神并不是在远处袖手旁观人类的苦难,而是通过背负十字架的儿子耶稣基督,亲自进入了人类的苦难之中。神是在因罪恶、饥饿与战争而濒临死亡的人们身边,与他们一同哀哭,并向他们伸出拯救之手的那一位。
[诗篇 146:8] 耶和华喜爱义人。…
○ 这里所说的 “义人”并非指毫无罪过、完美无缺的人。这里的意义是指为了遵行神的旨意而竭力奋斗的人;更进一步说,因为神的旨意而受不义之人的蔑视与冷待,并甘愿忍受公义苦难的人。神寻找的不是不犯罪的人,而是即便身为罪人,却明白神的旨意,并为按其旨意生活而尽心、尽意、尽性的人。我们不应忘记,所有的福分与咒诅都取决于自己的选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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