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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0.06 요한복음 15:12-17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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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5:12-17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한복음 15:12-17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한복음 15: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그런데 13장에서도 보면 주님은 동일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15장]에서 참 포도나무의 비유를 마치시고 다시 한번 제자들에게 마지막 유언의 말씀으로 남기신 것입니다. 참 포도나무에 연합한 가지인 성도는 마땅히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사랑의 기준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이를 가장 큰 계명이라 하셨습니다. ○ 그러나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신 이 말씀은 참으로 어려운 말씀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사실 제자들은 서로 피를 나눈 형제자매도 아니요. 더구나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사이도 아닙니다. 그들은 서로 학력이나 직업이 다르고, 세상에 내세울 만한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세리와 같이 모든 사람에게 지탄받는 자도 섞여 있었습니다. 그들이 서로를 볼 때 존경과 사랑의 대상이기보다는 멸시와 증오 경쟁의 대상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그런 그들에게 서로 사랑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는 ‘아가페’를 명령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5: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사람이 자기 가족을 사랑하는 것을 ‘스톨게’라 합니다. 사람이 자기와 가까운 사람 자기와 유사한 성격과 관계가 있는 사람 사랑하는 것을 ‘필레아’(友誼)라 합니다.
○ 6.25 전쟁 중에도 한국에게 정신분열증에 걸린 사람이 없었던 것은 한국인에게는 뜨거운 가족 사랑이 있어서… 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가족사랑은 귀한 것입니다. 한국인에게 ‘내 가족 사랑’은 아주 대단한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이 경제성장을 이루기까지 고아 수출이 전세계 가장 많았던 것은 이웃을 돌아보는 사랑이 부족했고 남을 배척했음을 보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가족만 아는 사랑은 이기적이고 편협한 사랑이라 할 것입니다. ‘필레아’라는 友誼의 사랑이 있습니다. 우리를 서로 묶어주고 연합하게 하는 힘입니다. 내 지역, 내 고향, 내 학교 출신의 사람들이 연합하지 않으면 어떻게 지역이 발전하고, 힘을 합하여 역경을 이겨 나가겠습니까? 그런데 이 또한 지역주의가 너무 지나치다면 그것은 파벌에 불과한 것입니다. 빈부의 격차를 가져오고, 정치적인 갈등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 어떤 국제미스선발 대회에 국제미인들이 나오면서 면접이 있었습니다. “당신이 세상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보세요” 어떤 미국의 대표는 “전쟁과 가난 굶주림이 없는 세상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른 나라의 미녀는 “세상의 기후변화에 대해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모두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한국의 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 서로의 아픔을 공감하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전쟁도 없고, 굶주림도 없는 세상, 기후변화에 함께 대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모든 것에 앞서 기본적으로 누군가의 아픔에 공감하고, 누군가의 마음을 알아주고 공감하는 것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기쁨을 주는 것입니다.
○ 지금은 감성의 시대라 합니다. 젊은이의 취향에 공감하고, 거리 노숙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 때, 그 사람은 힘이 있는 사람, 삶의 목표를 가진 사람,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물질로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관심을 가지고, 벗이 되고,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 지금 우리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과 돈과 쾌락 사랑하기를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한 말세를 살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나의 짐도 무거운데 다른 사람의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실로 더 무거운 짐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너희도’라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의 진리를 아는 너희’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너희’라는 말씀입니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 주님은 내가 “세상에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내가 왜 죄인이냐? 나는 의롭게 착하게 살아왔다.” 말하는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위하여 자신의 생명까지도 버리신 주님이십니다. 우리는 주의 사랑을 받은 자들입니다.
[요한복음 15:13,14]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본 절은 인간의 사랑 가운데 최고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자기의 친구를 위해서 자기 목숨까지도 기꺼이 내어주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이를 말로만 하신 것이 아니고, 말씀하신 바로 다음 날 형제들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심으로 친구를 위한 최고의 사랑을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도 이처럼 자신의 삶을 본받아 ‘너희도’ 사랑을 실천하라 하십니다.
○ ‘행하면’ 즉, 행함은 친구 됨에 있어서 필수적인 조건임을 말합니다. 누구든지 주의 계명을 소홀히 하여 순종하지 않는다면 예수님의 친구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예수의 이름을 부른다고 모두 그분의 친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과 관계에 있어서 말이나 지식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바로 계명에 대한 순종입니다. 그리고 이 순종은 강제적이 아닌 자발적인 동기라야 하는 것입니다. ○ 그리고 ‘행하면’이라는 말에는 ‘지속적인’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사랑은 하다가 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변치 않는 것, 오래 참는 것, 실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알게 하였음이라’ 이 말은 과거형입니다. 이미 제자들에게 다 알리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당시 제자들은 영적인 깨달음을 얻지 못하여 예수의 대속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예수께서 체포되었을 때, 다 도망하였습니다. 제자들이 위대하심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이 자신들을 버리지 않으신 것을 알고, 하나님의 맡기신 생명을 구원하는 일을 맡기신 것을 안 것은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성령이 임하는 사건을 경험한 뒤였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돌아올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 그러면 어떻게 사람이 자신의 가족이 있고, 꿈이 있고, 하던 일이 있는데 네 이웃을 돌보고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 계명을 지킬 수 있는 것입니까? 베드로는 처자가 있는 사람입니다. 한번은 그가 주님께 물었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데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마태복음 19:29]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이 말씀은 ‘내가 내 이웃을 위하여 나 자신을 드려 공감하고 아파하고 이웃을 돌아본다.’ 할지라도 주님이 나에게 손해를 입히지 않는다. 말씀입니다. 오히려 이 사랑은 나를 더 넓은 세상, 높은 곳에 이르게 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주님이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베드로만이 아니고 예수의 제자들 가운데 요한을 제외한 열 명의 다른 제자들도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천국 복음을 전하였지만,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 외에 기독교 역사상 수많은 순교자와 복음 전파자들이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자기의 생명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 표현은 과거에 종으로 대하였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의 일을 억지로 하는 자들, 알지 못하고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친구로서 그들과 동행하시며, 갈 길을 밝히 보이시고, 하나님의 신령한 비밀들을 깨닫는 축복이 있을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진실한 교제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친구’의 신분으로 연합시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