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2:10-17  <그리스도의 마음>

[로마서 12: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여기 ‘형제를 사랑하며’라는 이 말은 ‘우애’ ‘필라델피아’ 이웃에 대한 사랑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는 피차 낯선 사람이 아니라 형제요 자매입니다. 우리 모두는 한 분 하나님을 섬기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 통일된 보편 교회 안에서, 한 가족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오시는 날까지 주 안에서 함께 믿음이 자라가며, 함께 배우며, 주의 일을 감당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천국에서도 영원히 함께 주를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가족처럼 여기고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서로 사랑하는 일에 훌륭한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은 가진 자가 자기의 것을 자기 것이라 말하지 않고 나누었습니다. 이는 그들 안에 가족이라는 연대의식이 있었고 서로 간에 믿음이 있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서로 간에 한 가족이라는 인식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행 2:44,45).

○ 오늘날 교회 안에 형제 사랑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꼭 필요한 마음이 서로가 가족으로 여기는 마음, 상대방을 귀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본문에서는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라 했습니다. 이 원문을 달리 번역하면 ‘존경하여 서로 더 낫게 여기라’ 입니다.

[빌립보서 2: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 성경은 이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라 말합니다. 이것이 겸손입니다. 겸손이란 상대방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는 것,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주님은 나 같은 작은 존재를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주님은 존귀하신 분이나 종의 모습으로 오셔서 십자가에까지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빌립보서 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 우리가 교회 안에 형제자매를 볼 때, 일반 사람으로 보는 것이 아닌 그의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보아야 합니다. 겸손은 너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당신을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의 경험, 나의 재산, 사회적 지위, 심지어 ‘나의 수고까지’ 이를 내세우는 것은 나를 다른 사람보다 낮추는 것이 아니고, 나를 높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나를 낮추는 것’, ‘너를 위하여 나를 버리는 것’입니다.

○ 우리는 사람을 만나면 먼저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의 외모를 보고, 나와 다른 모습을 먼저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를 평가합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삭개오를 세리장이라 하며 멸시하고 멀리하였으나 주님은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하시며 구원받은 삭개오를 기뻐하셨습니다. ○ 누가 교회를 박해하며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는 바울 안에 하나님의 열정이 있음을 알았겠습니까? ○ 누가 형들의 잘못을 고자질하며 채색옷을 입고, 아버지의 품 안에 있던 요셉이 기근으로 죽을 야곱의 온 가족을 구원할 줄 알았겠습니까?

[로마서 12: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여기 ‘게으르다’라는 말은 여러 가지 개인적인 이유로, 망설임으로, 생각이 많아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의 지체된 성도는 마땅히 지금 내게 주어진 일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 지금 우리는 나의 재물과 시간, 내게 주어진 직장과 직장의 사람들, 내가 속한 교회와 사람들, 이 모두를 주님이 내게 맡기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들 모두는 내게 주어진 기회이며 축복입니다.

◎ [마 25장]의 달란트 비유는 종말에 하나님의 심판을 말하는 말씀입니다. 각각 종에게 5달란트, 2달란트, 1달란트 소유를 맡겨 일하라 했습니다. 소유를 맡겼다 함은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 주인에게 속한 것이며 우리는 단지 세상에서 청지기의 삶을 살고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인이 돌아오는 날, 1달란트 받았던 종은 1달란트 그냥 가지고 왔습니다. 그때 주인은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책망하셨습니다. 이는 지금 내게 주어진 시간과 재물, 사람들과 만남이 우연이고 무의미한 것이라 여겨, 나의 만족을 구하여 살아가면~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외면하였을 때,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했습니다. ‘열심을 품고’란 ‘프뉴마티(πνεύματι)’ ‘영으로’ ‘마음으로’ 하라는 말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의 마음입니다.

[요한복음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똑같이 사람을 대해서도 영으로, 마음으로 대하라는 말입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이 혹시 내 눈으로 보기에는 못나고 평범한 사람, 부족한 사람처럼 보일지라도 실제로 그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사람, 하나님이 귀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대할 때 하나님을 대하듯이 하라는 말씀입니다.

[로마서 12: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라

여기서 바울은 소망, 환난, 기도를 말합니다. 이 세 가지는 이 땅에 사는 성도들에게 중요한 부분입니다. ○ “소망 중에 즐거워한다.” 했습니다. 성도는 이 땅에 사는 동안 마땅히 어떤 소망을 갖고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가? 아니면 땅의 영화 재물에 소망을 두고 울고 웃으며 사는가? 하늘에 소망이 없는 사람은 늘 땅의 것으로 울고 웃고 합니다. 거기에는 참 평안이 없습니다.

◎ [마 13:44] 밭에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내가 그 밭을 사기 위하여 집 안에 가재도구를 내 팔고, 아이의 돌 반지, 결혼반지를 처분한다. 할지라도 그 마음에는 남이 모르는 기쁨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마땅히 마음에 날마다 잔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마음에 병든 사람, 마음에 기쁨이 없는 사람은 온전한 신앙의 소유하지 못한 것입니다.

○ ‘환난 중에 참으라’ 했습니다. ○ 야고보는 ‘길이 참으라’ 말합니다. ‘참는다’ ‘인내한다.’라는 말은 분노, 불만족, 억울함을 밖으로 표현하지 말라. 겉으로는 웃는 얼굴을 하고 겉으로는 기쁨으로 사는 사람처럼 선한 모습을 보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천국을 소유한 사람은 마음에 잔치하는 사람입니다. ‘환난 중에 참는다’ 이 말은 ‘환난 중에 피하여 도망하지 않는다’라는 뜻입니다. 많은 교회와 성도가 환난을 당하면 분열하고 깨지고 흩어집니다. 왜 분열하고 깨어지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함께 섞여 있는 까닭입니다. ◎ 다니엘서 2장에 보면 바벨론의 왕이 큰 신상을 보았습니다. 그의 왕국을 보여준 것입니다. 머리는 순금이요 가슴과 팔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종아리는 쇠요 그 발의 얼마는 쇠요 얼마는 진흙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손대지 아니한 돌이 날라와 쳐서 부서뜨렸다 했습니다. 이것이 바벨론 왕국의 모습이라 했습니다. ○ 한 나라, 한 교회, 한 사람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종말, 환난의 날,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 아무리 견고한 쇠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참 소망과 사랑으로 하나 되지 않은 나라, 교회, 신자의 믿음도 깨어지고 흩어질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환난 중에 물러서지 않는 것은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 이사야 선지자가 앗수르의 대군이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고 앗수르 왕의 신하 랍사게가 하나님을 훼방하는 말을 들었을 때 왕에게 하는 말입니다.

[이사야 37:4] 그가 그의 상전 앗수르 왕의 보냄을 받고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훼방하였은즉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그 말로 말미암아 견책하실까 하노라 그런즉 바라건대 당신은 이 남아 있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하시더이다

나의 억울함도, 나의 당한 손해도 나의 하나님이 보시고 하나님이 알고 계십니다. 그가 하나님을 훼방하였은즉 하나님이 그를 견책하실 것이라 했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았던 것입니다.

 

설정

트랙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