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3:7-13  <다윗의 열쇠>     2011.7.31

[계시록3:7] 빌라델피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 다윗의 열쇠에 대하여

[이사야22:15-24] 15.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가서 그 국고를 맡고 궁을 차지한 셉나를 보고 이르기를 16. 네가 여기 무슨 관계가 있느냐 여기 누가 있기에 너를 위하여 묘실을 팠느냐 높은 곳에 자기를 위하여 묘실을 팠고 반석에 자기를 위하여 처소를 쪼아 내었도다. 19. 내가 너를 네 관직에서 쫓아내며 네 지위에서 낮추고 20. 그날에 내가 힐기야의 아들 내 종 엘리아김을 불러 21. 네 옷을 그에게 입히며 네 띠를 그에게 띠워 힘 있게 하고 네 정권을 그의 손에 맡기리니 그가 예루살렘 거민과 유다 집의 아비가 될 것이며 22 내가 또‘다윗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 23. 못이 단단한 곳에 박힘같이 그를 견고케 하리니 그가 그 아비 집에 영광의 보좌가 될 것이요  24 그 아비 집의 모든 영광이 그 위에 걸리리니 그 후손과 족속 되는 각 작은 그릇 곧 종지로부터 항아리까지리라.  

왕의 국고를 맡은 셉나에게 보낸 말씀으로 그에게 말하기를, 그의 직위가 빼앗기며 그는 포로로 잡혀가게 되며 그것이 엘리야김에게 주어지게 되어 엘리야김이 그 열쇠를 그의 어깨에 가지게 되리라는 내용입니다. 앗수르의 위협 앞에서 유다가 어려운 국난에 처해있을 때 친 애굽파인 셉나는 권세를 차지하고 부귀를 독차지 했습니다. 셉나는 지도자로서 국가의 장래와 백성들의 안위를 걱정 하기는 커녕 자신의 화려한 묘실을 만드는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 하나님은 국고를 맡은 자 궁내대신 셉나를 해고하셨고(15), 대신에 엘리야김으로 다윗의 집 열쇠를 맡아 다윗의 집 전체를 관리하는 권세를 행하게 하십니다. '다윗의 열쇠' 즉 다윗 왕국의 모든 창고 열쇠를 가진 자가 된 것입니다.“엘리아김”의 이름의 뜻은“하나님이 세우시리라”는 뜻처럼 하나님은 그를 그 자리에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아김을“내 종”이라고까지 부르고 계십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엘리아김에게 “유다의 아비”(2)가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엘리아김은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즉 유다의 신실한 지도자가 될 것을 의미합니다. [이사야 36장]에 궁내대신 엘리야김은 앗수르의 침략에서 사신으로 나가 왕과 국민에게 희망을 전달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히스기야 왕에게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하도록 그리고 이사야 선지자를 만나도록 권한 사람은 엘리야김일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한 자입니다.

세우시고 폐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엘리아김에게 모든 권세가 주어진 것처럼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모든 권세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고난을 통하여 다윗의 열쇠를 차지하신 분이십니다.

 육신의 고난과 정욕을 이기고 승리한 자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
롬1:3]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유대인들는 선민의식을 가지고 구원은 자신들에게만 주어졌다고 믿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요한은 그리스도만이 우리들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실 수도 있고, 또 거부하실 수도 있는 절대적 권위를 가지신  '다윗의 열쇠를 가진 이'라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1) 거룩하고 진실하신 분이십니다. 거룩함과 진실함은 그리스도에게 적용되어 집니다. 거짓이 없으신 분입니다. 주님만이 참 구원자 되십니다.
 

[계시록 3: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9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열린 문이라 함은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문이라는 뜻입니다. 주님이 열어 놓으신 문입니다. ◎‘네 행위를 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빌라델비아 교인들을 칭찬하신 내용입니다. ‘적은 능력’이란 말은 그 지역에서 빌라델비아 교인들의 신분이나 지위 등의 외적 능력이 변변치 못함을 나타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라델비아 교인들이 유대인들이 가하는 시련과 온갖 유혹 가운데서도(9절) 진리의 편에 굳게 서서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살았음을 시사합니다.


 □ '빌라델비아'는 사데 동남쪽 약 40km 지점에 위치한 고원 도시로 포도 생산지로 유명하였다. 그곳은 서머나와 루디아 왕국으로부터 동방으로 가기 위해 제일 먼저 들러야 하는 도시로 '동방의 관문'이라 일컬어지기도 했다. 농업과 상업이 발달하여 경제적으로 상당한 부를 누렸으나 □

빌라델비아 교회가 처한 문제는 1) 외적인 황제 숭배나 핍박 같은 것도 아니었고 2) 부도덕하게 혼합주의로 이끌어 가는 이세벧주의나 니골라당 같은 내적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3) 그들이 처한 위기는 자신들만이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였다고 주장하는, 혈통적인 면에서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라는, 유대인들로부터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메시야 되심을 부정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을 핍박하는 그들은 사단을 추종하는 자들 즉 '사단의 회'가 되어 그들의 괴롭혔습니다.


◎ 행위를 보신다 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 내가 배운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행위로 구원받는 것도 아니고 인정받는 것도 아니라면 주님이 요구하신 그 행위가 무엇일까요? 율법적인 유혹이 있습니다. 신앙에는 내가 무엇인가 해야만 한다는 유혹입니다. 그러나 행위가 그것이 믿음은 아닙니다. 건강한 믿음을 갖고 유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내의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신앙생활입니다.  그들의 고난은 피 흘리는 고난도 아니고 죽음으로 위협당하는 것도 아닙니다. 나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고난을 이겨야 합니다. 우리의 죄악은 그저 저절로 씻어지지 않습니다. 

때로는 내 형제를 돌아보기에는 시간이 바빠요, 그런 시간이 무익하게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이 시간에 나의 성공을 위하여 더 수고함으로 많은 유익을 얻을 것 같습니다. 집에서 쉬고 싶어, 마땅히 돌아보아야 할 형제자매를 돌아보지 못합니다.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것이 게을러지고 감당하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이런 내 생각, 게으름이 한계이고, 고난입니다. 


산에서 만나는 꽃의 향기는 더 진합니다. 숲속에 깊은 향기를 맛볼 수 있습니다. 온갖 풍파를 겪고 살아남았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친구의 온실에서 검은 천으로 완전히 덮여 있는 작은 화분을 보았습니다. 친구가 내게 말했다. “그것은 말이야, 더 깊이 뿌리를 내리라고 그렇게 한 것이라네.” 싹이 트고 뿌리를 더 깊이 내리기 위해서는 그 주위를 어둡게 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하여’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신다. 1) 요셉은 고난의 사람이었다. 2) 욥도 다윗도 모두 고난의 사람이었습니다. 친구들의 조롱과 공격을 받으며 결국 욥은 하나님을 얼굴로 뵈게 됩니다. 인생의 성패를 순경 속에서 찾으려는 사람들이 있지만 위대한 인물들은 이렇게 고난 속에서 인생을 꽃피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의 성패는 순경 속에 있지 않다. 오히려 고난을 극복하려는 의지의 여부에 달려 있다. 사도바울은 말하기를 ‘고난 받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고 했습니다. 한 인간의 인간미는 그가 겪어낸 고민과 고통 속에서 그의 인격은 향기를 내는 것입니다.  고난과 핍박을 이겨난 자에게 영광의 면류관이 주어질 것입니다.


[삼하 7:9-10]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리라  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저희를 심고 저희로 자기 곳에 거하여 다시 옮기지 않게 하며 악한 유로 전과 같이 저희를 해하지 못하게 하여 - 다윗 -

 

[창 22:12]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


● 내 평생의 꿈은 아름다운 교회, 정상적인 교회를 보는 것입습니다. 

◎ 주를 위한 고통과 인내를 달아 보시는 분이십니다. 마지막 결국에는 주님이 기억하시어 우리의 억울함을 아시고 우리의 고난을 아시고 우리의 위치를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고난이 지나고 주님의 은혜가 임함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들 중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 게 하리라.(9) - 유대인들은 본래 이방인들이 자신들에게 찾아와 굴복한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기독교를 박해하던 소위 유대주의자들 중 일부가 개종하고 복음으로 귀속할 것을 의미합니다.

◎ 고통에는 세상의 재물과 영예를 추구하는 고통이 있고, 자신의 죄로 말미암은 당하는 고통도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당하는 고통도 있습니다. 신앙인다운 신앙인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알고자하는 갈망, 세상의 고통 받는 자들을 보며 아파하는 고통은 고귀한 고통입니다. 거룩한 고난을 지난 자에게 …


[계시록 3: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시험의 때' 는 장차 온 세상이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 즉 진노를 면하게 될 것을 말합니다. ◎ 고난을 면하게 하신다는 축복의 말씀입니다.

고통의 날에 멸망이 가까운 시기에 세상의 즐거움과 세상에서의 부귀영화에 치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일을 즐거워하고 하나님 앞에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계시록 3:11,12]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빌라델비아에는 아름다운 신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지진이 지나고 나자 파괴된 건물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은 신전의 돌기둥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거주하시는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신다는 약속은 승리자들이 하나님 나라에서 중요하고 요동치 않는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임을 시사합니다.


◎ 하나님의 존전에서 기둥이 되는 것은 귀한 직분입니다.

[고후 3:7,8]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을 인하여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영의 직분이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 내가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 빌라델비아 교인들 중 승리자에게 주어진 두번째 약속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에게 새 이름을 부여할 것입니다. 빌라델비아는 지진으로 인해 폐허가 되었을 때 티베리우스(Tiberius)의 도움으로 재건된 후 그들은‘평화의 도시’라는 새이름이 주어졌습니다. 고난을 이기고 승리한 자들에게 새 이름이 주어짐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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