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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1서4:16-21 < 사랑을 이루라 >
요한1서4:16-21 < 사랑을 이루라 > 2011.7.17
○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각종 나무 실과를 먹으며 하나님과 교통하는 가운데 아무 부족함 없이 살았지요. 그런데 간교한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 먹는 순간 죄가 들어오게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아담은 죄로 인한 수치감으로 자기의 벗은 몸을 부끄러워하며 나뭇잎으로 가리고자 했습니다. 죄가 들어오기 전에는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했었는데, 죄가 들어오니 이내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 이런 아담에게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그러자 아담은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라고 대답하지요. 전에는 다정하고 부드러웠던 하나님의 음성이 죄를 짓고 나니 두려움으로 임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저주받은 땅에서 수고하며 고달픈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죄의 삯은 사망이 요, 죄인에게는 두려움이 찾아오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지도자로 하여 애굽에서 나올 때 하나님의 능력으로 베풀어지는 열 재앙을 보았습니다. 또 지팡이를 내미니 홍해가 갈라지고, 반석을 치니 물이 나오는 역사도 체험했으며, 험난한 광야 길에서 밤에는 불기둥으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인도받았고 메추라기와 만나로 먹이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나기도 했지요.
○ [출애굽기 20장]을 보면, 우뢰와 번개와 나팔소리와 산의 연기 가운데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광경이 나오는데, 그때 백성들은 다 두려워 떨며 감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를 못했습니다. 그리고 모세를 향해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 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했지요.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과 모세와의 사이에 왜 이러한 차이가 생기는 것일까요? 바로 백성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기는 했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온전한 친밀함을 갖지 못했습니다. ○ 반면에 모세는 정녕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믿었습니다.
세계 제2차 대전 당시 독일 나치군은 런던시에 공중 폭격을 가하였다. 공습 중에 런던 시민들은 그들의 집이나 직장 근처 정해진 지하 대피소로 피신하였다. 어느 날 야간 공습 중에 지하 대피소에 있어야할 한 여인이 보이지 않았다. 며칠이 지난 후 이웃에서 그녀를 발견하고 아무 일이 없었는지 물었다. “아무 일도 없었어요.” 라고 그녀가 대답했다. “그렇다면 왜 그날 밤에 지하대피소에 오지 않았나요?”라고 그들이 물었다. “그곳은 냄새나고 지저분해서 저는 가기 싫어요.”라고 그녀가 대답했다. “비행기에서 폭탄을 퍼붓는데 무섭지도 않으셔요?”라고 묻자, “아니요”라고 그녀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제가 성경을 읽다보니 하나님께서는 주무시지도 졸지도 않는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러니 우리 둘 다 밤을 새고 있을 필요가 뭐 있겠어요? 저는 이렇게 기도했어요. 주님, 찬양 드리고 감사드립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저를 맡기고 다시는 지하 대피소에 가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깨달은 신자의 고백이다. 그것을 깨달음으로써 그녀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장래의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겼다.
며칠 후 적군의 전투기가 그녀의 마을을 공습하였는데, 폭격이 끝난 후 모든 집들이 파괴되었지만 오직 그녀의 집만이 그대로 서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보호 안에 그대로 보존되었다.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요일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 믿음은 두려움을 떨쳐버립니다. 믿는다 하면서도 마음에 두려움이 있다면 그 사람은 믿음 안에 거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회복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두려움을 내어 쫓으시고 기쁨과 평안을 선물로 주십니다. 그러나 마귀는 두려움을 선물로 줍니다. ○ 우리가 사랑하며 살아갈 때 평안이 나의 마음에 풍성하게 됩니다. 삶이 힘이 있고, 웃음과 감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미움과 시기, 증오심을 품고 살아갈 때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이것은 마귀가 좋아하는 일입니다. 죄 아래 머물러 있으면 두려움이 나를 짓누르고 멸망으로 이끌어 갑니다.
○ 우리는 지금까지 그리스도 안에 거하라는 말씀에 집중했습니다. 거룩함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우리의 사업과 먹는 것 마시는 것 사람을 만나는 것 이 모든 것이 거룩하기 위하여 그리스도 안에 거하라 했습니다. 성소에는 떡이 있고 향단이 있습니다. 날마다 새 떡을 먹고 새 향을 놓아야 합니다.
○ 마음을 안타깝게 만드는 말 중에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반대로, 기분이 좋은 말 중에는 ‘사랑을 이루다.’라는 말이 있고요. 부부는 사랑 안에서 둘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동일하게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 우리의 마음의 성소에 불을 밝히는 것입니다. 금등대에 불을 밝히는 것입니다. (계1:13)에 일곱 지방 교회들을 상징하는 일곱 금 등잔대들 사이에 사람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거니십니다. 교회는 등잔이 아니라 등잔을 떠받치는 대에 불과 합니다. 등잔이 없다면 등잔대는 공허한 것이며 아무런 의미가 없다. ○ 빛 되신 주님이 등잔이 되어 교회들은 흑암 중에 빛을 비출 것입니다. 대제사장으로서 그리스도는 등잔대들을 손질하십니다. 잔을 정돈하기 위해, 제사장은 먼저 타버린 심지를 자르며… 그곳에 기름을 더 하여야 합니다. 빛 되신 예수님이 계심으로 등잔대는 빛을 발합니다.
[요일4:20 -21]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 믿음의 척도는 성경보고 기도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형제를 사랑 하는가 사랑하지 않는가? 여부로 나타납니다. 보이는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1. 너희가 친한 사람만 사랑하면 불신자들도 다하는 것입니다.
[마5:46,47 ]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3. 하나님을 사랑한다며 그러므로 나가서 나라의 정치를 바로 잡아야 하고 사회 무질서를 바로 잡아야 하고, 부정부패를 없애야 한다고 말합니다. 의료, 교육, 식품 각 방면에 노력을 합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에 기초한 것입니다.
인간관계가 원만치 않은 사람 두 가지 유형
1) 인간관계 경시하는 사람입니다. 인간관계가 삶에 있어서 중요하지 않으며 실상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인간의 성패는 인간관계보다 나의 능력, 학문적인 노력, 업적에 의해 결정된다. 믿습니다. 따라서 인간관계에 시간을 들여 신경 쓰는 것이 헛된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사람 사이에는 어차피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이다. 인간관계는 상처만 줄 뿐이다. 주변에는 신뢰할 만한 가치 있는 사람이 없다. 생각합니다.
2) 인간관계를 불안하여 하고 두려워서 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간관계를 무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간관계 경시형과는 다르지만 결과적으로 사람을 피하고 고립된 생활을 한다는 점에서는 유사합니다. 이들은 사람을 만나면 왠지 긴장되고 불편하고 피곤합니다. 내가 잘못하거나 적절히 행동하지 못하면 나를 무시하고 우습게 볼 것같습니다. 사람을 피하는 것이 상처를 덜 받는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인간관계 불안형은 가족이나 소수의 친한 친구들, 즉 안심하고 편안하게 만날 수 있는 사람들과만 인간관계를 유지할 뿐이다.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일이 어렵다.
□ 나의 마음에 사람에 관심이 없고, 사람에 대한 기쁨이 없다는 것은, 사랑하기 거부하는 것은, 죄에서 나온 것이고 상처받은 심령의 결과입니다.
□ “ 내게 사랑이 싹트고 내게 자원하는 마음이 생기면 사랑하겠노라” 하는 것은 사단의 계략이며 죄 가운데 나를 방치하는 것입니다.
□ 사랑의 마음이 없는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사랑의 마음을 내게 허락하소서. “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이 없이 행하는 모든 일들이 울리는 괭과리(钹)에 불과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의 기쁜 소식을 들고 이방으로 가기를 싫어했습니다. 자기 민족 자기 동포만을 전도하고자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예루살렘에 핍박을 주시어 그들을 세상에 흩으셨습니다.
미국의 성공한 카네기 공대 졸업생을 추적 조사한 결과, 그들은 한결같이 이구동성으로 <성공하는 데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은 15퍼센트밖에 영향을 주지 않았으며, 나머지 85퍼센트가 인간관계였다.> 고 말했습니다.
□ 사랑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을 이루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셨고 내가 예수님을 사랑하여 하나가 되듯이 형제 안에서 사랑을 이루어야 합니다. 사랑의 공동체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 사랑은 너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하는 것이고 실제로 무관심한 것은 미움보다 악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성공과 자신의 명예 자신의 기쁨에 관심을 갖습니다. 사랑은 너에 대한 관심입니다. 고전13장을 사랑의 장이라 했는데 charity라 번역하고 있습니다.
□ 사랑은 성경공부 열심히 해서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몸으로 배우는 것입니다.
□ 아가페 사랑은 의지적인 행동입니다. 예수님은 의지적으로 사랑하셨다. 예수님이 이 땅이 좋아서 오신 것도 아니요 십자가가 좋아서 올라간 것도 아닙니다. 희생은 누구나 싫어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 하셨는데 이는 사랑의 사역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 우리의 마음에 사랑을 회복하여야 합니다. ○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우리는 무조건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나약한 의지력으로 우리 혼자 힘으로 사랑의 계명을 지킬 것을 기대하시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옛 언약의 한계입니다. 우리의 육은 참으로 약하고 약합니다.
○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피와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그의 이름을 가졌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인간적으로는 사랑할 수 없는 사랑을 성령을 의지하여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주님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하실 것입니다. 당신의 문제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셨듯이 사랑의 계명을 행하는 것입니다.
[요일5: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롬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는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요, 그의 계명들을 지킨다는 것은 성경 66권 말씀을 지켜 행하고 사랑으로 완성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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