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43:1-11  <두려워 말라>

[이사야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첫 번째 이유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구속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구속’은 사람의 가장 가까운 혈족이 그의 잃어버린 재산을 되찾아 주는 것, 노예 상태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것, 기업을 보전하며 후손을 낳게 하여 영원히 가문의 이름을 잇게 해주는 것, 억울하게 살해된 자를 대신하여 원한을 갚아 주는 것 등을 의미합니다. 이 모든 일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여기서 ‘너를 구속하였고’라는 완료의 표현은 과거에 자기 백성을 구속하신 일들을 말합니다. 동시에 이는 장래에 있을 구속을 말하는 예언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여기 ‘구속'은 다른 이방 종교에서 발견되지 않는 특별한 점이 있는데 그것은 구속해 주는 자가 자신을 희생하여 상대방을 구원해 준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이 구속의 대상이 되겠습니까? 모든 사람일까요?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즉, 구속받는 자와 구속자가 가까운 관계라는 전제되어야 합니다. 저는 하나님이 왜 저를 택하여 불러주셨는지 알지 못합니다. 저는 아무런 잘난 것이 없는데 하나님은 저를 지명하여 불러 주셨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까닭은 나를 불러 하나님의 소유 삼았기 때문입니다.

[43: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하나님은 과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구속해 내신 역사적 사건들이 있습니다. 본 절에 ‘물’과 ‘불’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광야를 지날 때 경험했던 홍해, 불타는 광야, 요단강을 연상케 하는 말입니다. 동시에 이 말씀은 장차 하나님의 백성이 겪게 될 혹독한 고난을 말하고 있기도 합니다. ○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환난으로부터 면제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 역시 환난의 시기를 지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비록 고난의 한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심으로써 그들은 안전하게 보호를 받는 것입니다.

○ 사람들은 지금 풍요의 시대라 말하지만, 사실 하나님의 백성은 영적으로 바벨론이라는 음녀가 지배하는 광야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지명하여 부르시고, “너는 내 것이라”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결국에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 땅에서 영원히 종으로 머물지 않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함을 받을 것입니다.

[43:3]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본 절에서 하나님은 자신에 관하여 삼중적인 표현을 하십니다. ⓵ 먼저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 ‘여호와 네 하나님’이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표현에 이어 ⓶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와 ⓷ ‘네 구원자'라 반복하여 말씀하시며 하나님의 속성구체적으로 하시는 일을 밝히십니다.

하나님의 속성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라는 말씀은 왜 하셨을까요? 이는 악이 없음, 성결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의미 외에 존재론적 분리의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향하여 악이나 거짓이 전혀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일하실 때, 이 세상에서 신이라 칭함을 받는 우상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존재, 초월적 권능을 행하시는 분, 구원의 능력이 있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 앞에 조금도 게으르거나 부끄럽게 행하신 일이 없으셨습니다. 그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향하여 ‘네 구원자’ 즉, 특별한 관계를 가지신 분이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 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도 역시 스스로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과연 하나님 앞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는 과연 하나님 앞에 진실하고 그분의 기쁘심을 이루어 살고 있습니까?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지요? 아니면 우리는 여전히 세상의 오염된 것을 의지하며, 바라며, 오염된 것을 좇아 살아가며, 그분의 이름을 더럽히며 하나님을 무시하며 살아가지는 않는지?

[4:3b]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

이 말씀은 이스라엘이 구원을 위해서 치루어야 할 몸값이 있었음을 전제로 합니다. 즉 이스라엘이 구원과 해방을 얻기 위해 누구인가는 죄의 대가를 치루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애굽의 멸망으로 대신하셨다’ 하는 의미입니다. 물론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희생되는 애굽의 입장에서는 억울하지 않은가? 의문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 우리가 어찌 하나님 구원의 계획을 다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를 바라지만 마귀가 점령한 이 세상에서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소돔 땅에 불과 유황으로 징벌을 내리실 때, 롯의 모든 가족이 구원에 이르렀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러나 불행하게도 롯의 아내는 소돔의 집에 두고 떠나는 풍요와 재물에 마음이 끌려 뒤를 돌아보았다가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는 레위기 16장에서 언급하는 속죄일의 ‘아사셀’ 의식과 관련이 있다고 보입니다.

[레위기 16:10]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힌 염소는 산 채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을 가지고 아사셀에게 보내어 속죄할지니라."

○ 이스라엘의 대속죄일-욤 키프르(יום כיפור)에 대제사장은 두 마리의 염소를 준비했습니다. 한 마리는 여호와께 속죄제물로 드려지고 다른 한 마리는 ‘아사셀’을 위해 광야로 보냈습니다. ‘아사셀’은 "광야로 떠나보내는 염소"라는 의미입니다. ‘아사셀’의 정확한 의미에 대한 많은 논쟁이 있지만 중요한 점은 이스라엘의 죄를 짊어지고 멀리 떠나는 속죄 염소가 있다는 것입니다.

○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하여 애굽과 구스, 스바를 속량물로 내주었다 했고 [4절]에는 ‘사람들과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게 하셨다 했습니다. 즉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하여 여러 나라와 민족들까지도 희생케 하셨다는 것입니다.

[43:5]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쪽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쪽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5절] 이하는 하나님의 주시는 소망과 안위의 말씀입니다. 자신의 백성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하십니다. 그 소망은 바벨론 포로 상태에서의 해방과 귀환의 약속입니다. ○ 이는 표면적으로 지난 2천 년간 세계 동서남북 모든 대륙에 흩어져 살았으나 1948년부터 시작하여 시온주의 운동을 통해 유대 민족이 고토로 들어올 것을 예언한 말씀일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 이후에 영적인 이스라엘이라 할 수 있는 교회를 통해 성취되어질 예언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는 복음이 온 세상에 땅끝까지 이르러 흩어진 하나님의 백성이 돌아오게 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43:6] 내가 북쪽에게 이르기를 내놓으라 남쪽에게 이르기를 가두어 두지 말라 내 아들들을 먼 곳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끝에서 오게 하며

○ 지금은 마지막 때, 하나님의 자녀들을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하시는 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는 것을 방해하면서 막는 세력을 하나님은 심판하십니다. [8]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을 이끌어 내라 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받은 백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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