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마태복음9:1-8 <포기하지 않는 믿음 포기하는 믿음>
마태복음9:1-8 <포기하지 않는 믿음 포기하는 믿음> 2010.10.24
기독교가 들어오고 초기 어느 집의 며느리가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교회에 다니는 것들은 조상도 모르고 집안의 질서도 모르고 오직 예수 귀신에 사로잡혀 집안 말아 먹을 짓만 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습니다.
때에 며느리가 교회에 다닌다고 하니 온 집안의 사람들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지요. 집안 제사 날이 닥쳐서 며칠 전부터 제사를 준비하느라고 난리법석이었는데 듣자 하니 이 집안에 예수 귀신에 사로잡힌 여자가 있어서 제사지내지 않는다며 …
집안 식구들이 핍박을 노골적으로 하고 멸시와 조롱을 보냈습니다. 집안 제사가 그럭저럭 끝났지만 기왕에 며느리를 옥죄기 시작했던 그 핍박의 강도는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시댁 식구들의 핍박은 더해 가기만 했습니다.
시아버지의 쩌렁쩌렁한 결단 촉구의 목소리를 통해 며느리의 앞날을 결정하게 되는 최후통첩이 전달되어 왔습니다. 예수를 믿던지, 말던지 결정하라는... 그것은 조상님의 은덕을 모르고 제사를 지내지 않겠다는 패륜의 짓을 하자는 것이니 우리는 우리의 집안이 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그런 며느리를 집안에 둘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까짓 꺼 요새 같으면 간단히 뭐. 안녕히 계시라고…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돈벌이를 더 잘 하는 시대잖습니까? 어쩔 수 없는 시대에서 며느리는 교회생활을 중단 하겠다 말하고 말았지요. 그래서 집안이 조용해지나 싶었는데… 그만 얼마 가지 않아 몰래 교회 다닌다는 사실이 들통 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화가 난 남편한테 흠씬 두들겨 맞아 거의 초죽음이 되고 말았지요. 그런데 차라리 죽을지언정 교회 다니는 것을 포기할 수 없다. 남편에게 흠씬 두들겨 맞아 거의 초죽음이 되어 정신을 잃고 꼼짝도 못하고 죽다 깨어나기도 여러번 여인에게 십자가의 승리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임하기 시작되어 집안을 새롭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시작된 겁니다.
그녀의 남편의 마음에 의문이 솟는 것입니다. ‘대체 이 여자가 무엇 때문에 이리도 독한 박해와 시댁의 핍박을 받으면서 교회에 다니는 것인가?’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교회가 그리도 좋아? 네. 무엇이 그리도 좋아? 집안을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복을 주기 때문이지요. 영원한 생명의 복 그게 뭔데? 예수 안에서 다시 살아나는 복이에요.
제사는 죽은 자를 위한 것이지만, 예수님 믿으면 다시 살기 때문에 죽은 자를 위한 제사가 필요 없어요. 순간 남편은 ‘제사는 죽은 자에게 드리는 제사’ ‘영원한 생명’ 란 말에 두려움과 그녀의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는 아내를 막지 않기로 했답니다.
○ 믿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시기 원하십니다.
[히브리서 11:6]“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두 소경이 예수님 앞에 왔습니다. 믿느냐? 물으셨습니다. 믿음이 있을 때 하나님의 축복도 누리게 되고, 믿음으로 구원받고, 믿음으로 고침 받고, 믿음으로 기도 응답도 받습니다.
예수님이 어느 집에서 말씀을 전하고 계셨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도무지 들어갈 틈이 없었습니다. 한 사람도 들어가기 어려운데 들것에 사람을 싣고 들어간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합니다. 아마도 거기까지 왔으니 몇 번이고 들어가려고 시도는 해봤을 겁니다. 욕도 먹었을 것입니다. 웬만하면 포기했을 텐데 그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기상천외한 방법을 생각해 냅니다. 바로 지붕으로 올라가서 예수님 있는 자리 바로 위 지붕을 뚫고 들것에 누워있는 친구를 밑으로 내려놓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반드시 고칠 것이라는 믿음이 없었다면 이런 행동은 못했을 것입니다.
◎ 친구들의 믿음은 "행동하는 믿음"“포기하지 않는 믿음”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는 시작은 믿음으로 하는데 중간에 어려움이 있다고 쉽게 포기하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은 포기하지 않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고쳐 주신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는 믿음을 보여야 합니다. 중풍병자와 친구들은 이런 믿음이 있었고 그리고 그들의 믿음은 들것에 친구를 싣고 예수님께 달려가는 믿음 즉 행동하는 믿음이었습니다. 2절에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고쳐주셨다고 했습니다.
믿음은 있다고 말하면서 행동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믿음이 아닙니다. 아무런 변화도 기적도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만일 중풍병자와 친구들이 “난 예수님이 병 고치는 능력이 있다는 걸 믿어” 하면서도 예수님께 나아가지 않았다면, 절대 고침 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마8:2-4] 한 문둥병자가 나아와 절하고 가로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3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즉시 그의 문둥병이 깨끗하여진지라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의 명한 예물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 하시니라.
문둥병자가 도시내로 많은 사람이 있는 예수님 앞으로 나오는 일은 힘든 일입니다. 돌 맞을 각오를 해야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이겨내야 했습니다. 믿음을 보여야 합니다. ○ 예수님 앞에 나가는데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힘써 나가야 합니다.
○ 가라다 지방의 사람들은 돼지 2000마리가 아까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쫓아내었습니다. 친구 결혼식이 있어서, 큰 돈 되는 일이 있어서, 손님이 와서, 소를 새로 샀기 때문에… ○ 믿음이 자라나고, 약속을 성취하는 사람의 특징의 하나는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내가 출세해야 하고, 많은 것을 소유하고 싶지만 당신이 드린 만큼 신앙을 갖게 될 것입니다. 십일조, 성수주일, 봉사 [창세기12:1-4]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경제 사회적 안정감을 포기할 때, 우리가 살던 땅이나 알던 사람들을 떠나면 그 순간부터 사회적인 안정은 보장받지 못하지요. 가족의 안정과 평안을 보장해 줄 수 있는 것이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인 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지시할 땅으로 떠나라고 말씀하실 때가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겪고나면 배우는 것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동행하심과 하나님의 신실하심, 존재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 더 큰 축복의 약속이 있음으로 해서 현재 안정과 향락을 포기합니다. 아브라함의 또 다른 포기는 창세기 22장 1-12절에 나와 있다. 1절)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라는 말씀이 있다. 하나님은 약속의 자녀 이삭을 주셨지만 시험을 통한 훈련이 필요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려고 제시한 방법은 이삭을 지시하는 땅으로 데리고 가서 번제로 드리는 것이었다. 3절)에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라고 표현되었다. 이삭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하는 존재였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길을 떠났다.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소중한 것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후에는 그대로 따랐다. 그는 만군의 여호와 창조주 하나님, 온 우주의 절대 주권을 가진 분 하나님이 이삭을 다시 주실 것이라고 신뢰한 것이다. 아브라함이 만일 주님께서 이삭을 바치라고 하셨을 때 바치지 않았다면 그 약속은 취소됐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내 놓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순종으로 믿음을 증명했을 때 하나님은 다시 그 선물을 가지고 이제는 만민을 구원하는 씨가 되는 선물로 주셨습니다. 룻기4장1-10절을 보면, 신을 벗는 것은 권리포기하고 기록되어 있다. 구약 이스라엘에서 법정에서 신을 벗으면 '당신에게 나의 모든 권리를 양도합니다. 나의 소유권을 포기합니다.' 라는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 신을 벗는다는 말은 권리를 포기한다. 라는 의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호렙산에서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발에 신을 벗으라. 했습니다. 또 여호와의 사자는 여호수아에게 네발의 신을 벗으라. 이스라엘의 신출나기 군사령관으로서 그는 마음에 큰 부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신발을 벗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의미인가? 이것은 자신의 지혜와 경험 능력을 하나님 앞에 세우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전쟁의 승패에 대해 책임과 부담도 두려움도 내려놓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저 종에 불과합니다. 축복은 하나님의 손에서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의 능력으로 도저히 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이 행하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벌거숭이로 서야 할 때가 있습니다. 병자가 의사 앞에서 부끄러움을 드러내야 하듯이 하나님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사람 앞에서도 나는 부족한 존재입니다. 체면도 지위도 드려야 합니다. 나는 단지 봉사를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을 뿐입니다. ◎ 우리에게 신을 벗으라고 할 때에는 반드시 뒤따라오는 축복의 약속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모세에게, 여호수아에게, 아브라함에게, 신을 벗고 모든 권리를 포기하라고 했을 때에는 반드시 뒤따르는 약속의 말씀, 축복의 말씀이 있었다. 한나가 젖 뗀 후에 사무엘을 여호와의 전으로 데려갔습니다. ■ 어머니는 아기를 낳기 위해서 수고하고 키우느라 수고했지만 그 아기로 말미암아 엄마는 기쁨이 있었고 배움이 있었고 의미 있는 하루하루의 삶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낳은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 우리의 소유, 우리의 미래, 우리의 생명까지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다. 내 자녀들과 항상 가까이 살 수 있다는 권리도 포기하는 그것입니다. 이제 완전히 내 아들을 내 딸을 지배하지 않겠다고 지배권, 소유권, 기득권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자녀를 얻기 위하여 매년 실로의 장막까지 달려가 귀하게 응답으로 얻은 아들이지만 나의 욕심을 내려 놓을 때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 교회 일도 마찬가지고 나의 직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인을 바꾸는 일도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고 하나님께 … 교회 일을 통하여 직장을 통하여 나의 나됨을 성취했음으로 만족하고 이 귀한 일에 나를 써주시니 감사합니다. 하고 마치는 것입니다. 내려놓음은 지혜 중의 지혜입니다. 인생의 승리는 꼭 붙잡음으로가 아니라 내려놓을 때 찾아온다. 내려놓음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원하는 것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 순간 우리는 참된 자유를 경험하게 된다. 우리는 내려놓는 것만큼 자유로워진다. 내려놓는 것만큼 믿음이 성장하게 되어지고 사랑하게 되어집니다. 아는 사람 중에 자동차를 바꾸고자 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10여년을 사용하여 값이 별로 나가지 않습니다. 만 원 정도 한국에 가자마자 차 안 바꿔? 그 차 나 주고 새로 사지 그래?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돌아올 때 즘 차 필요하면 주겠다고 하더군요.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 바울의 믿음 또한 예수를 아는 지식으로 말미암아 자신에게 유익했던 모든 것을 배설물 같이 여긴다고 했습니다. 이세상의 즐거움도 이세상의 향락도 분토와 같이 살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성령님이 나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 나의 바라는 즐거움과 희망을 온전히 포기하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어느 날 기도하는데 내가 네게 예언의 은사를 주고, 치유의 은사를 주면 너는 성령의 이끄시는 대로 너 자신을 온전히 드려 순종하겠느냐? 물으셨습니다. 두려웠습니다. 아멘 [이사야48:6-8] 6 네가 들었으니 이 모든 것을 보라 너희가 선전하지 아니하겠느냐 이제부터 내가 새 일 곧 네가 알지 못하던 은비한 일을 네게 듣게 하노니 7 이 일들은 지금 창조된 것이요 옛 것이 아니라 오늘 이전에는 네가 듣지 못하였으니 이는 네가 말하기를 내가 이미 알았노라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8 네가 과연 듣지도 못하였고 알지도 못하였으며 네 귀가 옛적부터 열리지 못하였나니 이는 네가 정녕 배신하여 모태에서부터 네가 배역한 자라 불린 줄을 내가 알았음이라 이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바꾸고 세계의 지도를 바꿀 일을 할 것인데, 너는 나 여호와 앞에서 신을 벗고 믿음으로 살라. 누군가 그러더군요. 기도하기가 쉽지 않다고 시간을 지켜야 하고 시간을 채워야 하고 찬송도 부르고 성경도 봐야 하고 더 많이 기도하기 위하여 힘을 쓰기로 했습니다.
○ 여호사밧이 찬양대를 끌고 성문 밖으로 나가듯이 믿음의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느헤미야가 기도하고 왕 앞에 담대히 나아가듯이 나가야 합니다. 행동하는 믿음이 되야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도 말하기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설교2012'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편84:1-7 <참된 헌신> (0) | 2011.12.13 |
---|---|
마가복음 6:45-52 <친구되신 예수님> (0) | 2011.12.13 |
마가 5:25-43 <혈루증 여인> (0) | 2011.12.12 |
요한계시록3:7-13 <다윗의 열쇠> (0) | 2011.12.12 |
요한1서4:16-21 < 사랑을 이루라 > (0) | 2011.1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