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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0:1-16 <양의 문>
요한복음 10:1-16 <양의 문>
[1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양의 우리’ 는 구원이 주어지는 자신의 백성이 보호받는 보편적 ‘교희’ 를 비유하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나라’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3절] 주님은 선한 목자가 양들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해 낸다 하였는데, 양과 목자와의 친밀한 관계를 강조합니다. 당시 유대에는 양을 목축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목축하는 사람은 한 사람이 약 300마리 이상을 책임지는데, 목자는 대단하게도 그 몇백 마리의 양에게 일일이 이름을 붙이고 그 양을 기억한다고 합니다. 가령 어떤 양은 ‘얼룩이’ 라는 이름으로, 또 어떤 양은 ‘검은 귀’ 이렇게 이름을 붙여 부릅니다. 이는 목자가 그 양의 상태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목회자들에게 경각심을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4절]에 보면 목자가 자기 양을 우리에서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고로 따라간다고 하였습니다. 양들은 용케도 목자의 음성을 잘 구별하여 자기 목자의 소리만 듣고 따른다고 합니다. 그리고 관광객들이 목자 소리를 흉내내어 양을 부르면 양들은 관광객의 소리를 듣고, 오지도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도망간다고 합니다. ○ 그리하여 목자는 자기 양들을 위험한 길이 아닌 푸른 목초지로, 물 있는 곳으로 양들을 인도합니다. ○ 선한 목자와 양들 사이에는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 물론 이런 신뢰의 기반은 선한 목자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 오늘날 기독교인이라는 이름은 가지고 있으나 주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교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주의 음성을 구하지 않습니다. ○ 주님과 밀접한 관계를 갖지 못했고, 목자의 음성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여 쉽게 길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 주님은 우리를 향하여 늘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경을 통하여, 환경을 통하여, 사건을 통하여, 목회자를 통하여, 혹은 옆사람을 통하여, 참으로 다양합니다. 우리는 목자의 음성에 민감해야 합니다. ○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면 그분이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갈 수 없는 것이다. ○ 왜 사람들이 주의 음성을 듣지 못할까요? ○ 이는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지 않고, 구하지도 않은 까닭입니다. 듣는데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 이런 사람은 주님의 목소리를 정확히 구별할 줄 모르는 어둠에 속한 사람입니다. 세상의 온갖 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사단의 미혹하는 목소리에 쉽게 넘어가게 됩니다.
[10:7]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양의 문’이라 하셨습니다. 구원의 유일한 길이 되신 예수님 자신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집’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통로라고 말씀하십니다. ○ 예수께서는 [8절] ‘나보다 먼저 온 자’ 들을 절도요 강도라 말씀하십니다. 다른 문으로 들어가는 자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시 진리를 거부하였던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구체적으로 지칭하신 것입니다. 왜 그들을 절도요 강도라 하신 것인가요? ○ 유대지도자들은 자신의 영화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양을 탈취하였습니다. 결국 그들은 양들을 그릇된 사망의 길로 내몰았습니다. ○ 바리새인들이나 유대종교 지도자들이 스스로 모세의 제자라 칭하며 율법을 지켜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였는데, 사실 이는 사람들을 죽이고 멸망시키는 행위입니다. 율법은 사람을 구속하고 매이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생명도 자유도 없습니다. ○ 진정한 교제가 없이 그의 도우심과 능력을 알지 못하고 율법 신앙생활은 사실은 죽은 신앙입니다.
[요한복음 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선한 목자의 특징을 삯군과 구분하여 말씀하십니다. ○ 참된 목자와 거짓 목자는 위기 때에 알 수 있습니다. 선한 목자와 삯군 목자를 구분하는 지혜가 여기 있습니다. ○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까지도 기꺼이 버린다는 것이다. 선한 목자의 가장 큰 책임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 삯군은 받은 돈 만큼만 양을 돌봅니다. 그리고 이리 떼나 강도들이 공격해 오면 우선 자기 목숨부터 보호하고자 양떼를 버리고 도망가 버립니다. 품삯을 위해서만 일하는 삯군은 양이 어떻게 되는지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 ‘도적질하고’라고 말씀하신 단어는 ‘사람을 점유한다’는 뜻입니다. 도둑은 물건을 자기 것으로 점유합니다. 선한 목자의 탈을 쓴 거짓 목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사람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고 자신의 말을 듣게하고, 그래서 우리에 있는 양을 데리고 나가기도 하고, 결국에는 도둑처럼 양을 이용하고 잡아먹고, 팔아먹는 것과 같습니다. ○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도둑질 합니다. ○ 교회가 어려워지면 많은 교회들이 교회를 성도수와 함께 거래하는 일도 보았습니다.
●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언제라도 푸른 풀이 충분히 많이 준비되어 있는 목초지를 알고 물이 있는 곳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목자는 양을 아무 때나 밖에 풀어놓아 꼴을 먹이지 않습니다. 일기에 주의하고 계절의 변화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비가 오거나 날씨가 나쁘면 양들을 우리 안에 다시 몰아넣고 저장해 둔 풀을 줍니다. 그러므로 양떼는 우리에 들어가도 또 우리에서 나와도 늘 풍성한 꼴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 하나님은 때로 우리를 가난에 처하게고 하시지만 가난은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가 풍성한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 그리고 성도가 예수 안에서 누리게 되는 풍성한 삶이 단회적이 아니라 연속적인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 다윗은 주의 안위하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시편 23편]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은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1-4절).
○ 선한 목자를 따를 때 고난도 없고, 환난도 거센 풍파도 없이 풍성한 은혜만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이러한 풍요함이 있기까지는 고난과 환난의 때를 지나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 주님은 시원한 물, 풍요의 땅에 이르기까지 광야를 지나고, 산을 넘어야 하는 긴 여정을 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 ○ 우리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주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 아브라함이 가뭄 때문에 블레셋에 갔었을때 블레셋 왕에게 아내를 빼앗길 처지에 놓인 적이 있었습니다(창 20:1,2). 그 때 하나님이 블레셋 왕의 꿈에 나타나셔서 사라를 돌려주지 않으면 그 가문의 씨를 말리겠다고 경고하셨습니다. 그 덕분에 아브라함은 블레셋 족속에게 두려운 존재로 여김받고 평안할 수 있는 은혜를 얻은 것입니다(창 20:3-16).
● ‘양의 문’으로 비유하신 것은 문 안쪽 ‘양의 우리 안’과 ‘우리 밖’을 갈라놓으신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을 때 우리의 생명을 지키시고 때를 따라 풍요하게 하시는 주님의 도우심을 얻게 되어집니다. ○ ‘양의 문’안에 있다는 것은 축복 중의 축복입니다. 너무도 귀한 사실입니다.
○ 이 원리를 모르는 성도들이 놀라운 축복과 사랑을 받았음에도 감사와 하나님의 능력을 잊고, 돈과 자신의 만족과 꿈을 찾아 주의 품을 떠납니다. 이는 스스로 사망의 어둠으로 빠져 드는 것입니다.
○ 양은 한 번 먹은 음식을 늘 되새김질하는 가축입니다. 주의 음성을 듣기 위하여 주님의 말씀을 반복하여 듣는 성도가 주님의 참된 양으로 인정받게 됨을 기억합시다.
[요한복음 10:16]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 안에서 풍요에 안주한 것이 아님을 덧붙여 말씀하십니다. ‘우리 안’에 있는 자신의 백성들에게 보아야할 온세상을 향한 새 비젼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16절]은 주님께서 교회가 이방 세계를 선교할 것을 암시하신 말씀입니다. 주님은 현재 주님의 양떼들 외에 다른 양떼들도 인도하여 주님의 양의 한 무리로 만드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바로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파되고 이방인들도 주님을 섬기는 자로 축복받게 될 일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 우리는 새끼도 잘 낳고 양육도 잘하는 양 같은 성도가 됩시다. 주님은 이스라엘 민족만 자신의 양떼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의 최후 명령은 온 세계 만민을 주님의 제자로 삼으라는 내용이며, 또 땅 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들이 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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