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4:10-16    <부르심의 소명>

하나님이 모세에게 바로에게 가라 할 때 모세는 [3:11]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4:1]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하였고, [4:10]은 네 번째 거절로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하며 거절합니다. 그리고 [4:13] “모세가 이르되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하며 3장, 4장에서 총 다섯 번 거절한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 모세가 이처럼 하나님의 소명을 거절한 이유는 한결같이 자신이 무능하여 막중한 사명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이미 40년 전 한 번 실패를 경험한 그로서는 일면 솔직하고 겸손한 태도였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자의 합당한 태도가 아닙니다. 물론 인간은 분명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거듭된 부르심에도 불구하고 응답하지 않는 것은 겸손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책임 회피이며 불순종입니다. “나는 내 하고 싶은 일만 한다.” 나의 편의(便宜) 나의 安逸을 말하며 불순종하는 자세는 이 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큰 장애가 되는 것입니다.

[마대복음 4:19]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래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저희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 모세가 이처럼 자신의 무능을 핑계로 하나님의 소명을 거절한 것은 하나님의 일을 자신이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과연 인간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일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능력으로는 가장 하찮게 보이는 일일지라도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것입니다. 인간은 사역이란 단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의 도구에 불과한 것입니다.

[출애굽기 4:10]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아마도 말주변이 없고 표현력이나 설득력이 없었거나 혹은 말을 더듬는 언어 장애의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러한 모세를 부르십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는 이미 그는 노인이 되었습니다. 과거 애굽에서 가졌던 지식과 권세도 없습니다. “쓰시려면 그때 쓰셨어야지 지금 부르십니까?” 섭섭할 것입니다.

○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는 데 있어서 말 잘하는 것은 실로 중요한 요소입니다. 실제로 조용기 목사나 김진홍 목사 “참 말을 잘한다.” 생각합니다. 그 외 큰 교회를 감당하는 많은 목회자가 대부분 말을 잘하여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교회를 크게 세우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그들의 목회가 다 성공적이냐 하면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큰 교회를 세우고 많은 성도가 몰리는 것을 보면서 성공했다 말하지만 큰 교회들이 이권 다툼에 빠져 한국교회 발전에 많은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면이 적지 않습니다. 저는 많은 한국의 신자들을 만나며 “이 세상 사람과 무엇이 다른가?” 회의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 우리는 지금 이 시대에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찾으시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부담을 주지 않는 교회, 많은 사람이 모이는 교회, 아름다운 교회를 찾고, 힘 있고, 영향력 있는 교회를 찾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일은 재물의 부족도, 사람들의 남다른 재능도 어떤 프로젝트도 아니라 생각합니다.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복하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 믿음의 사람입니다.

[출애굽기 4:12]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모세가 자신은 말주변이 없어서 하나님의 소명에 응할 수 없다고 할 때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하셔서 할 말을 주시겠다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0:19,20] “너희를 넘겨줄 때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때 무슨 말 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라

내가 말 잘하는 사람이 되어… 사람을 설득하고 이기고, 감동을 주는 말씀이 아닌 하나님이 준비하여 주신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복음을 증거 하여 결과를 얻는 것은 나의 입과 나의 재능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시는 하나님의 영이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출애굽기 4:14] 그의 말 잘함을 내가 아노라 했는데 하나님은 모세의 조력자로 ‘능변가’인 아론을 주셨습니다. 모세가 자신은 말주변이 없다고 하며 소명을 거듭 거부할 때 하나님은 불순종하는 모세에 대하여 비록 진노하셨지만 그러한 중에도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의 형 아론을 그의 대언자로 세우신 것입니다. 아론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가는 과정에서 바로나 백성들에게 나아갈 때 평생을 함께하였습니다. 만약 아론이 곁에 없었다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는 일은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 하나님은 얼마든지 나의 부족함을 채워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 그리고 알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성도의 교제와 협력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 되기를 원하십니다. 세상에 완벽한 존재가 없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자라 할지라도 누구나 결점이 있습니다.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린도후서 11]에 보면 바울은 내가 비록 말에는 부족하나하며 자신을 변명하고 있습니다. ○ [행14장]에 보면 바나바와 사울이 루스드라에 이르렀을 때 회당에 나면서부터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었습니다. 바울이 그를 보고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 이를 보고 도시의 모든 사람이 제사 드리려 소와 화관을 가져와서 소리 질러 말합니다.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바나바는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헤르메스라 하더라발을 쓰지 못하는 사람을 일으킨 사람은 바울이지만 무리는 바나바를 제우스신으로 더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더 멋지게 생긴 사람 바나바를 바울에 비하면 훨씬 위대한 신으로 여긴 것입니다.

○ 게다가 바울에게는 많은 단점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역자가 왜 저럴까?” 시험이 될 만한 병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교회를 핍박했던 사람으로 결격 사유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바울이 어떻게 지금의 유럽 땅을 복음화시키는 큰 사역을 감당한 것일까요? 그것은 그가 혼자 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6,7]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그 외에도 바울을 돕는 협력자가 많았습니다.

 

[출애굽기 4:15] “그리고 내가 너희가 해야 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 잘하는 아론을 세우실 뿐 아니라, 모세와 그 대변자 아론이 애굽에서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할지도 가르쳐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사실 말 잘하고 못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무엇을 어떻게 행할 것인가를 지시를 받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모세에게 있어야 했던 것은 그의 경험이나 재능이 아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그가 순종하여 담대히 나아갈 때 모세가 가졌던 마른 나무에 불과했던 지팡이가 능력의 지팡이가 되어 많은 기적을 나타냈던 것입니다.

○ 하나님의 일꾼들은 바로 자신의 재능과 재물 배경을 의지하고 자랑하는 사람이 아닌 믿음으로 하나님의 기쁘심을 구하는 사람입니다. 이사야가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 6:8) 한 것처럼, 제자들이 자신의 안일을 구하여 주님 곁을 떠나가지 않은 것처럼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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