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6:1-8  <하나님의 쓰시는 사람>

사실 우리는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세계적 명문 하버드 대학교의 전 총장 Nathan - 지금 우리는 4가지가 없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1) 불러야 할 노래

(2) 흔들어야 할 깃발

(3) 따를만한 지도자

(4) 목숨을 바쳐 지켜야 할만한 신조 가 없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자고 나면 날마다 새 노래가 쏟아져 나옵니다. 정말 좋은 노래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흔들어야 할 깃발이 있어야 합니다. 나를 따르라고 외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정작 존경할 만한 지도력이나 생명을 바쳐도 아깝지 않다고 고백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부를만한 노래도, 흔들만한 깃발도 없습니다. 성공한 사람, 승리한 사람, 부유한 사람,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러러 따를만한 사람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마치 홍수 속에 마실 물이 귀한 것처럼, 정작 성공한 사람 중에도 존경 받고, 신뢰받고, 인정받는 지도자는 많지 않습니다.

(1) 도망 가는 사람 (Quitter):

(2) 포기 하는 사람 (Camper):

(3) 정복 하는 사람 (Climber):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아니, 여러분께서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십니까? 그렇습니다. 정복자, 승리자를 원합니다. 고난의 역사는 인물을 만들고 인물은 역사를 만듭니다. 하나님도 뒤로 물러가는 자를 기뻐하지 않습니다. 마가는 연약한 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행 13:13]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저희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하나님의 사람은 온전한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향하다가 세상 것을 찾아 돌이키는 사람은 세상탐욕과 하늘나라를 동시에 찾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의 칭찬을 구하고 사람의 평가에 민감한 사람 사람에게 쉽게 상처를 받습니다.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 사람을 기대하는 사람은 실망합니다.


◎ 아버지가 요셉에게 도시락을 싸주며 양을 치는 형들에게 안부를 묻고 다녀 오라하고 보냈습니다. 요셉은 그 형들에게 도시락을 가지고 형들의 안부를 물으러 가다가 하루아침에 만리 타국에 노예로 팔려 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형들을 찾아갔던 요셉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겠습니까? 형들을 만나면 안아주고 칭찬해주고 기뻐해 주리라 기대하고 갔습니다. 그런데 예상과는 반대로 형들은 요셉을 묶어서 우물 속에 던지더니 다시 그를 빼내어 애굽의 노예로 팔아 버린 것입니다.

결국에 요셉은 애굽의 고난을 통하여 더 큰 하나님의 복을 받고 더 큰 구원의 역사를 이루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이 하나님을 의지할 때 그를 통하여 구원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히11:24-26]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 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주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땅의 권세는 소멸되지만 하늘의 권세는 영원합니다. 땅의 것을 바라보는 사람은 늘 불안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여 3일 되었을 때 마실 물이 떨어졌습니다. 마침 웅덩이를 하나 발견했는데 물이 써서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웅덩이의 쓴물로 백성들이 원망불평을 했습니다. 애굽에서의 핍박과 추격 속에서 구원하신 하나님, 홍해를 건널 때 역사하셨던 하나님의 능력을 잊어 버렸습니다. 시선을 땅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면 하나님의 능력을 알게 됩니다. 땅을 바라보면 근심 걱정이 찾아 듭니다.


3. 요셉도 모세도 자기 꿈을 버리고 주님의 꿈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비전이라고 합니다.


아파치 족 추장이 늙어 죽게 되었을 때 자기 후계자를 뽑고 싶었습니다. 후보 세 명을 엄선하여 선택하였습니다. 이제 세 명중에 한 명이 후계자가 되는 것입니다. 추장은 그 세 청년을 이렇게 저렇게 시험하여 보았습니다. 이제 마지막 시험입니다. 추장은 세 명에게 산을 가리키며 높은 산에 올라갔다 오라고 하였습니다. 얼마후 세 명이 돌아 왔습니다. 한 명은 산 밑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꼭대기에만 있는 돌을 하나 가지고 와서 말했습니다. “저 높은 산에 갔다온 증거입니다. 저 산 꼭대기에만 있는 돌입니다” 다른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저도 저 산꼭대기에만 있는 풀을 뽑아 왔습니다. 고산식물입니다” 그러나 “추장님! 우리 부족이 잘 살기 위하여 저 산너머 땅으로 이주하여야 합니다. 여기서는 우물안 개구리처럼 몰랐습니다. 산에 올라가 보니 넓고 기름진 땅, 강물이 흐르는 옥토가 있었습니다. 여기보다 훨씬 좋은 곳입니다. 가야 합니다.” 추장은 세 번째 청년을 추장으로 임명하였습니다.이유는 꼭 하나 꿈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쓰시지 않고 꿈을 쓰십니다. 한 명은 빈손으로 왔습니다. 왜 빈손으로 왔느냐고 묻는 추장에게 그는 흥분하여 말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비젼은  하나님이 주신 꿈입니다. 고기잡는 기술로 부자 되기를 꿈꾸던 그 꿈을 버리고 주님이 주신 꿈을 비전 삼은 것입니다.

갈렙은 비젼을 품은 사람이었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마음은 젊어야 합니다. 


[여호수아 14:10]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세로되 11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12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 베드로는 늘 말씀에 순종하고 따랐습니다. 예수께서 부르실 때 그들은 곧 그물을 버려두고 좇았습니다. 주님이 부르실 때 어떤 사람은 아비를 장사한 후에 따르겠다. 어떤 사람은 내 가족을 작별한 후에 따르겠다. 조건이 많았습니다. 조건이 많으면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습니다.

하나님 오늘 내가 무엇을 할까요? 오늘 무슨 일을 시키시렵니까? 무엇이든지 순종하겠습니다. 일의 진행에도 일의 결과에도 초조해 할 일 없고, 낙심할 일 없습니다.


자신의 영광을 성공을 구하는 사람, 게으른 사람, 무능한 사람 , 믿음으로 행하지 않는 사람은  환경을 탓합니다. 부모를 탓합니다. 사회를 탓합니다.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탄식은 많은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줍니다. 쑥과 같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일군이 입으로 악한 소리를 할 때는 어떠하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순결한 그릇은 말에 실수가 없습니다.

말이 추한 사람, 결코 깨끗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어찌 거룩하신 하나님의 일을 담고, 해 낼 수가 있겠습니까? 모든 더러운 말들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

따라서 사람의 마음은 회개하지 않으면 그냥 부패하고 더러운 그 상태대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생각도 더러운 생각을 하게되고, 입을 열면 온갖 악한 말들이 줄줄 나오는 것입니다.

[롬1:29]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마태복음13장에는 마음 밭에 대한 비유가 있습니다. 씨가 마음 밭에 떨어질 때, 길가에 떨어져서는 안됩니다. 돌짝 밭같이 울퉁불퉁한 마음도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가시덤불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어 남을 찌르는 사람도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옥토(沃土)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부드러운 마음을 가진 사람을 쓰십니다.

돌을 제하고, 잡초를 제거하고 남는 땅은 옥토가 됩니다. 좋은 씨가 심기고 이제 성령의 열매 사랑과 희락과 화평 오래참음과 자비 양선 온유 충성 절제라는 결실을 맺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고 정결하게 하신 후 사람을 쓰십니다. 그릇을 깨끗케 한다는 것은 좋은 결실을 맺은 마음을 말합니다.

[디모데후서 2:21]  "주인의 쓰심에 합당한 그릇이 되어야 한다"

주인이 사용하기에 편한 것을 말합니다. 즉 아주 유용하고, 효용성 있는 그릇, 실용성 있는 그릇을 말합니다. 주인의 쓰심에 불편한 그릇은 진열용으로는 쓰일지는 몰라도 실용성에 있어서 절대로 귀하게 쓰일 수 없습니다.


[사 6:1]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4 이 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6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오늘날 하나님께서 쓰시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무식한 사람이나 돈이 없는 사람, 몸에 병이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사람은 인물이 잘낫냐? 못 낫냐도 아닙니다. 가난하고 무식해도 마음이 부드러운 사람을 쓰십니다.

하나님이 쓰시지 않는 사람은 돌같이 마음이 굳은 사람을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헌신하기로 준비된 사람입니다 당신은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기 원하시나요.

[사도행전22:10] 사울의 첫 기도가 무엇인 줄 아십니까?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였습니다. 그랬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위대한 사도로 사용해 주셨습니다.

바울은 처음에 가말리엘 문하에서 배웠고,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학식과 재물, 권세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였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려고 가는 도중에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사울이라고 하는 이 사람은 완전히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옥토와 같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쓰셨습니다.


카터 핵잠수함 프로그램에 지원하자 리커버 제독의 면접을 받게 되었니다. 내가 제독을 만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우리는 커다란 방에 앉아서 두 시간 이상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내게 대화의 주제를 정하도록 했기 때문에 나는 조심스럽게 당시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시사 문제, 승무원의 자질, 음악, 문학, 해군 전략, 전자공학, 포격법 등을 선택했습니다. 제독은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고, 그 난이도는 점점 높아갔습니다. 내가 자신 있게 선택한 분야에 대해서 내가 거의 제대로 아는 게 없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내 눈을 주시했고, 웃음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식은땀으로 온몸이 젖었습니다. 그가 마지막 질문을 던졌습니다. 나는 그것을 통해서 그때까지의 실점을 만회하려고 생각했습니다. "해군 사관학교의 성적은 어느 정도였는가?" 나는 해군 사관학교에 입학하기 이전에 이미 조지아 테크 대학교에서 1년을 공부했기 때문에 학업이 좋은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답변했습니다. "820명 가운데 59번째였습니다." 나는 등을 의자에 붙이고서 내게 돌아올 칭찬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칭찬 대신 또 다른 질문이 날아들었습니다. "자네는 최선을 다했나?" "예, 제독님." 그 순간에 사관학교 시절의 생활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연합국, 적국, 무기, 전략 등에 관해서 조금 더 열심히 익혔으면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나는 결국 침을 삼키고 입을 열고 말았습니다.

"아닙니다. 언제나 최선을 다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독은 한동안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의자를 돌려 앉으면서 면접을 끝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껏 결코 잊은 적이 없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어째서지?"

그 때부터 지미 카터는 언제나 “최선을 다했는가?”를 스스로 물어보는 습관을 갖게 되었습니다. 되돌아보면 나 자신 또한 최선을 다하지 못한 세원들이 너무나 많았음을 후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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