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4:1-9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      2014. 10. 5

사라는 벌써 세상을 떠났고 혼자 된 아브라함의 남은 일생에 남은 최우선의 과제는 아들을 장가보내는 것입니다. 자녀로 택함 받아서 자동으로 축복의 조상이 되는 것이 아니고 신앙을 지키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 때 복이 복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식이 신앙이 있다고 평생을 바르게 신앙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이 있고 현숙한 며느리를 얻으므로 자녀는 신앙의 가정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부패하고 문란한 가나안 사람 가운데서 며느리를 찾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이 들었으니 적당히 여자가 재산 있고 능력 있으면 된다. 어디서든 배필만 얻어 보내는 것이 어떠냐? 저들끼리 이 땅에서 배고프지 않고 싸우지 않고 살면 된다가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자기가 가장 신뢰하는 늙은 종에게 이 일을 부탁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24:3-4] 내가 너에게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내가 거주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가능하겠습니까? 이미 고향을 떠나온지 6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아브라함이 말한 그런 처자가 있겠습니까?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따라 오겠습니까? ● 아브라함의 부탁에 무슨 요구조건이 그리 많습니까? 엘리에셀에게 근심은 과연 아브라함이 원하는 처자를 얻을 수 있을 것인가? 이리고 오지 않는다면‥ 어찌할까? 먼 길에 이 일을 잘 감당할 수 있을까? 종에게 큰 짐이 주어졌습니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종이 가로되 여자가 나를 좇아 이 땅으로 오고자 아니하거든 내가 주인의 아들을 주인의 나오신 땅으로 인도하여 돌아가리이까?

말 속뜻은 처자를 얻지 못할 가능성, 처자가 따라오기를 거절할 가능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하여 아브라함은 『 내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돌아가지 말라』입니다. 아들을 장가 못갈 망정 다시 아들이 고향 땅으로 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가 말하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을 내 씨에게 주리라 약속하셨기 때문에 반드시 선한 결과가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창세기24:7,]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고향 땅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

 

만약 여자가 너를 따라 오려고 하지 아니하면 나와 맺은 맹세는 없던 것으로 하라. 합니다.

다시 논의할 가치가 없다는 말입니다. 분명히 내 아들의 아내를 얻게 될 것이다. 여호와의 사자가 너를 인도하실 것이다.

믿음을 갖지 않은 사람은 현실 상황에 따라 가장 합리적인 방안을 찾으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행하는 사람은 약속에 따라 행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과 믿음으로 행하지 않고 자신의 지혜와 생각에 따라 행하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약속을 받은 사람은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을 것입니다. 약속이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사자가 인도하심을 보는 사람입니다. 그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약속을 붙들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기다리다가 또 기다리다가 포기 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길을 갈 것입니다. 합리적인 다른 길을 모색할 것입니다. 이런 길도 저런 길도 모색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약속을 받은 사람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길로 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분의 정하신 길을 가야 합니다. 내가 재능이 있어, 내 발이 있어, 내 생각이 있어 가는 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우리의 고민은 이 길이 하나님의 약속인가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약속에 확신을 얻고 이런 결정할 수 있었던 것은 지난날의 실수를 통해 배운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제 생각대로 하갈을 취하여 아들 이스마엘을 얻고 이렇게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아브라함의 가정에 다툼과 이별이라는 아픔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약속의 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고 비전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있고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 있기 때문에 여호와의 사자가 앞서 행하시는 길이기 때문에 형통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확인한 이상 그에게는 평안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으면서 내가 생각한 길, 내가 선택한 길을 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저는 군인의 길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일반으로 사람들은 군에 가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군인이 된다 함은 자기 자신을 내려놓는 삶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고, 자기가 하기 싫은 것을 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자고 싶은 데 일어나라 하고, 먹고 싶은 것을 골라 먹지 못하고, 정한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그러나 군인의 길에는 좋은 점도 있습니다. 내가 이것을 할까? 저것을 할까? 고민하지 않습니다. 정해진 길을 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약속된 길, 정해진 길, 가야할 길을 간다면 이처럼 편한 길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길을 가야 합니다.

국화 옆에서 -서정주-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1] “아브라함이 나이가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아브라함이 나이가 점점 더 많아지는 동안 그가 배운 것은 무엇일까요? 그는 어떻게 범사에 복을 받는 사람이 된 것입니까? 중요한 것은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알았고, 보았고, 그 약속을 이루는 삶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24:2절에 아브라함에게 늙은 종이 있습니다. 그를 가리켜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이라고 표현 합니다. 여기<늙은 종>이란 말은 가장 신임을 받는 종이었음을 뜻합니다.

그러나 그 종은 약속을 받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다만 청직이 일 뿐입니다.그러므로 그는 “여자가 나를 따라 이 땅으로 오려고 하지 아니하거든 내가 주인의 아들을 주인이 나오신 땅으로 인도하여 돌아가리이까?말하던 사람입니다. 그는 현실에 충실한 사람, 합리적인 길을 찾아 가는 사람일 뿐입니다. 아브라함은 이런 늙은 종, 신뢰할 만한 종, 100% 자신의 말을 따르는 종에게 [24:3] <내가 너로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 를 소개하고 싶어 합니다.

그 늙은 종에게는 말도 안 되는 부탁이고, 이루기 힘든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늙은 종은 아브라함의 말을 따랐습니다. 지금 그가 아브라함에게서 듣고 있는 하나님은 자신의 하나님,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이 아닙니다. 다만 [12]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입니다.

한 번도 가본 일이 없는 [매소보다미아의 나홀의 성], 어딘가에 있을 [이삭의 아내]를 찾아갑니다.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충직한 종은 아브라함을 신뢰하였습니다. 그는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의 말을 따르기로 작정하였습니다.

◎ 사람은 나이가 많고 인생경험이 많을수록 어떤 일을 할 때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에 의존합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들은 다릅니다. 아브라함처럼 늙은 종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아는 사람, 그분의 음성을 듣는 사람, 여호와의 사자의 앞서 행하심을 의지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 늙은 종은 그가 행하는 모든 길에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보았습니다. 과연 아브라함과 함께 하신 하나님이 그 약속을 이루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26~27] 이에 그 사람이 머리를 숙여 여호와께 경배하고 이르되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나의 주인에게 주의 사랑과 성실을 그치지 아니하셨사오며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내 주인의 동생 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

 

[52] 아브라함의 종이 그들의 말을 듣고 땅에 엎드려 여호와께서 절하고

[7] <그가 그 사자를 네 앞서 보내실지라.> 라고 했던 아브라함의 말이 그대로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믿을 때 일은 됩니다. 하나님께 의지 할 때 일은 성취됩니다. 그는 일개 종이었지만 인류 구속사의 끈을 이어가는 중대한 일을 감당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주의 일을 감당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기도하지 않고, 주님께 부르짖지 않고 자기 힘대로 힘써 행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 정말 뱃장 좋다 생각이 듭니다. 기도하지 않고 내 지혜와 내 노력으로 이루고자 함이 어리석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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