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사무엘하9:1-8 < 변치 않는 사랑 므비보셋 >
사무엘하9:1-8 < 변치 않는 사랑 므비보셋 > 2011.7.3
새로 왕이 된 다윗은 자신의 친구였던 요나단을 기억하고 신하들에게 말합니다. “사울의 집에 아직도 살아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을 인하여 그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리라!”(삼하9:3) 그때 사울의 종이었던 시바라는 종이 나타나 “요나단의 아들 하나가 있는데 절뚝발이니이다”(삼하9:3) 그가 왕 앞에 불려 나와서 요나단의 아들 하나가 살아남아 있는데 그가 절뚝발이라고 고합니다. 그냥 요나단의 아들 하나가 살아남아있다고 해도 될 텐데 굳이 그가 절뚝발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다윗이 신하들에게 명하며 므비보셋을 데려오게 했습니다. 므비보셋이 두려워 떨며 다윗 앞에 나왔습니다. 다윗이 따뜻한 음성으로 말합니다.
다윗이 가로되 무서워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비 요나단을 인하여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조부 사울의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먹을지니라 (삼하9:7)
므비보셋은 결코 왕실 식탁을 빛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식탁에 늘 함께 하자고 합니다.
“이 종이 무엇이관대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삼하 9:8)
므비보셋이 어찌 다윗의 상에서 함께 앉아 먹음을 기뻐하고 <죽은 개 같은 나> 라는 말을 할 수 있었을까요? 므비보셋은 사울의 손자로, 사울가문의 왕손이었습니다. 그가 다섯 살 되던 해에 할아버지 사울과 아버지 요나단의 형제들이 길보아 산에서 전사하게 되었을 때, 그는 졸지에 고아가 되었습니다. 그의 불운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의 유모가 므비보셋을 데리고 도망하다가 떨어뜨려 그의 두 발을 다 절게 되었습니다. 그는 평생을 불구의 몸으로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를 더욱 두렵게 한 것은 그가 왕손이라는 이유 때문에 혹시 누군가의 보복을 피해 요르단강 동쪽 로드발罗底巴의 마길의 집에서 은둔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왕위에 오르자, 다윗 왕이 자신의 왕의 신분을 빼앗아 갔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원수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단지 세상의 지위와 재물 영예를 생각한다면 그는 여전히 사울의 죄에서 벗어나지 못 하였을 것입니다.
그의 아버지 사울의 아들 요나단도 자신의 왕위를 생각했다면 다윗을 위협하는 적대관계로서 다윗에 대하여 분노하고 미워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언제나 다윗의 편에 서서 그를 보호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바라볼 때 가능한 것입니다.
요나단도 므비보셋도 자신들의 불행과 저주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데 있음을 알았고 받아들였습니다. 므비보셋도 자신들은 죄인의 자식으로 죄 가운데 하나님의 심판에 처했음을 받아들입니다. 므비보셋의 뜻은 <수치를 없애는 자>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의 이전 이름은「바알의 영웅」이었습니다.
므비보셋에 관하여는 왕이 이르기를, 그가 왕의 아들들 가운데 하나처럼 내 상에서 먹으리라, 하였더라. 시바의 집에 거하던 모든 자가 므비보셋의 종이 되니라. 이처럼 므비보셋이 계속해서 왕의 상에서 먹었으므로 예루살렘에 거하니라. 그는 두 발을 다 절었더라. (사무엘하9:11-13)
다윗이 므비보셋의 아버지, 요나단을 기억하고 요나단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므비보셋을 용서하면서 므비보셋은 다윗과 함께 다윗의 궁궐에서 살게 된 것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저주받은 운명에서 축복된 인생으로 바뀌어 집니다.
이는 므비보셋이 다윗을 찾은 것이 아니라 다윗이 므비보셋을 찾은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부르심입니다. 므비보셋은 은혜를 받을만한 어떤 일도 한 것이 없습니다. 그가 재능이 있고, 착하고, 무슨 공로가 있어서 찾은 것이 아니고 그냥 은혜입니다.
우리가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지만 예수의 십자가를 지심으로서 인해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다윗은 므비보셋의 저는 다리를 보지 않았습니다. 몰골长相이 흉하고 학식이 없다 하여도 하나님의 양자가 되는 데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늘 게으르고 실수하고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십니다.
나는 때로 아내가 아이들을 그리 사랑하는 이유를 모를 때가 있습니다.
[로마서10장6절]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혹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므비보셋에게 어떤 노력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므비보셋이 한 것이 있다면 다만 왕의 부르심에 순종해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구원받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구하지 않으셨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탕자가 아버지에게 돌아오지 못한 것은“자신의 죄를 아버지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오해 때문이었습니다.
6.25때였습니다. 강원도 어느 조그만 마을에서 청년 몇 명이 입대하여 전쟁터에 나가 싸우고 있었습니다. 한 명만 남고 다 전사하였습니다. 살아남은 청년이 돌아오자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너는 죽지 않고 살아 올 줄 알았다." 왜 그렇게 생각하였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너의 어머니는 네가 입대한 날부터 돌아오는 날까지 집에서 자지 않았다. 교회 찬 바닥에 엎드려 기도하였다. 버선 밑이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발등부위가 다 닳았단다."
다윗은 불구의 몸으로 살아가는 므비보셋을 위해 과거 그의 집안의 시종으로 있었던 시바에게 재산을 관리하도록 하였습니다. 다윗의 선대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는 자신의 식탁에 므비보셋을 앉혀 함께 식사를 하였습니다(삼하9:1-13).
한 때 모든 것을 다스리도록 창조되어진 에덴동산에서 모든 것을 소유했던 아담이 그 죄로 인하여 추방당하고 죄의 결과 인간은 절망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상실한 인간이 예수님의 공로로 왕의 식사자리에 함께 하게 된 것입니다.
▶ 그런데 므비보셋에게 돌연 생각지도 않은 어려운 일이 일어납니다. 지금 다윗은 도망갔습니다. 예루살렘은 압살롬이 장악하고, 므비보셋에게 주어졌던 모든 축복은 사라지고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다윗이 망명길에 올랐을 때 따라가고자 하더라고 예루살렘을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삼하19:26). 사실은 가려고 했는데 그의 종 시바가 혼자 다윗을 만나러 나옵니다.
[삼하 16:1] 다윗이 마루턱을 조금 지나니 므비보셋의 사환 시바가 안장 지운 두 나귀에 떡 이백과 건포도 일백송이와 여름 실과 일백과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싣고 다윗을 맞는지라
[삼하 16:2] 왕이 시바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뜻으로 이것을 가져 왔느뇨 시바가 가로되 나귀는 왕의 권속들로 타게 하고 떡과 실과는 소년들로 먹게 하고 포도주는 들에서 곤비한 자들로 마시게 하려 함이니이다.
[삼하 16:3] 왕이 가로되 네 주인의 아들이 어디 있느뇨 시바가 왕께 고하되 예루살렘에 있는데 저가 말하기를 이스라엘 족속이 오늘 내 아비의 나라를 내게 돌리리라 하나이다.
므비보셋을 모함(陷害)하였습니다. 그렇게 타의에 의해서 또 예기치 못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집니다. 다윗은 그의 말을 믿고 므비보셋의 모든 재산을 시바에게 건네줍니다.
다윗은 화가 나서 므비보셋의 재산을 모두 시바에게 주었습니다.
♠ 므비보셋은 왕이 떠난 날부터 궁중에 남아 압살롬이 죽고 다윗이 돌아오는 날까지
1. 발을 맵지 않았습니다. 2. 수염을 깍지 않았습니다. 3. 옷을 빨지 않았습니다.
[삼하19:24]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이 내려와서 왕을 맞으니 저는 왕의 떠난 날부터 평안히 돌아오는 날까지 그 발을 맵시 내지 아니하며 그 수염을 깎지 아니하며 옷을 빨지 아니하였더라.
므비보셋이 했던 이런 행동은 당시 유대인들이 부모님이 돌아가면 하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 왕이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인해 쫓겨 간 후에 그 어떤 일도 그의 마음을 끌지 못했고 흥미를 끌지 못했습니다. 은혜 받은 사람으로서 왕이 고생할 때 같이 고생하겠다는 자세를 가졌습니다. 왕궁을 떠난 왕이 길거리에서 고생하고 있으니 같이 고생하겠다고 동거 동락하는 므비보셋의 마음은 진정 신하 중에 신하입니다. 은혜를 잊지 않았습니다. 저주스런 운명에서 자기를 구원해준 다윗 왕을 그는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는 날마다 어서 속히 돌아오도록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을 것입니다.
▶ 왕이 돌아와 므비보셋에게 자신과 같이 가지 않았던 이유를 묻자 그는 다리를 절어 종의 도움을 얻어 나귀를 타고 왕에게 가려고 했지만 오히려 종이었던 시바는 자신을 속이고 왕에게 자신을 모함했노라고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알고 보니 모든 것이 시바의 모함이었습니다. 이를 알고 난 다윗은 시바에게 주었던 재산을 나누어 주고자 합니다.
[삼하 19:28] 내 아비의 온 집이 내 주 왕 앞에서는 다만 죽을 사람이 되지 아니하였었나이까. 그러나 종을 왕의 상에서 음식 먹는 자 가운데 두셨사오니 내게 오히려 무슨 옳음이 있어서 다시 왕께 부르짖을 수 있사오리이까 29 왕이 저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또 네 일을 말하느냐 내가 이르노니 너는 시바와 밭을 나누라. 30 므비보셋이 왕께 고하되 내 주 왕께서 평안히 궁에 돌아오시게 되었으니 저로 그 전부를 차지하게 하옵소서 하니라. <시바에게 다 주소서!>
그는 자신의 종인 시바 에게 속임을 당해 기업을 빼앗기고 말 못할 억울함을 가지고 있었으나 또 다시 빼앗긴 그의 영화 때문에 그는 낙망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사랑을 은혜를 잊지 않았습니다. 므비보셋에 중요한 것은 재물도 부귀도 아니었습니다. 왕이 그의 곁에 있는한 그는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보복대신 용서를 선택하였습니다. 분노대신 온유를 택하였습니다.
술을 너무나 좋아하여 밤낮 술을 마시다가 술 중독으로 죽은 이가 있었습니다. 그 많던 재산을 다 술로 탕진하여 거렁뱅이가 되었습니다. 가족을 모두 거지로 만들어 놓고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 남자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큰 아들은 나중에 술고래가 되었습니다. 술을 마시고 여기 저기 쓰러져 있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그러나 둘째 아들은 입에 술 한모금도 대지 않았습니다. 기자가 큰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십니까?> 큰 아들이 대답하였습니다. <내가 술을 안마시게 되었습니까? 아버지로부터 배운 것은 술 마시는 것뿐입니다.> 둘째 아들에게 왜 입에 술을 한 모금도 안대냐고 물었습니다. 둘째 아들이 말했습니다. <내가 술을 마시게 되었습니까? 우리 아버지가 술 때문에 망하였는데 또 망할 수 있습니까?>
비록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할지라도 시험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비록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을 가졌다 할지라도 마귀는 여전히 그들을 유혹하고 넘어뜨리려 할 것입니다.
므비보셋은 더 이상 이 세상에 미련(留恋)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언제나 다윗의 은혜에 대하여 감사를 하고 있으며, 그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하고 있습니다. 그가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다윗으로부터의 자신이 잊혀지는 것입니다.
오직 "내주 왕께서 평안히 궁에 돌아오시게 되었으니" 왕의 귀환을 바라는 마음뿐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다윗 왕에게 있었고 어떤 일도 그의 마음을 왕에게서 떠나게 할 수 없었습니다. 은혜 입은 자로서 그의 마음은 오직 다윗 왕에 대한 사랑으로만 차 있었습니다. 오직 다윗 왕을 향한 마음 외에 세상에 그 어떤 관심도 가지지 않았음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은 그의 눈이 그리스도에게로 향해 있어야만 합니다. 재물과 명예, 권세와 같은 것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입니다. 다윗 왕이 그의 곁에 있다면 사실 모든 것을 가진 것입니다. 오직 하늘을 소망 삼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영광스러운 생애를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설교2012'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린도전서12:12-25 <지체입니다> (0) | 2011.12.15 |
---|---|
고린도전서1:18-31 < 능력 있는 삶을 위하여 > (0) | 2011.12.13 |
사도행전 10:1-9 <경건한 기도의 사람 고넬료> (0) | 2011.12.13 |
데살로니가전서 4:1~8 <하나님을 기쁘게> (0) | 2011.12.13 |
사사기15:14-20 <엔학고레> (0) | 2011.1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