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데살로니가전서 5:1-11 <낮에 속한 자>
데살로니가전서 5:1-11 <낮에 속한 자>
[2절]에 나와 있는 바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도적과 같이란 정해지지 않은 시기에 불현 듯 임한다는 말입니다. 제 아무리 예언자라도 주의 재림의 정확한 때는 우리가 알 수 없다 했습니다. 주님의 재림의 때와 시기에 관한 일은 하나님의 고유한 소관입니다.
[행 1:7]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마 24:36]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그 때와 시기에 대하여 지나치게 호기심을 갖고 그것을 알려고 해서는 안되며 또 아무리 알려고 해도 그것은 헛수고에 불과합니다. 역사를 통해 살펴 보면 실로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재림이 일어날 년, 월, 일, 시를 확정적으로 발표함으로써 많은 혼란을 초래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라"(롬 12:3) 경고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인간의 헛된 욕구과 미혹이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참 인간이 미련합니다.
그런데 이 말은 때와 시기에 대하여 전혀 무감각해도 좋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우리는 시기에 대해서 분별할 줄은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그 때와 시기에 대한 징조를 가르쳐주셨을 뿐만 아니라,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합니다.
[마 24:32,33]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그 때와 시기를 분별할 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 ’분별한다‘ 함은 그 날과 때는 모른다 하더라도, 이 시기가 종말의 때인지 아닌지를 알라는 것입니다. ◯ 이로써 우리가 그 날을 분별함으로 재림을 소망이 이루어지는 때가 다가오는 것을 보며, 죄악된 세상에서 깨어 근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주의 날의 징조로, 우선 복음이 전세계에 전파되고(마 24:14),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롬 11:25), 또한 그와 더불어 ’온 이스라엘의 구원‘을 재림의 선행 조건으로 언급합니다.(롬 11:25,26) 또한 말세에는 거짓 선지자와 거짓 그리스도가 출현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할 것을 말합니다.(마 24:23,24) 그리고 말세에는 전쟁, 기근, 지진과 같은 대재난이 번번하게 발생하며 난리의 소문이 날 뿐만 아니라 성도들에게는 대박해가 일어날 것이 예언되어 있습니다(마 24:6-11).
◯ 어떤 성도들은 자신은 오직 교회의 일에만 관심을 두고, 지금 이 시대가 어떻게 흘러가든지 교회일 열심히 하고, 자기일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이야 어떻게 돌아가든 내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 생각합니다. 그러면 왜 주님께는 우리들에게 이 시대의 징조들을 살피라고 말씀하셨겠습니까? 지금 바른 길을 가려면 어느 때보다 지혜가 필요하고 바른 선택을 하여야 합니다.
◉ 교회사가 유세비우스에 의하면 기원 후 70년 로마에 대한 유대인 반란 중에 예루살렘에 거주하던 유대들은 몰살하였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예수님 말씀하신 ’멸망의 가증한 것들이 서지 못할 곳에 서거든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하라‘고 말씀하신대로 펠라(데가볼리의 소도시)로 도망쳐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 지금 우리가 알아야 하고 피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아는 것도 성령의 하시는 일입니다. 지금 우리는 말세의 끝자락에 와 있습니다.
[마 24:44]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계 16:15]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 성경은 주의 날이 생각지 않은 때에 온다고 말함으로써 성도로 하여금 경각심을 갖고 준비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심판에 대한 경고를 무시한 채 ’평안하다, 안전하다‘라며 먼 장래의 일로 생각하고, 내 생애에는 없을 것으로 방심하고 세상의 성취와 유혹에 몰두하지 말아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4,5] “형제둘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라고 하였습니다.
◯ 큰 위로가 되는 말은 ’주의 날‘이 신자들에게는 예측 불가능하거나 갑작스럽게 임하지 아니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종말이 빛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예측할 수 없거나 갑작스럽게 임하지는 않습니다. 반면에 어두움 가운데 있는 자, 구원받지 못한 불신자들은 주의 날의 징조를 깨닫지 못하며 그에 대한 준비도 하지 않다가 결국 그들은 주님이 임하실 때 놀람과 당황함으로 환란을 당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5절] 성도를 ’빛의 아들‘이라고 하였습니다. 고대의 히브리인들은 특별한 자질이나 영역에 속할 때 ’00의 아들(the son of 00)'이라는 표현하였습니다. 성도는 빛에 속한 자들입니다. ◯ 하나님께서 천지를 조성하시기 전에는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라 하였습니다(창 1:2). 빛이 없는 곳에는 어두움과 혼돈 공허함과 무지만이 있습니다.
◯ 빛의 아들이라고 해서 아무것도 안하고 머물러 있다고 해서 늘 ‘빛의 아들’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빛의 아들은 늘 깨어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합니다. 그 등불을 잘 관리하고 있어야 합니다. ◯ 거울에 먼지가 덮여 있으면 거울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늘 깨끗하게 닦아 주어야 합니다.
[7절]바울은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깨어 있다'라는 말은 ‘잠잔다'의 반대말로서, 흔히 성을 지키는 파수꾼에 대해 사용하는 말입니다. 파수꾼은 자신이 지키는 성에 어떠한 괴한이 침입하지는 않는지, 여우가 성벽을 허물고 있는지 늘 주의를 다하여 살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성도는 주의 재림이 임하기를 고대하는 마음으로 사랑의 열정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 여기서 ‘잠자다'라는 말은 사람이 잠을 잘 때, 모든 지각과 의지, 감각이 완전히 없는 상태에 있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취하다'라는 말은 술에 취하여 모든 판단력과 분별력이 흐려지는 상태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이런 사람은 모든 일에 이성을 상실한 채 세상을 향한 본능적인 욕구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참담한 것입니다. ◯ 세상 사람과 똑같이 시기, 다툼 속에 살고, 성적으로 문란한 생활을 하면서 ”뭐 어떠냐~“ 말하기도 하고, 자랑하기도 합니다.
[마태복음 24:37-39]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 오히려 무심한 채, 먹고 마시고 사고 괄고 심고 집을 지으며 살았습니다(눅 17:28). 하나님의 천사들이 소돔 땅을 심판하러 롯의 집에 머무를 때에는 소돔 사람들이 롯의 집으로 몰려와 하나님의 천사들을 요구하며 그들을 해하려 하였습니다(창19:1-11). 이들은 참으로 영적으로 눈멀고 귀먼 자들입니다. 자신들을 멸하러 온 하나님의 천사들을 몰라보고 그들을 끌어내 욕보이려 하였던 것입니다.
◎ 하나님의 교회를 욕보이고 핍박한 나라가 온전한 나라가 없습니다. 평안한 가정도 없습니다.
[출애굽기 23:22] 네가 그의 목소리를 잘 청종하고 내 모든 말대로 행하면 내가 네 원수에게 원수가 되고 네 대적에게 대적이 될지라
[8절]에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향하여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를 붙여라 권면합니다. 여기서 ‘흉배'란 목에서 허리에 이르기까지 가죽이나 두텁게 누빈 천 혹은 놋쇠나 철로 만들어 대적의 치명적인 공격으로부터 가슴을 보호하는 장비입니다. 병사에게 흉배는 그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필수적인 방어 장비입니다. 그리고 병사가 속한 군대의 앰블럼 상징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과 사랑입니다.
◯ 믿음이란 ’맡기는 것'을 말합니다. 즉 우리 삶의 전반적인 문제, 나의 현재의 고난 뿐만 아니고 나의 꿈까지… 하나님께 내맡기는 결단을 말합니다. ◯ 사랑은 어떤 작용을 하는 것입니까? 사랑은 어려운 때를 극복하는 묘약과도 같은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움이 크고, 지속적으로 몰려 온다 해도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 교회 안에서 교우의 사랑이 있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두려움이 되지 않습니다.
◯ 내가 예수님을 믿는 그 믿음이 나의 힘이요, 방패요 자랑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나에게 가르쳐 주신 사랑이 나의 모든 삶의 전부입니다. ◯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는 믿음과 사랑으로 이기고 승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또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했습니다. 그리스에서 투구는 머리만 보호하는 것이 아닌 얼굴 안면부 전체를 보호하는 중요한 보호장구입니다. 소망이 없는 전투는 패배한 전투입니다. 전쟁에는 전시물이 있습니다. 그것이 구원의 소망입니다. 소망은 두 가지를 가리킨다고 봅니다. ① 하나는 현실의 구원이요. ② 하나는 미래의 영원한 생명의 구원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구원의 투구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 빛의 자녀로서 이렇게 죄로 가득한 어두운 곳을 밝혀주어야 합니다. 즉 성도들은 자신을 어두운 곳을 밝히는 등대의 역할을 하여야 합니다.
[마 5:14-16]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설교2021' 카테고리의 다른 글
히브리서 11:1-10 <바라는 것들의 실상> (0) | 2021.02.06 |
---|---|
열왕기상 5:1-12 <솔로몬의 성전> (0) | 2021.01.30 |
사무엘하 6:1-11 <오벧에돔의 섬김> (0) | 2021.01.23 |
사무엘상 1:9-18 <기도하는 한나> (0) | 2021.01.09 |
룻기 2:1-12 <보아스와 룻> (0) | 2021.0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