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후서 1:1-5  <주 예수를 앎으로>

베드로 사도는 네 가지 주제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보배로운 믿음(1), 신기한 능력(3), 지극히 큰 약속(4), 신의 성품(4)이라는 주제들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믿고서 얻게 된 한 가지 변화는 죽음의 공포에서 초탈하고, 이 풍진 세상에 매어 있는 헛된 욕망에서 초탈한다는 것입니다. 또 보배로운 믿음의 소유자는 그가 소망하는 것과 관련해서 남이 못 보는 것을 보는 자이고, 남이 가지고 있지 않은 증거를 가진 자입니다.(11:1) 믿음은 귀한 것입니다.

 보배로운 믿음은 누구나의 것이 아닙니다. 믿음을 갖고 싶다고(?) 갖는 것도 아니고, “믿는다. 믿는다.” 외친다고 얻어지는 것도 아니고, “안 믿는다. 안 믿는다.”해서 안 믿는 것도 아닙니다. (믿음은 주어지는 것) 짧은 전도에 5분 만에 고백하는 분도 있고...

 자신은 믿음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조심해야 합니다. “나는 너를 모른다.” 할까!! 두렵습니다. 거짓 믿음도 있습니다. 자신의 재능을 믿고, 돈의 위력을 믿고, 자신을 믿고, 사람을 믿고, 그 사람이 가장 귀히 여기는 그것, 그것이 그의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환란 중에 담대합니다. 평안합니다.


[베드로전서1:7] 믿음의 시련은 금보다 더 귀하다” [베드로후서1:1] 보배로운 믿음보석은 비싸고, 희귀하고, 변치 않는다는 특징을 갖습니다. 금은 천년이 지나도 금입니다. 불 속에 넣어도 물속에 넣어도 그대로 금입니다.  지금은 달러보유고로 국가경제를 평가하지만 옛날에는 금보유고로 경제력을 평가했습니다. 가치가 좀처럼 변하지 않습니다. 어렵다고 변하고, 힘들다고 변하고, 잘 산다고 변하고, 못산다고 변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천년이 가고 만년이 가도 변치 않는 믿음이 <보배로운 믿음>인 것입니다.  가룟 유다가 믿음이 있었다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유다의 믿음은 뿌리도 내리지 못한 믿음, 열매 없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돈 앞에서 예수님을 배신하여 버리고, 죽음의 키스를 하였습니다.

 일본 교인들이 특징이 있습니다. 한 주일도 빠지지 않고 교회를 잘 나오던 부부가 연락도 없이 교회를 나오지 않았습니다. “저희 집 14년 된 개가 죽었어요.” 그러면서 엉엉 울더랍니다. 결국 제멋대로 신앙

 <믿음은 은혜로 주신 선물> 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거저 얻지만, 이 선물을 나에게 주시기 위해, 하나님은 자신의 독생자 아들의 내어주시고, 주님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나는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계시고,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나를 사랑하십니까? 이런 믿음을 갖고 계십니까? 아니면? 언제는 믿어지고 언제는 안 믿어지나요? 그런 싸구려 믿음입니다.  구리반지를 은행금고에 보관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다이아몬드 반지를 아무데나 벗어 놓는 사람은 없습니다. 1년을 믿어도 3 5년을 믿어도 내가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나요? 믿음은 금보다 귀한 것이라 했습니다.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도, 믿음의 체험도 변화도 하나님과 예수님을 앎으로 가능해 지는 것입니다. 먼저 지식이 있고, 아는데서 출발합니다.

[베드로전서1:2]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호세아 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 무디 선생은 처음에 보스턴에서 주일학교 교사로 교회봉사를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지방 방언 때문에 자신의 아이들을 주일학교에 보내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그는 좌절했습니다. 그는 시카고에서 다시 주일학교 선생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의 열정은 많은 주일학생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학생들이 거듭나지도 변화되지 않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의 설교자로서의 노력은 한계에 부딪쳤습니다. 어느 날 그는 스펄전 목사의 설교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의 설교 속에서 그는 두 가지를 발견했습니다. ① 하나는 온전한 헌신이었고, ② 하나는 그에게 풍부한 성경지식이 있고, 온전히 성경말씀만을 전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마태복음 13]에는 4가지 종류의 밭이 나옵니다. 씨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순수한 복음의 씨를 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 살아가는 데는 필요한 지식도 있지만 수많은 가시나무, 잡초와 같은 쓸데없는 씨들이 있습니다. 너무도 많은 거짓된 지식들, 수많은 무익한 지식들이 있습니다.  우리 몸 안에는 수많은 DNA유전자가 있습니다. 염기서열이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으면 장애가 일어납니다.

 좋은 말씀의 씨가 뿌려져야 합니다. 우선으로 나의 마음 밭에 말씀을 뿌리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지속적인 묵상이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1: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말씀을 앎으로 <생명> <경건에 속한 모든 것>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 예수 그리스도를 닮음)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단지  <생명>만을 구원하려 건지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나서, 또 다른 선물을 주시는데, 우리를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시려 하십니다.

 <신기한 능력>은 무엇입니까? 듣지 못하는 자를 듣게 하셨고, 말하지 못하는 자를 말하게, 걷지 못하는 자를 걷게 하셨고,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신기한 능력>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아마 예수님이 병 고치는 신비한 이적과 기사가 없었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없었을 것입니다.  주 예수를 믿는 순간, 우리는 신비 속에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과학이 발달한 지금), 세상은 기적이란 없다 말하기도 하고 무시하지만 교회는 여전히 신비를 말하고, 새로운 세상을 말하고, 천국을 말하고, 인간이 영적인 존재임을, 생명의 존엄을 말하는 곳입니다.  세상을 고치는 유일한 희망은 교회에 있습니다.

  (4)에서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  물론 영원한 천국의 소망이 첫째일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에 합당한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심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신의 거룩함>에 이르는 것입니다. 분노가 온유로, 미움이 사랑으로, 우울함과 염려가 평안으로


 이 모든 것은 [2] 아는데서 출발합니다.  안다는 것 믿는다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히브리어로 "야다"[yâdaʽ] ידע 단순한 지식적으로 알다를 넘어서 체험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계심을, 전능하심을, 그가 나를 사랑을, 도우심을 알아야 합니다.

[빌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예수 그리스도를 알 때, 그 분이 나의 마음에 살아 역사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신비한 능력이 나의 능력이 될 것입니다.  너희는 더 큰 일을 행하리라.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주여 나로 하여금 물 위로 걸어오라 허락하여 주십시오.했듯이 나도 믿음을 구하고, 주님의 <신비한 능력>을 구하여 살아야겠습니다. 


 지식을 구하는 자에게 기억해야 할 따라야 할 중요한 몇 가지가 있습니다.

[벧후 1:5]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믿음에 덕을로 시작합니다. 남에게 이웃에게 교회에 유익이 되어야 함을 말합니다.  믿음이란 단지 머릿속의 <관념적인 믿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선행, 미덕, 아름다운 행위가 따라야 합니다. 덕을 세우지 못하는 사람은 교회에 짐이 되는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덕만 강조하다보면 인본주의로 흐르고, 선만을 말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덕에는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 기초한 바른 지식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에 덕을 세움으로써 우리는 자녀다운 자녀,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바른 믿음의 사람은 가정을 세우고, 이웃을 세우고, 교회를 세웁니다. 타자에게 유익을 주는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덕은 책상다리 하나가 짧아 기울어졌을 때 맞추어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 좋습니다. 내가 낮아지는 것입니다. 아는 사람이 참고 받아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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