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6:13-20    <살아계신 하나님>

본문은 예수께서 약 3년 공생애 사역의 결과를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통해 정리하시고 당신의 지상 사역의 절정인 십자가 수난 사건을 예고하시는 일대 전환점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중대한 의의를 지닌다고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16:14]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헤롯이 예수를 세례 요한이라 평한 것은 죽은 세례 요한이 부활하여 활동하고 있었던 것으로 믿었는데 이는 당시 죽은 사람의 부활을 믿는 믿음이 멀리 퍼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거기다 사람들의 눈에 세례 요한의 메시지와 능력이 예수님의 천국 메시지와 그의 능력과 유사해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 엘리야 혹은 예레미야 모두 메시야가 오시기 전에 올 것이라는 유대인의 전승이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나의 하나님은 여호와이시다’ 라는 뜻으로 이스라엘의 불의에 앞장서 담대히 싸운 권능의 선지자였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권능을 보면서 오실 메시야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유다의 멸망에 대하여 많은 예언을 하며 유다의 죄악을 통렬하게 꾸짖었고, 이스라엘의 멸망을 바라보며 그들을 위해 눈물을 많이 흘린 눈물의 선지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죄악을 꾸짖는 모습과 온갖 수난을 보면서 오실 메시야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 선지자 중의 하나라는 말씀은 신명기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신18:15)가 오리라 했고,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선지자가 나타나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위대한 일을 했습니다. 따라서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모세가 예언한 이스라엘을 구할 선지자로서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마태복음 16:15]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원문에는 있으나 생략된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러면’이란 기록입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한 평가를 그들의 소망에 따라 그들을 구원할 정치적인 메시야로 보는데,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라는 의미입니다. 즉 다른 사람의 생각과 신앙이 아닌 제자들 자신의 개인적인 생각을 말해 보라는 것입니다. ○ 본문은 예수께서 자신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이 궁금하여서 하신 질문이 아니라,그들의 메시야적 정체성의 명백히 하시기 위한 질문이었음을 나타낸다.

[마태복음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왜 다 아는 당연한 수식어인 ‘살아계신’ 이란 말을 첨부했을까요? 이는 이방의 죽은 신들과 대조되는 표현으로서, 하나님은 스스로 영원토록 자존(自存)하시는 영화로우신 분이시며 또한 생명을 부여하시는 생명의 근원 되신 분이심을, 그리고 과거와 더불어 지금과 미래에도 살아 역사하시는 분임을 나타냅니다. 한글 개역 성경에서는 번역되지 않았지만 원어 성경에는 ‘아들’ 앞에 정관사가 있습다. 따라서 본문을 직역하면 ‘살아계신 하나님의 그 아들 (the Son of the living God)’ 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하나님의 독생자 되심을 나타냅니다(요 1:14,18)

○ 한편 마가복음은 병행 구절에서 베드로의 고백을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막 8:29) 했고, 누가복음은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눅 9:20)로 기록했습니다. 이로 볼 때 마태복음에서의 베드로의 고백을 가장 완벽하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예수님의 메시야로서의 구원 사역만이 아닙니다. 아들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울과 사도 요한의 증거를 보겠습니다.

[행 9: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빌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요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이 사실이 왜 그토록 중요한 것일까요?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겁니까? 그의 십자가의 구속 사역을 믿는 것인가요?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인가요? 예수님이 구약의 약속대로 오셨고,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고, 부활 승천하여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셨으니 그것을 믿으면 되는 것 아닌가요? 충분치 않습니다. 약속을 이루신 것, 고난을 당하신 것, 부활하신 것은 사역이고 역사입니다. 그의 사역을 믿는 것과 주님을 아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을 만나는 일이 중요합니다.

◉ 저는 지난 금요일 안성에서 돌아오는 길에 차가 고속도로 상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않고 기어갈 때 기도했습니다. 예수님 이 차를 고쳐주시든지 아니면 새차를 주시든지~ 간신히 갓길에 멈추어 쉬다가 가속하지 않고 천천히 올 수 있었습니다. 제가 어려울 때 누구를 찾았나요? 저를 위하여 죽음을 마다하지 않으신 예수님을 의지하여 살아계시고 전능하신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믿어야만 하는 것은 역사적인 사실만이 아닙니다. ○ 복음의 핵심은 바로 주 되신 예수께서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 분이 지금 살아계서서 내 곁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라는 이름을 내건 많은 단체들이 예수를 인류의 구원자라 말하면서, ‘사회 구원’ 을 말합니다. 인본주의 신학자들은 성경에 예언된 그리스도는 위대한 인류의 스승이요 혁명가였다고 말하며 이들은 인류의 평화를 위하여, 종교간의 화해를 위하여 지나치게 ‘예수님이 구원의 유일한 길이라고 말하지 말라’ 말 합니다. 그러면서 각 종교의 대표들이 연합하여 세계의 평화를 모색하고 대화하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함께 사진도 찍습니다. 이와 같은 가르침과 주장들은 일면 타당하게 생각되기도 하지만 역시 사람을 미혹하는 수단에 불과합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 역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신성을 주장하신 예수님을 배척하고 참람하다는 죄목을 붙여 십자가에 못 박았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16:17]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 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예수님은 바른 신앙 고백을 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복이 있도다. ‘혈육’이라 할 때 이는 유대인들이 죽어야만 하는 존재로서 인간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관용어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를 타락한 본성을 가진 죄악된 인간은 결코 자신의 지식과 지혜로는 알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실 때만이 놀라운 복음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인간의 통찰이나 이성으로는 예수님을 위대한 선지자로만 이해할 수 있을 뿐입니다.

○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이해할 때, 구약의 약속에 따라 2000년 전에 구속사역을 이루신 분으로 이해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는 인정하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여전히 2000년 전의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 주 예수님은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 전능하신 분, 지금도 나의 삶의 중심에 말씀하시고, 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시는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의 아들을 알게 되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계시)를 통하여만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밝히 알도록 베드로에게 계시해 주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바요나 시몬은 복있는 자입니다.

 

[마태복음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 즉, ‘아버지께서 너에게 진리를 계시하셨듯이,나 또한 너에게 새로운 진리를 계시하겠다’ 는 말씀입니다. ‘너는 베드로라‘ 이는 예수께서 시몬의 신앙 고백을 가상히 여기사 그에게 새로운 이름을 수여하였음을 뜻하지 않습니다. 베드로라는 이름은 이미 이전에 예수께서 베드로를 만나셨을 때 '장차 게바라 하리라' 그에게 주신 이름이었습니다.(요 1:42). 본문에서 '너는 베드로라' 이 말씀은 예수께서 이미 예언하셨던 말씀이 이루어지셨음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 라는 말씀은 베드로를 최초의 교회 수장으로 그를 통해 교회를 세우신다는 의미가 아니고, 반석과 같은 이 신앙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신다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16: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예수께서 허락하신 권한 즉, 매고 푸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어 왔습니다. 이것을 베드로에게 심판과 사죄의 권한을 준 것으로 보는 의견이 있지만 예수께서 말씀하신 율법사들이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 버렸으며’ 그들 자신도 그 나라에 들어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들어가고자 하는 자들도 막고 있다’(눅 11:52) 라고 이로 볼 때, 천국의 열쇠는 가르침에 있습니다.

올바른 가르침을 주는 것, 즉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천국 문을 열어 주는 것이며, 이러한 복음을 전파하지 않는 것은 천국 문을 닫아버림을 뜻합니다. 주의 말씀의 선포로 많은 이들이 주께 돌아오기도 하고, 많은 사람이 복음을 접하지 못하여 사망 가운데 처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이라는 사실을 믿는 믿음은 천국문을 여는 열쇠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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