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40-45 <깨끗함을 받으라>

한 문둥병자의 치유 사건입니다. 유대인 사회에서 문둥병자는 부정한 자로 간주되어 마을에서 격리되었습니다. 더욱이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문둥병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이라고 인식되었습니다.

● 40절에 보면 한 문둥병자가 예수님께 나아와 엎드려 간구합니다. 그는 주님께 간구하기를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라고 하였는데, 이 말에서 우리는 그가 주님이 가난한 목수의 아들이지만 메시야 되심을 인식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주님께 직접적으로 고쳐달라고 말하지 않고 ‘원하시면’ 이라고 말한 것은 그가 모든 결정을 주께 맡기고 어떻게 하시든지 그대로 따르겠다는 겸손한 낮은 자의 모습입니다. 이는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자세입니다.

● 어떤 사람을 가리켜 성숙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란 은사와 체험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참으로 성숙한 신앙은 하나님의 뜻에 무조건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성숙한 신앙인이라면 기도할 때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달라고 막무가내로 고집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내 아버지여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읍소서” (마 26:39) 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본문의 문둥병자의 요청도 이와 유사했습다. 그도 자신의 병에서 놓여나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겠다 말하고 있었습니다.

● 욥이 그랬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걸음을 따라 걸으며 하나님의 길에서 치우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며 그 말씀을 귀히 여겼습니다. ○ 욥도 자신의 현실을 바라보면서 극한 공포심에 사로잡혔습니다. 절대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 앞에 자신의 고난이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고 고백하여 말합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욥은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욥은 말합니다. (욥23:14)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0| 있느니라.” ○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많습니다.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하는지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나의 기도의 응답이 왜 이루어지지 않는지~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 알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모든 위대한 역사는 주의 뜻에 순종할 때 일어나는 법입니다.

● 40절에 보면 ‘꿇어 엎드리어 간구하여’ 라 했습니다. 그의 기도에는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였습니다. 되도 좋고 안되도 그만이라는 식의 그런 태도가 아니라. Yes or No 반드시 응답해 주시리라 믿고, 주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는 하나님은 능히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임을 알고 나왔습니다.

◉ 중국에서 길에서 한 사람을 만나 전도했습니다. 그에게는 병이 있었습니다. 함께 기도하면 낫는다 하니까 그 周에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절절함이 없었습니다. 한번 능력있으면 고쳐 보라는 식이었습니다. 그래서는 낫지 않습니다.

○ 하나님은 언제라도 우리를 돕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구할 때에 즉시 응답하십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 50:15) 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람은 위급한 상황에 처하여 도움을 청할 때에 귀를 막거나 외면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으나 하나님은 성도가 기도할 때 외면하는 법이 없으십니다.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 (마 7:8)이라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은 반드시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실 것이라.’ 하는 신뢰심으로 간절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 아이를 가질 수 없던 한나 역시도 술 취한 사람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할 때 닫혔던 그의 태가 열려 사무엘을 낳게 되었습니다(삼상 1:9-20).

[마가복음 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 41절에 예수님께서 문등병자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라는 말이 있습니다. 곤경에 처한 인간을 향하신 긍휼히 여기시는 마음, 안타까와 하시는 주님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주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히브리서 4: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 44절에 주님께서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명하십니다. 곧 깨끗하여졌습니다. 치유받은 문둥병자를 향해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 깨끗케 됨을 인하여 모세의 명한 것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 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모세의 명한 것 이란 문둥병에 걸렸다가 나았던 사람은 제사장에게 가서 병에서 나았음을 확인을 받아 사회로 복귀하는 규례(레 14장)의 내용을 가리킵니다. 말씀에 순종하면 +α 의 은혜를 받게 되어집니다. 주님은 그가  사회에서 정상적인 삶을 살기를 바라셨습니다. 

○ 병을 고치신 하나님의 아들 주님이 ‘깨끗하다 하시는 인정이 더 효력이 있을까요? 아니면 세상에서 율법에 따라 병고침을 선언하는 제사장의 선언이 더 효과가 있을까요? 물론 주님의 확증이 더 귀하고 인정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 병나음을 받은 자를 제사장에게 보냅니다. 왜요? 율법의 규례입니다. 질서입니다.

○ 주님께서는 구약의 율법을 소홀히 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전통과 유전을 비판하셨지만 율법 존중히 여기시고 지키셨습니다. ○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된 자는 마땅히 준수해야 할 법이 있습니다. 물론 오늘날에는 구약의 정결법이나 제사법과 같은 의식법은 지키지 않아도 됩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구약의 의식법은 우리 주님의 십자가 구속 사역으로 말미암아 폐지 되었기 때문입니다. ○ 어떤이는 안식일은 토요일인데 왜 하나님의 정하신 날을 고치는가? ○ 돼지는 되새김을 하지 않으니 먹어서는 안 되는 고기이다. 금합니다. 그리고 ‘돼지고기는 몸에 해로운 것이다’ 하는 학문적 근거도 제시합니다. 그러나 최초의 교회회의에서는 사도바울에게 권면합니다. 우상의 제물만 피하라고… 지금 우리는 누구나 돼지고기를 먹습니다. ○ 누구는 말할 것입니다. 무엇은 지키고 무엇은 지키지 않느냐? 사람이 하나님의 법을 가려내는냐? 말할 수 있습니다.

○ 주님은 세례를 받을 이유가 없으신 분이었습니다. 죄가 없으신 분입니다. 그러나 세례요한의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로 공인을 받는 당시의 관례의식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세례는 율법에 명한 계명도 아닙니다. 사람들은 교회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 말하는 사람도 있고, 십일조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 지금 우리는 율법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자로서 아브라함과 야곱이 기쁨으로 드린 십일조와 같이 우리도 기쁨의 마음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 성도들 중에는 이신득의(以信得義)의 교리를 잘못 이해하여 믿음으로 구원을 얻으므로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사람이 믿음으로 구원 얻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율법을 무시하고 지키지 않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요14:21]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 잘 판단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지키는 것은 문서로 법제화된 계명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안녕과 질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신 사랑의 법입니다.

[약 2:8,9] “너희가 만일 경에 기록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한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리라”

45절에 보면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예수님의 명하심을 받았음에도 문둥병에서 치유 된 사람은 나가서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였습니다. 그는 그렇게 하는 것이 예수님의 사역과 명성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이로 인하여 주님을 보고자 수많은 인파가 몰렸고 주님은 더 이상 동네에 들어가실 수가 없어 바깥 한적한 곳에 머무셔야 했습니다. ○ 말씀에 기초하지 않은 간증은 본의는 아니라 할지라도 주님의 사역에 상당한 장애가 되었습니다. 사람이 많이 몰려온다고 반길 일은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나오는 동기입니다. 주님이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하신 것은 사람들이 병 치료를 위해 몰리는 것을 피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집중 하고자 하심이었습니다.

○ 사람들은 현실의 난관을 육신적인 문제의 해결에서 찾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새롭게 되는 것, 변화하는 것은 병고침이나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 되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변화는 말씀으로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죄를 깨닫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 죄를 깨닫고 죄를 고백하며 회개할 때 진정한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입니다.

사람들 마음 속에는 각종 죄가 있습니다. 이것이 눈에 보이는 병보다 더 큰 병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모릅니다. 문둥병자는 아직 순종함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에게 더 심각하고 위험한 것이 죄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죄, 하나님을 찾지 않는 죄,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죄, 분노, 미움, 욕심, 고집 이런 모든 것들이 인간의 질병입니다. 이런 질병으로 인해 사람들은 상처를 받고, 인간관계가 깨어지고, 우울증에 걸리고 낙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대를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현대인에게 희망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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