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8:5-13   <백부장의 믿음>

당시 갈릴리지역의 통치자로 분봉왕 헤롯 안티바스에게는 정식 로마군단은 없었지만 군사를 소집할 권한이 있었고, 군대도 소유하고 있었는데 대부분 이방인 용병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군대의 조직에서 백부장은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 부대원들 사이의 가교 역할로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마태 본문에는 예수께 나아와 자신의 하인을 고쳐 달라 청원하는 백부장을 말하면서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특별히 기록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가 이방인이란 사실은 [10절]에 예수님이 직접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도’ 라 하신 말씀에서 우리는 비로소 그가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은 걸까요? 예수님은 이방인이 좋은 믿음을 가질 가능성에 대한 어떤 편견과 차별을 차단하신 것입니다. 오히려 혈통상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예라는 말하는 유대인들에게 큰 믿음의 소유자를 찾지 못하셨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 누가복음 동일 본문에서는 백부장이 유대인 장로들을 보내어 예수님께 자신의 바람을 전달하고 있는데 오늘 마태복음에서는 백부장이 직접 나서서 간구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마 유대인 장로들이 함께 와서 도움을 주도록 특별 청원을 하는 중에 백부장이 직접 나서게 되지 않았나 여겨집니다. ○ 여기서 우리는 이방인 백부장이 놀라울 정도로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세심한 배려를 봅니다. ○ 유대인의 규례에 따르면 이방인과 접촉을 죄로 여긴 때입니다. 이방인인 자신이 바로 나서기가 조심스럽습니다. 그렇다고 자신의 하인을 고쳐달라 청원하는 일을 ‘남에게 맡긴다’ 이것도 무책임하게 보여집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해 준 것이 장로들입니다.

[6] 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 백부장은 예수님을 ‘주(퀴리에)’ 라고 부릅니다. 비록 도움을 청하여 나왔지만 로마군대의 백부장이 어찌 유대인을 향하여 “주여”라고 부를 수 있다는 말입니까?

‘내 하인이’ 이 말은 ‘종’이라는 뜻의 ‘둘로스’(9절)가 아닌 ‘아이’ 라는 의미로 소년이나 소녀를 가리키는데, 이 하인은 단순한 종이라기보다는 백부장의 집안 일을 총괄하는 청지기로서 상속자처럼 여기던 사람이거나 실제 아들로 입양된 사람으로 보입니다. 백부장은 이 ‘아이’가 병이 들자 직접 예수님 앞에 나왔습니다.

○ 기도 중에 가장 응답이 확실하고 신속한 기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는 이웃을 위한 중보기도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은 기도입니다.

[7]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여기 예수께서 ‘나’ 라는 인칭대명사를 굳이 사용하신 것은 ‘유대인인 내가’ 라는 뉘앙스가 있는데, 이는 이방인들의 집에 들어가거나 합석하지 않고 거리를 두어야 하는 것이 유대인의 전통적인 규례로 많은 사람이 주목하고 비난과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유대인인 내가 굳이 너의 집에 가서 고쳐야 하느냐’ 라는 질문과도 같습니다.

○ 예수께서는 ‘내가 ~고쳐주리라’ 이 말은 ‘나는 ~이다’ 라는 말의 형식으로 예수님은 때로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는 양의 문이다” 하신 것처럼 자신을 표현하실 때 쓰던 어법입니다. 이는 예수께서는 자신이 다른 인격의 권위나 능력을 빌어서 병을 고치시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치유의 주체가 되어 자신이 스스로 결정하고 행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또 우리에게 “자신의 이름으로 이런 일을 하라.”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6: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 이에 백부장은 [8절]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감당치 못하겠다.’ 라고 하며 자신을 낮추어 사양의 자세를 보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자신의 집에 오시는 것을 처음부터 생각지 않았습니다. ○ 이는 [마태복음 15장]에서 가나안 여인이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먹게 해 달라”고 한 무자격자임을 밝인 모습과도 상통합니다. ○ 우리가 주님 앞에 구할 때, 내가 주를 위하여 이런 이런 일을 했습니다. 내가 주를 위하여 이런 손해를 감수했습니다. 하는 마음을 주님이 기뻐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주께 받지 않은 것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 우리는 만유가 주께로부터 와서 주께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 백부장은 [8]“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청원합니다. 말씀만으로도 자신의 하인의 병을 능히 고치실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백부장은 구약 시대의 나아만 장군이 바란 것같이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드는 것과 같은 주술 요구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직접 찾아와 하인을 만나 주어야 한다고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 그는 주님의 ‘말씀’ 자체에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백부장이 바란 것은 ‘한 마디 말씀’ 이었습니다. ‘말씀’ 이란 ‘로고스’입니다. ‘로고스’는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에 존재하신 예수님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나서 만물이 있고, 변화가 있고,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 우리가 고난과 위기 가운데 있을 때, 주님께서 원하신 것은 믿음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보시기를 원하십니다.

[마태 8:9]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 수하란 ‘권세, 또는 ‘권력’ 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 권세는 의사 결정의 권한, 신적 권위, 세상에 대한 지배력을 말합니다. 백부장은 자신이 군대의 백부장으로 아랫 사람에게서 권세와 권위를 인정받기를 기대하며, 자신 역시 권위와 권세 아래 있는 사람으로 권세자의 한 마디가 얼마나 큰 힘을 가졌는가는 아는 사람입니다. ○ 사람은 권세를 자랑하고, 조그만 능력에 자만하기 전에 자신도 더 큰 권세 아래에 속한 사람임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다른 사람의 권위자로 존경 받기를 원한다면 다른 사람의 권위를 세워주어야 합니다. ○ 권위와 권세를 두려워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사람이고 자신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 힘이 있는 자. 지혜를 가진 자, 마땅히 존경할 자를 존경하는 사람이 큰 은혜의 자리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 요즘은 모든 권위가 부정되는 세상입니다. 선배가 없고, 부모가 없고, 스승이 없는 세대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고 자유자재 하며 눈 앞에 이익이 아니라면 누구의 말도 듣지 않으려 합니다. ○ 백부장은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귀울이는 사람이었습니다. 백부장은 자신의 고국을 떠나 이스라엘 땅에 와서 예수님이 질병을 유발시키는 더러운 귀신들을 향해 명령하시니 귀신이 예수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을 보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았습니다. 백부장은 주님이 말씀 한 마디로 얼마든지 자신의 뜻을 이루시는 분임을 알았습니다. ○ 그는 로마 진주군의 장교로서 자신의 자존심과 지위를 내려 놓고 주님 앞에 나가는데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향하여 “주여(퀴리오스)” 라고 불렀는데, 이는 예수님의 도움을 얻으려고 듣기 좋게 부른 칭호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진심이었습니다.

● 행복과 축복이 자신의 재능, 세상에서의 힘과 배경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흥망성사가 운에 달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질병이나 고난이 마귀로부터 온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귀가 하나님보다 더 큰 사람입니다. ○ 믿음은 위대하고 놀라운 사건을 보면 보는 눈이 있어야 하고, 받아들이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지혜로운 사람이고 믿음이 가능합니다. ○ 사람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보고 의심하고 의심을 지닌 채로 그냥 그렇게 살아갑니다. ○ 왜 내려놓지 못하는 것입니까? 인정하는 순간에 자신의 무능을 인정하는 것이고 순종하고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쥘 것이 있는 동안 결코 누구를 찾지 않으려 합니다. 존심 때문에~

○ 유대인들은 구약에 대한 지식이 있었음에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과 메시야 되심을 아는데 실패했습니다. 믿음은 성경을 많이 읽고 배웠다고 얻어지는 것도 아니요. 이적을 보았다고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 믿음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에 달려 있습니다.

[마태 8:10]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여기서 ‘기이히 여기다’의 헬라어는 ‘감탄하다’ 는 뜻입니다. 주님은 그의 믿음에 감탄하셨습니다. ○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얼마나 선행을 많이 하고 예배를 많이 드리고 기도를 오래 했는가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믿음을 기뻐하십니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요 20:29) 라고 하셨습니다.

[마태 8:13]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

● 예수께서는 ‘네 하인의 병이 나았다’ 라고 하시지 않으시고 ‘네 믿음 대로 될지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치유의 능력은 주님께 있지만 치유의 동인(動因)은 사람의 믿음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가 믿는 만큼 나타나는 것입니다. 기도의 응답은 주님의 능력을 확신하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혹시 나는 주님이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다고 불평하면서도 그 기도가 실제로 이루어질 것이라고는 믿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은 아닌가(고후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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