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9:14-29   <기도 외에는>

[마가복음 9:14] 이에 그들이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그들을 둘러싸고 서기관들이 그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더라

여기 ‘변론하다’란 말은 ‘논쟁하다’ 라는 의미에 더 가깝습니다. 어떠한 주제를 놓고 여러 사람이 함께 합의점을 찾기 위해 토론하며 논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마도 서기관들은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자 이를 빌미로 제자들에게 악의에 찬 조롱을 퍼부었을 것입니다. 예수가 귀신을 쫓아 낸 일은 일종의 사기극이 아니냐는 겁니다.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는 무능력자들은 제자들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유대교 서기관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귀신이 어린 소년을 괴롭히는 그 현장에서 그 아이에게는 무관심한 채 오직 논쟁을 일삼고 있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8:11]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께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 무능한 종교인들이 논쟁만 일삼는 것입니다. 종교적 논쟁은 다툼과 분열만 일으킬 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 (딤후2:23)고 했습니다. 성경에는 풀 수 없는 많은 난제들이 있습니다. 영.혼.육 외계인. UFO. 종말. 세례. 등등 교파 간에 서로 이견이 있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능력 있는 성도들은 논쟁할 시간도 또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그들은 오직 그들이 가진 능력으로 주님의 진리를 입증합니다.

○ 주님은 제자들이 귀신들린 아이를 치유하지 못하고 서기관들에게 유구무언 부끄럼을 당하고 있는 그 자리에 주님이 찾아주셨습니다. 주님은 세 명의 제자만 따로 데리고 변화산으로 올라가셨지만 제자들이 있는 곳에 적절한 시간에 찾아 오신 것입니다. 온 무리는 산 아래 내려오신 예수님을 보고 놀랍니다. 예수님이 무엇을 변론하느냐 물으실 때, 무리 중의 하나가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하니 예수님의 처음 반응이

[마가복음 9:19]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하는 탄식이었습니다. 여기서 “너희에게”라는 말은 제자들을 포함한 말씀일 것입니다. 그러면 왜 제자들은 고치지 못한 것입니까? 제자들은 일찍이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예수님께로부터 부여받아 이미 놀라운 이적을 행한 사람들입니다. 제자들은 아이에게서 귀신을 쫓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제자들은 무리에게 둘러싸여 서기관들에게 조롱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9:22,2]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 아이의 아버지는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가정을 하고 예수님께 도움을 청한 것입니다. 이미 많은 실패를 겪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이의 아버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예수님 앞에 나아가는 자에게 첫째로 요구되는 것이 믿음입니다. ‘할 수 있다면, 한 번 고쳐보십시오!’ 이런 자세는 믿음이 아닙니다. 아이의 아버지가 자신의 믿음 없음을 고백했습니다.

[마가복음 9:24]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 앞뒤가 안 맞는 말입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섬겨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헌신한 제자들이면 고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을 바라본 것입니다. 이제 그는 믿음을 갖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한 것입니다. ○ 믿음은 갖겠다고 갖는 것이 아닙니다. 큰믿음을 갖기를 원하지만 믿음이 생각대로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여전히 모든 것을 내 힘으로 해결하려 동분서주하 하고, 사람을 바라보는 우리들입니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이는 우리의 평생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 아이 아버지의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은 아이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주셨습니다. 이를 본 제자들에게 한 가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자기들은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는데, 예수님은 쫓아내셨습니다. 그 이유를 예수님께 물었더니, 간단하게 대답하십니다.

[마가복음 9: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14: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앞서는 ‘믿음’을 강조하셨는데, 제자들의 질문에 대하여는 ‘기도’를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14:13] 은 기도에 대한 약속입니다.

[야고보 1: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 기도의 응답에서 ‘믿음과 기도’는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응답되지 않는 기도는 믿음이 없거나 의심하는 기도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형식적인 믿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제자들은 이미 자신도 모르는 가운데 자만과 안일에 빠져서 하나님을 간절히 전적으로 의지하는 기도 생활을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도가 오랜 신앙생활을 하고 많은 기적을 체험했다 하더라도… 현실에 만족하고 세상의 부귀와 명예에 마음을 두게 되면 나태해지게 마련입니다. 사람의 믿음은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약하여질 수 있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9:38-40] 요한이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 제자들은 자신들의 공동체와 위계질서에 큰 관심이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보기에 자신들의 공동체에 함께하지 않는 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병을 고치고 있는 것은 예수의 이름을 능력 행함의 수단이나 도구 정도로 삼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제자들은 그들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쫓는 행위를 하는 것을 금하였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예수께서는 이를 긍정적으로 보시며 허용하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생각이 독단적인 판단일 수 있음을 보이신 것입니다.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 많은 사람이 예수를 처음 믿기 시작한 이후로 신앙생활의 과정 속에서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일, 혹은 각종 영적체험을 경험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기성신앙이 되면 시간이 지나면서 기도는 형식이 되고 예수님은 간데 없고 형식적인 신앙만이 남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즉시로’라는 말을 더하신 것입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신앙은 지속적인 성숙의 시간을 거처야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신앙의 진정성은 두고 보아야 하리라는 말씀입니다. ○ 주님은 저들에게나 제자들에게나 마찬가지로 관용과 인내로 기다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귀신을 쫓음과 이적, 병고침으로 신앙을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보시기에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있는 저들이 지금 더 ‘생동력 있는 신앙’의 삶을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 우리가 관심을 두어야 할 일은 ‘지금 나는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는가’ 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이라는 허울좋은 가면을 쓰고, 기도도 없고, 기도에 능력도 없는 형식적인 기도를 하는 문화적 그리스도인은 아닌지 주의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4: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마가복음 6장에 보면 일찍이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들을 치유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주신 바 있습니다.

[마가복음 6:7,13]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 제자들은 제자로 부르심을 받고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쳤습니다. 그들이 ‘주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귀신이 쫓겨 나가고 병든자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금 제자들은 기도에 나태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자신들은 여전히 좋은 믿음의 소유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기도하지 않는 믿음은 헛된 믿음이라는 말해줍니다. 믿음은 사용하므로 자라가는 것입니다. 

○ 신자가 세상에서의 성공과 공명심에 관심이 집중 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주님의 이름을 자기 행위의 수단으로 삼는 것을 자주 목격합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예수의 이름을, 혹은 기독교의 이름을 아무렇게나 이용하며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살아가는 것이 현실입니다.

○ 마가복음은 1차적으로 당대의 독자로서 엄청난 시련 가운데 처하여 신앙적 무력감에 빠져 있던 로마 교회의 성도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동시에 이 말씀은 세상의 부귀 영화에 마음을 두고 살아가면서 세상의 조롱을 당하는 현대의 기독교인들에게 기도만이 능력의 원천임을 말하며 ‘믿음을 가지라’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라’ 명하시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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