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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2:34-46 <가장 큰 계명>
마태복음 22:34-46 <가장 큰 계명>
[36절]에 한 율법사가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물었습니다. 당시 율법사들은 성경에 능통한 자들로 그들은 성경에 관한한 최고의 지식을 갖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가 어떤 의도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는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주님의 반응으로 볼 때 질문 자체에 악한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마태는 이를 시험과 관련하여 기록하고 있는 반면 마가는 비교적 긍정적인 측면에서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2:28] 서기관 중 한 사람이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 사실 율법사의 질문은 당시 랍비 세계의 중요한 이슈가 되는 문제였습니다. 당시 랍비들은 율법을 613개 조항으로 분류하고 그 중에 248개률 중요한 것으로 나머지 365개를 덜 중요한 것으로 구분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계명으로 구분한 248개 조항 가운데서도 어느 계명이 가장 중요한지에 대해 논란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율법사는 바로 이러한 배경 하에서 주님께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37절]은 예수님께서 율법사의 질문에 대답으로 [신 6:5]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 주님은 하나님 사랑을 첫째 되는 계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대해 어떤 이는 ‘그렇다면 우리가 직장이나 사업을 모두 팽개치고 성전에 엎드려서 살아야 하는가' 물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한다 함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4:21]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 이는 하나님 사랑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규정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사랑 고백은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며,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됩니다. 사람이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는 없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그의 계명들을 지키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 말하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믿는다 하며, 성경 진리를 논하는 것이 다 헛된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두번째로 큰 계명을 말씀하십니다. [39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이는 [레위기 19:18]의 인용입니다.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 이 두 계명은 십계명의 요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1계명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이하 전반부 제4계명까지는 하나님과 관련한 것으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슴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요. 그리고 제5계명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부터 이후 제10계명까지는 사람과 관련한 것인데, 이를 요약한 것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①'하나님을 사랑하라.' ②'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 두계명은 전체 십계명의 요약인 것입니다. 율법사는 가장 큰 계명을 물었지만 예수님은 두가지 계명을 함께 말씀하신 것입니다. ○ 이웃 사랑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동일한 무게로 행해져야 한는 것이며,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증표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 하면서 이웃에 대한 의무는 소홀히 하는데, 우리가 참으로 경건한 사람이 되려고 하면 이웃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경건 중의 경건은 이웃사랑입니다. 방언을 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많이 하고, 신의 음성을 듣는다고 하여도 이는 온전한 경건이 아닙니다.
[요한일서 4:21]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야고보서 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 가난하고 병들고 헐벗은 자들, 인권을 유린 당하고 소외된 수많은 사람들을 외면한 채 종교적 열정에 빠지는 것은 경건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알지 못한다 하십니다. ○ 사람은 종종 한 편에 치우치는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만 찾는 경우도 있고, 자선만을 강조하여 사는 신자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향한 열정과 이웃을 향한 돌봄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웃 사랑이 결여된 하나님 사랑을 기뻐하지 않으시며, 하나님 사랑 없는 이웃 사랑을 경계하신 것입니다.
○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 사랑도, 이웃사랑도 행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나의 삶이 안정을 이루고, 풍족을 얻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늘 부족한 것이 사람들의 인생입니다. 어떻게 나를 희생하고, 내 것을 내려놓고 이웃을 사랑한다는 말입니까?
○ 마태는 가장 큰 계명을 논한 뒤에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한 일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를 알지 못하고 계명을 논하는 것은 무익한 일입니다.
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에 물으셨습니다.
[마태복음 22:41]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이르시되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44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 왜 주님은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고백한 일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어떤 사람은 이 부분을 '바리새인들에 대한 예수님의 공격이다.' 즉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다시는 대적하지 못하도록 하신 질문이라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 실제로 '누구의 자손이냐' 주님의 주도적인 이 질문은 자신을 그리스도로 인정하기를 거부한 바리새인들로 하여금 자신이 그리스도임을 깨닫게 하고 그들의 무지와 편견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인성으로 말하면 다윗의 계통인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영원한 신성을 지니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다윗은 예수님을 '주'로 고백한 것입니다.
○ 우리가 알 것은 바리새인들이 율법 교육을 받아 많은 지식이 있고 열심을 가진 사람들이었으나 진리를 아는 데에는 이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지식이 많다고 해서 진리를 아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이 진리인 것은 분명합니다. 주님도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라고 증거 하셨습니다. ○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진리에 속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셨고,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했습니다. 이는 배우기는 열심히 배워도 진리에 이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 예수님을 알지 못하면서 진리를 안다고 말하는 것은 무지한 말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만물과 사람은 상대적이며 변하는 것입니다. 의지할 만한 대상이 아닙니다. ○ 예수님 스스로 [요14: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한 사람만이 곧 진리를 소유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 많은 교회가 성경공부 프로그램을 가지고, 많은 성도들이 성경공부에 열심을 내지만, 진리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두려워 해야 하는 것은 성경 지식의 부족이 아니라 진리에 이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 지식으로는 성경을 잘 알고, 율법과 계명을 잘지키는 사람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진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따르면 하나님의 약속에 참예 하지만, 지식을 따르는 신앙은 여전히 어둠과 사망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 요즈음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다. 안다" 말하며 성경의 지식을 논하고, 바른 신앙생활을 논하지만 여전히 계명을 지켜 살지 않는 것을 봅니다. 말로는 믿는다 하지만 실제로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여전히 머리 속에 머물러 있는 지식적인 신앙인이라 할 것입니다.
○ 어떤 이들은 성령께서 '진리의 영'이므로 성령을 받으면 진리를 아는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순서가 틀렸습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성령이 임하십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으로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진리에 이르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성령의 은사가 넘치는 교회였지만 그들 중 많은 사람이 여전히 초등학문 가운데 매여 있었습니다.
○ 오늘날 이 땅에는 성경 해석의 입장에 따라 많은 교파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장로교는 칼빈을, 루터교는 루터를, 감리교는 웨슬리를 선각자로 여깁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교파에 따라 그들 교리를 마치 절대 진리인양 신봉하며 구원이 있다 없다. 말합니다.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고 분열과 미움을 만들어 냅니다. ○ 지식은 편견과 고정 관념에 사로잡히게 하고, 파벌을 조성합니다. ○ 율법 중에서 가장 큰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 했지만 사람은 결국 아무 것도 지키지 못한 무능한 존재일 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주로 고백하는데 있습니다.
○ 바울이 왜 예수를 믿은 후 전에 귀하게 여기던 것. 알던 것들을 배설물처럼 여긴다 했습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빌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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