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9:9-13    <긍휼을 원하심>

[마태복음 9:9]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 주님께서는 세관에 앉아 일하던 마태를 보시고 아주 단순 명료하게 “나를 좇으라” 고 명하십니다. 그러자 마태도 미련없이 그 하던 일을 멈추고 즉시 일어나 주님을 좇았습니다. ‘주님을 좇는다’ 는 말은 ‘주님을 내 삶의 경배자와 인도자로 택한다’ 는 결단과 의지가 내포한 말입니다. 세상에 내가 귀하게 여기는 것들이 많지만 그리스도 예수를 나의 가장 귀한 삶의 가치로 알고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 또한 주님을 좇는다는 말은 주님을 모방하고 답습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를 자신의 인격과 삶의 표준으로 여기고 그분을 닮으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상인을 좇는 자들은 장사꾼이 되고 정치가를 뒤좇는 이들은 정치인이 됩니다. 그리고 강도를 좇는 자는 똑같은 범죄자가 되게 마련입니다. ○ 마지막으로 주님을 좇는다는 말은 그분과 공동 운명체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분이 당한 고난을 자신들도 당할 것을 각오하는 것이고, 주님이 영광받으면 자신들도 영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이 하신 일을 살펴 보려 합니다.

[마태복음 9:10]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 회심하고 주를 영접한 마태가 그 친구들을 불러 모아 주와 함께 잔치를 벌이는 장면입니다. 그는 그 동안 함께 일해왔던 세리 동료들과 작별하는 의미로 또 자신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일에 대한 감사와 기쁨의 의미로 잔치를 벌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통해 그의 동료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자신에게 하신 일을 소개하고 전도했을 것입니다. 마태의 동료 세리인 중에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많아 그리스도께서 ‘세리의 친구’ 라는 별명까지 얻으셨습니다.

○ 당시 세리는 유대인들이 가장 증오하는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정복자 로마의 앞잡이로서 허다한 명목으로 세금을 거두어 헐벗은 유대 백성들로부터 착취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의 평민들은 로마가 그들을 통해 수탈해 가는 수많은 명목의 세금 때문에 궁핍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인두세는 기본이요 도로세,물품세,수도세 등이 있었고, 그 외에도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정한 성전과 관련한 세와 각종 종교적 봉헌 의무가 주어졌기에 유대 민족은 가난과 전쟁을 치러야 했습니다. 그런데 종교지도자들이 정한 성전세는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거두어졌기 때문에 사람들의 지탄을 면했지만 유대 지도자들은 이렇게 종교세로 거둬들인 치부하며 호의호식하였던 것입니다. 그러한 데도 유다백성의 가난의 고통은 모두 로마정권과 세리들에게 뒤집어 씌웠졌던 것입니다.

○ 우리 성도들도 살다보면 때로는 ‘어떻게 저런 사람이 예수 믿고 교회에 함께 출석하나’ 생각이 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볼 때 우리는 분노하고 판단하기가 쉽습니다. ○ 그런데 비판은 바리새인들의 특징입니다. 너는 틀렸고 나는 옳다. 너와 나는 다르다는 일종의 차별의식입니다. 사람은 다 불완전하고 부족한 것입니다. 사람은 다 부끄러운 존재입니다.

[로마서 3: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 많은 부모들이 자식을 위하여 온갖 수고를 다하지만 자식을 잘 가르치지 못해 곁길로 나가고 자립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 다윗은 솔로몬을 후계자로 삼아 하나님 나라의 왕국을 기대했지만 그 역시 우상숭배에 빠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 사무엘은 기도의 사람이었고 그가 살아있는 동안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나라가 평안했지만 그의 아들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잘 섬기고 남유다를 구하기 위해 일생을 받친 사람이지만 그 아들 므낫세는 나라을 파멸로 이끌고 갔습니다. ○ 많은 선교사가 주님을 위해 일생을 드리고, 많은 수고를 하지만 외국어만 공부하다가 돌아오는 선교사도 있고, 돌아보면 한 일이 보잘 것 없을 때도 많습니다.

◉ 한국 교회는 연길지역에 300개 정도의 크고 작은 교회를 세웠습니다. 연길지역이라 하면 조선족 교회일 것입니다. 삼자교회도 있었을 것이고 가정교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선족은 중국 전국으로, 혹은 한국으로 이주하였기에 현재 대부분 교회는 거의 사라지고 없습니다. 거기에다 한국에 온 저들이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적다는 것을 보면 우리의 지난 날의 수고를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음을 보게 됩니다.

○ 사람의 하는 많은 수고들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숲 전체를 보시는데 인간은 나무 밖에 보지 못하는 한계가 있고, 하나님은 영원한 세월을 두고 계획을 세우시지만 인간은 근시안적이고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을 합니다.

[전도서 1: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 이렇게 노래하는 전도자의 말은 자신 스스로 유익한 일을 한다고 수고하고 힘쓰다가 인생의 말년에 내린 결론입니다. 우리의 인생에 자랑할 일도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은 우리의 신분이나 노력으로 되어진 것이 아닙니다.

◉ 우리는 다 주 예수님의 속죄로 구원을 받고 은혜 받은 자들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10대 무역국이 되고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가게 된 것도 내가 수고하여 얻어진 것도 아니고, 우리가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도 나의 의지로 되어진 일이 아닙니다. ○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진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실 때, 우리가 서로 경쟁하고 비교하며 성공하라고 지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성취는 내게 주신 재능과 힘대로 사랑 안에서 하나님의 기쁘심을 이루어 드리는 것입니다.

○ 내 의를 말하고 내가 인정받기를 바라고, 나의 공로를 말하고, 자신의 기준과 판단대로만 행하면 불신자와 다름없는 사람이 됩니다. 이웃을 판단하고 업신여기는 언행은 곧 그를 지으신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 나도 내 옆의 다른 성도들도 다 동일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고 있는 귀한 존재요 천국을 유업으로 함께할 동등한 형제의식을 가지고 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 대만 방송에서 여러나라의 외국 패널들이 나와 자신의 나라를 자랑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기서 한 중국본토인이 중국은 역사적으로 외국을 침략한 일이 없다는 발언을 하여 많은 참석자들에게 비난을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금 중국이 얼마나 많은 나라들에 전랑외교를 하며 위협을 하고 있는 것을 다 아는데, 이 사람만 모르고 있다는 말입니까? 세상은 다 아는데 저만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우리의 일상에서 주위에 도처에서 보여지는 일입니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많습니다.

○ 지금 이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예수님과 그 제자들이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교제하는 것을 보고, 바리새인들이 주님을 비판하였습니다. 유대교의 규례에 의하면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는 자는 곧 죄인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 그러나 실제로 그리스도께서 택하신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신 일은 율법의 정신에도 어긋나지 않는 행동이었습니다. 율법을 지키시고 그것을 완성시키려고 오신 분이 율법을 어기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원수까지라도 사랑하라 명하셨습니다. 이는 유대교인들, 특히 바리새파 사람들이 자기들 기준대로 율법을 해석하여 죄인으로 규정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들은 스스로를 의롭게 여기겼습니다. 이에 주님은 당시의 속담으로 대답하십니다.

[마태복음 9: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 건강한 자만을 상대하려는 의사는 없을 것입니다. ○ 흠 없고 깨끗한 사람, 상식이 통하는 자기 취향에 맞는 사람들만 대하려는 성도와 사역자는 엘리트 의식과 차별의식을 가진 사람입니다. ○ 그리스도께서는 결코 자신의 기준과 취향에 따라 사람을 대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주님이 자기 기준과 취향에 맞는 사람을 상대하시기 원하셨다면 이 땅에 오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 우리 각 사람은 나 자신 역시 주님의 도우심이 필요한 허물과 죄가 많고 연약한 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죄 많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

[누가복음 23: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 주님은 우리에게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빛은 어두운 곳에 필요하고 소금은 부패한 곳이나 부패할 가능성이 있는 곳에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부패한 세상과 나를 분리시키는 것이 아닌, 세상 가운데 거하며 그들을 사랑하고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고결하고 비싼 ‘다이아몬드’ 가 아닙니다. 흔하고 싼 ‘소금’입니다. ○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신 것은 예배를 잘 드리고 헌금을 잘하고,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이 아닙니다. 주님은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마태복음 9: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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