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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하 14:1-15 <변치 않는 믿음>
역대하 14:1-15 <변치 않는 믿음>
[역대하 14:1] 아비야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우매 다윗 성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아사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 그의 시대에 그의 땅이 십 년 동안 평안하니라
[시편 4:8]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라.
사람은 누구나 세상을 살아가면서 평안의 삶을 누리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노력한다고 다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평안이 깃들었다 할지라도 잠시 후면 다시 불안과 초조, 탄식과 고통의 시간이 찾아옵니다. 왜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죄와 불신이 그 원인입니다. 우리가 평안할 수 있는 것은 외적인 환경이나 어떤 조건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신자는 주님이 주시는 진정한 평안을 알아야 합니다. ○ 다윗은 자신을 안전하게 거하게 하시는 이는 여호와 하나님이라 말합니다. ◉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한국이 짧은 기간 안에 번영한 원인을 “미국의 지원이다. 일본의 계몽이다.” 많은 외적인 요인을 제시하지만 번영의 원인을 속시원히 설명해 주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나라의 기독교가 번성하는 기간 동안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역대하 14:3,4] 이방 제단과 산당을 없애고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상을 찍고 유다 사람에게 명하여 그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하며 그의 율법과 명령을 행하게 하고
하나님께서 아사와 남유다에 주신 평안의 축복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꿀맛과도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다윗과 솔로몬의 시기를 제외하고 그들에게 전쟁의 두려움에서 벗어난 때는 거의 없었습니다. 애굽과 메소포타미아 지방을 잇는 통로에 위치한 이스라엘은 주변 열강들의 끊임없는 침략을 받았습니다.
○ 아사왕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10년이라는 평안의 기간에 무엇을 하였습니까? 전쟁만큼이나 골치 아프고 시끄러운 종교개혁을 단행한 것입니다. 아사왕은 이방 제단과 산당을 없애고, 주상을 훼파하며 아세라 상을 찍고, 유다 사람을 명하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게 하고, 유다 모든 성읍에서 산당과 태양상을 없앴습니다. 사실 우상 승배는 가나안 땅에서 뿌리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에 들어 온 후에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이스라엘 땅에서 우상숭배가 완전히 그 자취를 감추었던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오래도록 우상숭배의 관습에 젖어 있던 백성들이 자신들의 신으로 알고 섬기는 신을 버리고 그들이 잊고 알지 못하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도록 한다는 것은 엄청난 저항을 가져오는 일입니다. 이로 인하여 자신의 왕권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아사왕은 단호하였습니다. 그는 남유다에 만연하였던 우상숭배를 척결하고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율법을 준수하게 하는 종교개혁을 단행하였습니다. ○ 심지어 [15장]에 보면 아사는 그의 조모이자 르호보암의 아내로서 당시 태후의 위에 있던 마아가가 아세라 우상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태후의 위에서 폐하는 조치까지 단행하였습니다. ○ 아사왕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실천에 적당한 타협은 없었습니다. 이처럼 신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신앙을 지키고 원칙을 따라 살아가려는 결심이 필요합니다. 이로 인해 친구들과 멀어지고, 때로는 고루하다 욕을 먹기도 합니다.
[사도행전 5: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담하여 가로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 여로보암은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위하여 여호와를 섬기는 제단이라 하며 예루살렘의 제단과 유사한 금송아지 제단을 만들어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의 타협적인 신앙으로 말미암아 그의 왕조는 2대 만에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은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어떤 요구와도 타협하지 않는 단호한 믿음입니다.
아사왕은 평안의 10년 동안 여호와의 기쁘심을 찾았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찾는 자의 탄원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베푸신 축복을 다시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축복 받은 자의 올바른 태도이며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을 베푸시는 것은 우리의 유익을 위함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 애굽 땅에서 요셉은 7년의 대 흉작이 있기 이전에 7년의 대 풍년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이는 환난의 시기에 자신의 백성을 보호하고 일으키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디모데후서 2:6]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했습니다.
○ 이는 즉, 농부가 일하러 나가기 전에 종자 씨를 먼저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이 축복을 받는데는 지대한 관심을 보이지만 정작 그것을 올바로 사용하는 일에는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축복을 주시면 그것을 오직 자기의 유익을 위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만일 우리가 계속해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축복과 유익만을 구하기에 급급한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허락하신 축복을 거두어 가실지도 모릅니다.
[역대하 14:7] 아사가 일찍이 유다 사람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이 땅이 아직 우리 앞에 있나니 우리가 이 성읍들을 건축하고 그 주위에 성곽과 망대와 문과 빗장을 만들자 우리가 주를 찾았으므로 주께서 우리 사방에 평안을 주셨느니라 하고 이에 그들이 성읍을 형통하게 건축하였더라
○ 아사왕이 평안의 때 유다의 국방을 견고하게 하기 위하여 했던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선 아사는 성읍들을 건축하고 성곽과 망대와 문과 빗장을 만들었으며, 남유다의 군대를 오십팔만 명으로 육성하였습니다. 결국 국방 강화를 위한 아사의 이러한 조처는 얼마 후 구스 사람 세라가 백만대군을 이끌고 유다를 침공하였을 때 그들을 격퇴할 수 있는 힘이 되었던 것입니다.
○ 사람이 힘에 부쳐 미리 준비하지 못하므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의 최선을 다하여 재난에 대비하고 미래의 성장을 위해 힘을 쏟아야 합니다. 부를 축적하고 국방을 든든히 하는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이며 축복입니다. 하나님을 잘 믿기만 하면 하나님이 재물을 주시고 건강을 주시고 축복을 주시니 믿기만 하면 된다 말한다면 이는 자신과 하나님을 속이는 것입니다. 사람은 마땅히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자신은 좁쌀만큼 노력하고, 펀펀히 놀면서 하나님이 자신에게 셀 수 없을 정도의 축복을 주시리라 기대하는 것은 도둑심보입니다. ○ 공부를 하지 않고 좋은 성적을 내어 좋은 대학에 합격시켜 달라 기도하는 것은 도둑심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최선의 노력을 다할 수 있도록 힘을 더하시는 분이고, 열심히 수고한 댓가 이상으로 좋은 성적을 내도록 도와 주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가 최선의 노력을 다하느냐를 보여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진실된 마음입니다.
○ 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가나의 기적에서 예수님은 6개의 돌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리 말하셨습니까? 왜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이 마르다에게 무덤문에서 돌을 옮겨 놓으라 하셨겠습니까? 우리는 주님의 기뻐하시는 일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일에 참여하는 자가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 우리는 우리에게 평안이 주어졌을 때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자로서 그 축복을 헛되이 하지 말아야 하며, 다가오는 미래의 위기를 대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축복에 만족하고 “내일 일은 난 몰라요. 주님이 알아서 하시리~” 하며 현재에 먹고 마시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신자는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품고 목적을 가지고 내일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입니다. 신자는 현재의 축복을 공고히 하고, 다윗이 솔로몬의 성전건축을 준비 하듯이 ‘내일 종말이 오더라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 사람은 종종 축복과 형통함이 나로 말미암았고, 주변의 상황과 정세 혹은 운이 좋았다는 식으로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성도들로 하여금 자신을 의지하게 하고,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멀리하게 합니다. ○ 이는 마치 솔로몬이 하나님을 온전히 의뢰하는 동안에는 전대미문의 평안을 누렸으나 점차 자신의 군사력을 의지하고 이방 나라와의 정략 결혼을 통해 나라를 유지하려 하다가 결국 그의 통치 말년에 이방의 침입과 내부의 반란으로 나라가 나뉘어진 것과 같습니다.
[역대하 16:1-3] 아사 왕 제삼십육년에 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유다를 치러 올라와서 라마를 건축하여 사람을 유다 왕 아사에게 왕래하지 못하게 하려 한지라 아사가 여호와의 전 곳간과 왕궁 곳간의 은금을 내어다가 다메섹에 사는 아람 왕 벤하닷에게 보내며 이르되 내 아버지와 당신의 아버지 사이에와 같이 나와 당신 사이에 약조하자 내가 당신에게 은금을 보내노니 와서 이스라엘 왕 바아사와 세운 약조를 깨뜨려 그가 나를 떠나게 하라 하매
여호와의 전 곳간을 열어 다메섹 벤하닷에게 도움을 청한 일로 이스라엘왕 바아사의 침략을 잠시 막았으나, 그 때에 선견자 하나니가 유다 왕 아사에게 나와서그에게 이르되 [7절] 왕이 아람 왕을 의지하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하였음으로 아람 왕의 군대가 왕의 손에서 벗어났나이다. 책망을 받습니다.
아사왕은 나이가 들어 이스라엘왕과의 전쟁을 두려워하였습니다. 거대한 적 앞에서 그는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자신의 지혜와 재물을 의지하여 전쟁을 피하려 했던 것이고 그가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음으로 해서 하나님의 기쁘심을 얻지 못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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