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20:1-11 <히스기야왕의 간구>

[왕하 20:2,3]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의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더라.

◯ 히스기야는 남왕국 유다의 14대 왕입니다. 악한 왕이었던 아버지 아하스의 뒤를 이어 25살에 왕이 되었습니다. 당시는 세계 최강의 앗수르 제국에 의한 북왕국 이스라엘의 멸망을 본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 종교개혁을 단행하여 아하스왕 때 섬겼던 바알과 아세라의 모든 우상의 제단들을 찍어 버리고, 당시 모세가 광야에서 들었던 놋뱀이 남아있어 백성이 우상시 하였는데 히스기야는 이를 과감히 없애 버렸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갑자기 병이 생겼습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저에게 나아와서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처치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합니다.

◎ 이 일은 [19장]의 앗수르의 남유다왕국 제1차 침공 이전의 시기와 관련된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히스기야의 통치기간이 29년인데 그가 병에서 회복한 후 15년간 더 통치한 사실을 감안한다면, 히스기야 왕14년의 이전의 사건입니다. 그 시기에는 아직 왕궁의 창고에 많은 보물이 쌓여 있었는데, 이 곳간의 보물들은 앗수르의 1차 침공 때에, 여호와의 전 문과 모든 기둥의 금까지 벗겨 앗수르에 조공으로 바쳐야 했던 것입니다.

[열왕기하 20:5]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일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겠고

◯ [3절]에 왕이 심히 통곡하더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자녀의 눈물에 마음이 약하여지십니다. 이미 정하신 결정까지도 번복하게 하는 힘이 눈물의 기도입니다. ◯ 예수님은 눈물로 기도하셨습니다. 이른 새벽에 황량한 들판에서 기도하셨고, 산에서 밤이 맞도록 기도하셨습니다. 멸망해 가는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시며 안타까움으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셨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애절한 마음으로 통곡하며 기도하셨습니다. ◯ 지금 이 시대는 눈물의 기도가 메말랐습니다. 기도원의 유지가 어렵다 합니다. 자신을 위해서 가족과 형제 친구를 위해, 교회를 위해 눈물로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의 자세입니다.

◯ 히스시야는 그가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의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말합니다. 우리도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병들면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 저를 고쳐주시면 무엇 무엇을 하겠습니다.” 말하지만 ◯ 이는 참 가증스러운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심판대 앞에 서야 할 사람들입니다. “내 일생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켰습니다.” 후회 없는 삶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야고보서에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의인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을 진심으로 의지하는 자’입니다.

[열왕기하 20:6] 내가 네 날에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

◯ 심한 통곡의 기도에 하나님은 히스기야에게 ①“내가 네 날을 십 오년을 더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생명연장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오직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또한 히스기야에게 ②“너와 이 성을 앗수르의 손에서 구하여 주겠다.” 하는 축복까지 더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뒤에 앗수르의 십팔만 오천이라는 군대를 들에서 죽게 하셨던 것입니다.

● 우리는 여기서 히스기야의 기도응답을 고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6:8]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여기서 금하는 것은 중언부언입니다. 믿음 없는 기도, 형식적인 기도를 하지말라는 말씀이지 기도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건성으로 하는 기도를 듣지 않으십니다. 식사시간에 잠시하는 그런 기도를 가지고 기도 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잠시 눈을 감고 ‘기도 시작했습니다. 기도 끝났습니다.’ 하는 이런 기도는 진실하지 못한 기도입니다. 이런 기도는 사랑도 없고, 관심도 없는 진실성도 없는 [중언부언] 일 뿐입니다. 한 소리 또 하고 또 하는 기도는 믿음이 없는 기도입니다. 많이 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루어질 때까지 같은 소리를 반복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에 실패하는 이유는 믿음으로 기도하지 않는데 있습니다. 믿음 없이 구하고 구하다가‥‥ 좌절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 말씀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했습니다. 우리 인간은 창조주에 의하여 만들어졌으며 공급받아 살아가는 의존적인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다 알고 있는데 왜 일일이 구하여야 하는 것일까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일깨워야 할 무엇이 있는 것인가요?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것을 잘 인도하실 것이다. 열심히 일하면 된다.” 일까요?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원하는 대로 구하라’ 하시는 것입니까? 하나님께 청원하는 것은 자녀들의 특권이요 축복입니다. 믿음으로 구하세요. 하나님이 다 듣고 계십니다.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은 일도 어느날 당신 앞에 성취 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루어질 것을 믿는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늘 기대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어야 합니다.

◯ 그리고 간구하는 그 일로 주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여야 합니다. 모든 청원의 기도에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가 있어야 합니다. 나의 기도가 주의 영광을 이루어 드리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나의 결정이 있기 전에 잠시 멈추고 그 분께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26:39]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 많은 사람들은 질병이 고쳐지는 것만이 응답이고, 치유되지 않으면 아직 하나님의 응답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처럼 말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싶어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다 성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자신의 문제 해결, 경제적인 문제, 질병의 치료, 떨치지 못하는 인생의 짐에서 해방을 바라지만 거기에는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엇이라 말씀하시는지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죄는 고백하지 않고, 바른 삶에 힘쓰지 않고, 주님의 도우심만을 구합니다. ◯ 다윗은 불륜으로 얻은 아기의 목숨을 위하여 간절히 식음을 전폐하고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셨습니다. ◯ 성경에는 축복을 받고 나서 절름발이로 살아간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와 얍복강 가에서 씨름한 야곱은 다리를 평생 절어야 했습니다. ◯ (왕하13:14)에 엘리사는 노쇠하여 죽을 병에 걸렸다고 말합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쇠약해지고 눈이 어두워지고 여기저기 아파오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나를 버린 것도 나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 것도 아닙니다.

◯ 많은 사람들이 믿는 자는 이래야 한자 저래야 한다. 자신과 같아야 한다 주장하지만 어디 정설이 있습니까? 사람은 겸손해야 하고 상대방을 이해하며 긍휼히 여기며 돕는자가 되어야 합니다. 신앙은 나와 하나님과 관계입니다.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고, 풀 것은 풀고, 고칠 것은 고치는 것, 이것이 진실한 기도입니다.

◯ 그 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 왕 므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들었다가 나았다 함을 듣고 히스기야에게 글과 예물을 보냈습니다. 히스기야는 대국의 왕이 자신을 예우하며 친절을 표해 준 데 대해 크게 감격했던 모양입니다. ◯ 사절단이 왔다 간 후에 선지자 이사야가 히스기야 왕에게 나와 묻습니다.

[열왕기하 20:15] 이사야가 이르되 그들이 왕궁에서 무엇을 보았나이까 하니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내 궁에 있는 것을 그들이 다 보았나니 나의 창고에서 하나도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나이다 하더라.

◯ 병이 들어 죽을 지경에 이를 때에 하나님을 신뢰하고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던 히스기야 입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에게 덤으로 약속하신 앗수르의 침략으로부터 그 성을 지키셨습니다. 그런데 병이 낫고 그 수가 15년이 더 해지고 나라가 부강해지자 그에게 영적 교만과 태만이 찾아왔습니다. 결국 유대땅에 모든 것을 바벨론에 약탈 당하고 히스기야의 자손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게 하셨습니다. [19절]에 이런 말까지 합니다. “내가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진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요 하니라” 이는 마치 대한제국의 멸망 때에 자신과 왕족의 영화와 안일만을 구하던 고종의 말년과도 같았습니다.

[왕하 21:1] 므낫세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십 이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 오년을 치리하니라.

므낫세가 왕위에 오른 것은 그의 나이 12세였습니다. 아비 히스기야가 병이 낫고 삼년 만에 얻은 아들입니다. 남국 유다 전체 역사를 통하여 가장 악독한 왕, 극악무도한 자가 바로 므낫세입니다. 므낫세의 악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유대땅을 멸망을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히스기야의 간구를 통해 무엇을 배우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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