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15:10-27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

[사무엘상 15:1] 이제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 ‘말씀’의 정확한 번역은 목소리(voice) 즉 ‘말씀의 소리’입니다. 즉 여호와의 추상적인 말씀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말씀하시는 여호와의 목소리 그 자체에 귀를 기울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일은 늘 필요합니다.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요한복음 10:3절]에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라고 했습니다. 양이 목자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면 귀먹은 양입니다.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 ‘들으소서' 에 해당하는 ’쉐마‘ 란 단순히 청각적으로 ’듣는다'는 의미를 넘어서 '순종하다' 라는 뜻입니다. 양은 들을 줄 알아야 할 뿐 아니라 그의 음성에 순종하여 따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문제는 다 알면서 다 들으면서 거역하고 듣지 않는데 있습니다.

◉ 사도 바울은 죽음을 각오하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가이사랴에서 아가보라 하는 한 선지자가 예언하여 말하기를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 하며 가지 말 것을 권하였으나 바울은 하나님의 사역을 마치기 위하여 가야 하리라 하였습니다. 무엇이 옳은 길입니까? 하나님의 길은 죽음을 각오하고 가는 길입니다.

○ ’아말렉‘은 에서의 손자 아말렉의 후예로, 유다 광야 남부지역에서 유목 생활을 하며 다른 민족을 상대로 약탈을 일삼던 족속이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이 출애굽 직후 르비딤에 이르렀을 때 이스라엘 행진 대열의 후미를 공격함으로써 많은 타격을 주어 이스라엘의 철천지 원수가 되었습니다. 아말렉의 입장에서는 단지 출애굽하여 가나안으로 향하는 하나의 민족을 약탈한 것 뿐이었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아말렉의 행위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였던 것입니다. 아말렉은 당시 그들이 누구를 상대하고 있는지 몰랐던 것입니다. 그들은 사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던 것입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하나님은 모세에게 [25:17] ’너희는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하셨고 아말렉과 대대로 싸워서 그들을 천하에서 도말하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망각하고 댓가 없이 용서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대적하는 자들을 만대에 이르기까지 기억하시며 주어진 때가 되면 어김없이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죄를 하나 하나 일일히 기억하고 계십니다.

[사무엘상 15:3]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기다’ 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하말’인데 ‘아끼다’ ‘연민을 갖다’ 란 의미가 있습니다. '아말렉의 소유를 남겨 두지 말라' 의미는 '그들의 소유에 전혀 마음을 두지 말라.' ’조금도 귀하게 여기지 말라’ ‘남겨두지 말라 지목하신 것은 다른 용도로 사용될 수 없다.’ '하나도 살려두지 말라. 제거하라'는 것입니다. ○ 여리고 성에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아무도 모르게 금,은 외투를 장막에 숨긴 아간은 탐심의 죄로 인해 함께 불태워졌던 것입니다.

[여호수아 7:24,25]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사람과 더불어 세라의 아들 아간을 잡고 그 은과 그 외투와 그 금덩이와 그의 아들들과 그의 딸들과 그의 소들과 그의 나귀들과 그의 양들과 그의 장막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고 아골 골짜기로 가서 여호수아가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냐 여호와께서 오늘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 하니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치고 물건들도 돌로 치고 불사르고

[신명기 13:16] 16 또 그 속에서 빼앗아 차지한 물건을 다 거리에 모아 놓고 그 성읍과 그 탈취물 전부를 불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지니 그 성읍은 영구히 폐허가 되어 다시는 건축되지 아니할 것이라 17 너는 이 진멸할 물건을 조금도 네 손에 대지 말라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그의 진노를 그치시고 너를 긍휼히 여기시고 자비를 더하사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심 같이 너를 번성하게 하실 것이라.

○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자신의 백성을 대적하는 자들에 대하여 가차없이 심판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자신의 백성의 범죄를 그냥 내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리를 벌하시고 탐심에 가려 하나님을 소홀하게 한 모든 것을 미워 하시는 분이십니다. ○ 사울은 구체적인 하나님의 명령을 들었음에도 가치 없는 것은 진멸하고 좋은 것은 남기는 고의적인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이것을 고범죄라 합니다. 알면서 죄를 짓는 것이고, 하나님을 시험하는 죄입니다. ○ ‘소탐’이란 말이 있습니다. 작은 탐심이란 말입니다. 길에서 주운 것 슬쩍 인마이포켓 하는 것, 아무것도 아닌 작은 것 썩어질 것에 탐심을 갖는 것입니다. 이것이 더러운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이 사람을 부정직하게 하고, 사람의 마음을 병들게 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14:22] 너는 마땅히 매 년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말라기 3:8-9]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9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 열의 하나 1/10조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십일조는 과연 적지 않은 돈입니다. 사람들이 십일조 때문에 시험에 들고, 많은 사람이 헌금 때문에 부담되어 교회에 나오지 못합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부담스런 명령을 하신 것일까요? 부담스러운 헌금을 통하여 나의 믿음을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 현대는 자본주의 시대이고 물질이 모든 것을 대신하는 사회입니다. 나의 가장 귀한 것 중의 하나가 돈입니다. 사람들이 돈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기도 하고 돈 때문에 부부가 싸우고 헤어지기도 합니다. 그 돈을 드린다는 것은 과연 드리는 사람에게는 피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믿음은 그 지갑을 보아 측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갑을 열어 ‘하나님 저는 이 모든 것들보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증명해 드리는 것입니다. 동시에 하나님은 십일조를 행하는 자녀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말라기 3: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 사도행전 5장에는 초대 예루살렘교회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죽음에 이르게 된 사건이 나옵니다. 아나니아는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부부는 그들의 마음에 밭이 팔리면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약정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팔리고 나니 그 매각금의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는데, 성령께서 이들의 행한 일을 영으로 알려 주십니다. 사람은 아무도 모를 일이지만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하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 부부는 한날에 죽어야 했습니다. ○ 예수님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사람의 것은 사람에게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돈 때문에 하나님을 시험하고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일은 하지 말하야 합니다.

● 이미 사무엘이 사울을 떠난 것은 (13-14장)에서 블레셋과의 믹마스 전투 때로 B.C. 1048년경에의 일입니다. 그리고 아말렉과의 전쟁은 B.C. 1025년경에 벌어진 일입니다. 사무엘이 사울과 헤어진 지 약 23년 만에 만났다 추정 되어집니다. 그러면 이 기간에 하나님은 사울을 버리셨을까요? 이 긴 공백의 시간 동안에 하나님이 사울을 완전히 떠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사울은 자신의 평생에 블레셋을 물리치고 왕국을 세우는 일에 온 힘을 다하였습니다. 여전히 하나님은 사울을 기다리셨습니다. 그가 비록 23년 전에 망령된 제사를 드림으로써 대대로 왕권을 유지하지 못하리라 심판을 받아 그는 이미 많은 것을 잃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 그러나 여전히 그에게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고 마침내 아말렉과의 큰 전쟁 앞두고 다시 간절히 사울은 하나님을 찾은 것입니다. ○ 그리고 마침내 사울 왕은 위기의 순간에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찾습니다. 사무엘을 통하여 아말렉 족속과 그 속한 모든 것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사울은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마치자 사울의 마음에 다시 세상의 욕심이 찾아왔습니다. 사울왕은 아말렉왕 아각과 좋은 육축들을 살렸습니다. 사울은 그에 대하여 나름대로 변명을 하고 있습니다.

[15] 사울이 이르되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들과 소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 하는지라

○ 실제로 그는 조금도 바뀌지 않았고 마침내 길보아 산에서 블레셋에 패전하여 그의 아들들과 함께 비참한 죽음을 맞아야 했습니다. 그의 탐심의 뿌리는 이미 너무 깊었던 것입니다.

○ 하나님은 인내와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불의한 방법으로 후사를 이으려던 아브라함의 경우에는 13년의 자숙기간을 두셨습니다. 하나님의 정하신 때를 기다릴 줄 모르고 살인죄를 저지르고 달아난 모세에게는 광야 40년의 세월이 사실상 자숙 기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가룟 유다에게도 회개의 기회를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요한계시록 2:21]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 하나님의 자녀로서 시작은 잘하지만 끝까지 신앙을 잘 지키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정해진 기도의 시간, 부부간의 사랑, 가정 예배, 십일조 생활과 성수주일, 자녀를 대한 바른 교육, 그리고 죄에 대한 절제가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와 같이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람이 한번 실수하면 단칼에 무 자르듯 잘라 버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연약하여 실수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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