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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5:1-10 <주를 기쁘시게>
에베소서 5:1-10 <주를 기쁘시게>
[요일 4:8]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했습니다. [요 13:34] 주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고 권면하십니다. 왜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고 교회가 세상의 지탄을 받는 것입니까? 교회 안에 그리고 내 안에 사랑이 없는 까닭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니 가짜교인이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 향기로운 제물은 구약시대에 인간의 죄를 대신해 죽임을 당해 제단 위에 드려지던 양과 송아지를 나타냅니다. 불에 타는 짐승의 향기가 좋아서 향기로운 제물이라 했겠습니까? 예수님이 성육신 하셔서 십자가상에서 자신을 온전히 드림으로써 범죄한 인간의 죄를 씻어 주시니 향기로운 제물인 것입니다.
[에베소서 5:3]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 그리스도의 사랑을 입은 자녀가 하나님을 본받기 위해 행해야 할 요소로 세가지로 제시하고 있는데 그 첫 번째로 버려야 할 것이 ‘음행’입니다. ‘음행’에 해당하는 ‘포르네이아’라는 말은 현대 사회에서 말하는 ‘포르노(porno)’입니다. 그런데 이는 고대 헬라에서는 부도덕한 성행위로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떠나서 이루어지는 모든 성관계를 말합니다. 당시 헬라 세계는 공창제도가 있어 아프로디테(Aphrodite) 여신전에서 문란한 성행위가 공공연하게 벌어지는 사회였습니다. 그런데 에베소교회에는 이방인들이 많았던 관계로 그들이 과거에 하던 그러한 행위로 돌아갈 위험성이 컸던 것입니다. 남들이 다 그러면 그것이 정상인 줄아는 것이 인간입니다.
◉ 요즈음은 동성애가 만연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군대에서도 있다 합니다. 혹자는 이것이 과거에도 있던 일로 인간의 본성이다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유전적으로 남성과 여성이 구분되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분명 과거에는 %가 그리 높지 않았던 일입니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하냐구요? 소수이기는 하나 동성애를 행하던 사람이 이성과 결혼 후에 동성애를 그만 두고 정상적인 생활을 한다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동성애를 죄악으로 깨닫고 기도하면서 자기 성을 찾았다 말하는 사람의 간증을 듣기도 했습니다. 이로보건데 동성애는 학습에 의해 얼마든지 늘어날 수 있는 현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유전적인 경우는 극히 적은 것입니다. 성소수자를 인정하고 보호하는 일도 필요하지만,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연의 모습을 지키고 가정제도를 이루어 어린아이가 정상적인 아버지와 어머니 아래서 사랑받으며 자라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어떤이는 “선사시대 인류가 수혈생활할 때는 모계사회였다. 가정제도가 존재하지 않았다. 사회는 변천하는 것이다. 인간의 규범은 시대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는 것이고 죄란 존재하지 않는다.” 말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모르는 무신론 진화론자들이 말하는 것이고, 하나님은 오늘의 인류가 따라야 할 사회제도와 법규를 주셨습니다.
○ 두 번째로 버려야 할 것으로 ‘온갖 더러운 것’이란 앞서 나온 음란한 욕구들 뿐만 아니라 나아가 잘못된 이단들 사교나 정치적 이념들 부정한 생각들을 의미합니다. 얼마나 많은 정치적 이념과 주장들이 우리 기독교인들을 갈라놓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열혈당 출신의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도 칼을 품고 다니던 사람이었다 여겨집니다. 그런데 제자 가운데는 열혈당원이 원수로 여기는 세리 마태와 같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요즈음의 신자들은 왜 나누어지는 것입니까? 그들 가운데 예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에 인간의 이념과 사상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과 기독교인이 서로 용납하지 못하면서 어찌 세상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 세 번째 버려야 항목으로 제시된 것이 ‘탐욕’입니다. ‘탐욕’이란 자신에게 필요 이상으로 소유하거나 누리기를 원하는 욕구입니다. [눅12:16]에 보면 부자는 곳간을 더 짓고 곳간에 쌓아두고 쾌락을 누리기 원하는 삶을 살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하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바로 탐욕입니다.
◉ 2002년에 장상 총리 후보자가 아파트 매입을 위해 위장전입한 사실이 밝혀져 후보를 사퇴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수 차례의 위장전입을 하고도 아무렇지 않게 자리에 앉아있는 게 현실입니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면서도 부끄러움도 없고 “그것도 죄인가?”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은행이자보다 월세를 받으면서 사는 것이 수입이 좋으니 집을 몇 채씩 가지고 놀면서 사는 것을 축복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요한은 무리가 묻기를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할 때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였습니다. 이 시대에 기독교인들 만이라도 부동산 투기를 하지 않고 저렴하게 전세를 둔다면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두채 집을 가질 일도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져서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찾을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집세를 내리지 못하는 것일까요? 사람의 욕심입니다. 사람의 욕심은 아무리 채워도 다 채워지지 않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4]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본절의 세가지 항목의 특징은 모두 말로 짓는 죄라는 것입니다. ‘아이스크론’ 즉 ‘누추함’ 이란 말은 사람을 부끄럽게 만드는 말, 사람을 무시하는 말, 파렴치한 말들을 의미합니다. ○ ‘어리석은 말’은 헬라어 ‘모로스’입니다. ‘로고스’는 ‘말씀’이지요? 그런데 여기 ‘모로스’는 ‘어리석은 말’입니다. 지능이 낮은 사람이 사용하는 말입니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말, 사실을 왜곡하는 말 무익한 말들, 본질에서 벗어난 말, 허황된 말이 그것입니다.
◉ 왜 기독교인들이 외계인을 말합니까? 온갖 해석이 분분한 말로 우리를 미혹하려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에 나온 말 외에는 너무 몰두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했더라면 성경에 쓰였을 것입니다. ○ 마지막으로 ‘희롱의 말’은 남을 비하하는 말이나 흠을 잡아 흉보는 말을 가리킵니다. ‘무례한 말’ ‘성적으로 상스런 농담'도 품위 있는 말이 아닙니다. 야고보서에서 보면 사람이 아무리 경건을 힘쓰고 마음에 의도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말에 실수가 있다면 그의 경건은 무익한 것입니다. 사람이 그의 말로써 평가를 받습니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을 보여주는 것이며 말로써 사람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 감사하는 말를 하라 합니다. 이 말 속에는 우선 ’생활 속에서‘ 라는 의미가 있고 또 감사는 감사의 조건은 찾아야 하다는 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을 향하여 만이 아닌 평상시 사람들에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어떤 사람은 수년 전에 다 지나서 잊혀진 일인데도 감사하여 찾아와 감사하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친구가 있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아무런 자격이 없고 한 일이 없는데 이런 사람을 찾아오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욥기 10:2] 생명과 은혜를 내게 주시고 권고하심으로 내 영을 지키셨나이다.
[시편 64:10] 의인은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그에게 피하리니 마음이 정직 자는 다 자랑하리로다.
○ 욥은 '하나님은 나에게 생명을 주셔서 아직도 살아 있다 모든 것이 없어졌을지라도 아직 생명이 남아있음을 감사한다' 했습니다. 욥은 고난의 순간에도 하나님이 자신에게 남겨주신 생명과 은혜를 감사하고 있습니다.
○ 다윗은 인생의 고난의 순간에도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멈추지 않았고, 하나님께 감사하기를 중단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 날 환난의 때에 자신을 지키신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앞으로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지키실 하나님을 기억하여 감사하였습니다. 감사는 믿음의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눈 앞에 것만 바라보고 감사한다면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5]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여기서 [3절]에 말한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를 다시 언급하면서 곧 우상숭배자라 말합니다. 이는 우상숭배와 같은 범죄입니다. 이는 사람의 관점에서는 음행은 음행이고 더러운 사상과 이념은 세상의 이념이고 탐욕은 물질적인 탐욕이라 생각할지 모르나 하나님 편에서는 모두 하나님을 버리고 떠난 우상숭배이고 간음죄입니다.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여 차지하고 있는 모든 것은 간음이며 우상숭배의 죄입니다.
[에베소서 5:8-10]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주 안에 있는 자는 빛이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빛으로 살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이 말씀은 명령입니다. 그렇게 행하므로 믿음의 소유자가 되고 하나님을 뵈옵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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