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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2:4-10 <보배로운 산 돌>
베드로전서 2:4-10 <보배로운 산 돌>
예수님은 메시야로서 이스라엘 땅에 오셨지만 유대인들에게 메시야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처형되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 사도는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라 말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사람들에게서는 버림받은 하나님께서 그를 선택하시어 부활하심으로 인해 ‘보배로운 산 돌’이 되셨습니다.
[베드로전서 2: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그러면 왜 특별히 ‘보배롭다’ 했고, 하필이면 ‘산 돌’이라 했을까요? 누구을 위한 보배로운 것인가 하면 바로 우리들 자신을 위한 보배이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돌의 ‘너무도 귀중한 존재의 가치’ 를 알지못합니다. ○ 주님을 보석이라 말하지 않고 ‘산 돌’이라 했습니다. 왜냐하면 겉으로 보기에는 볼품이 없어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의 생명에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산 돌’ 은 헬라어로 ‘리도이 존테스’ 인데, ‘리도이’ 는 잘 쪼개져서 다듬어진 돌을 의미하고, ‘존테스’ 는 ‘살아 있는’ ‘생기가 넘치는’ 이란 의미를 가집니다.
○ ‘보배롭고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란 무슨 의미일까요? 이는 세상이 무엇이라 말하든 생명을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찾으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이 세상이 어떻게 평하든 상관없이 믿음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은 세상의 그 어떤 사람을 보아도 부끄럽지 않습니다. 당당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아담은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열매를 먹은 이후에 죄인이 되어 사람이 두렵고 부끄러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베드로전서 2: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 여기 ‘산 돌’ 은 복수형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성도를 향한 말씀입니다. 너희도 살아 생기 넘치는 다듬은 돌이 되라는 것입니다. ‘산 돌’이 되라는 것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그런 죽은 돌이 아닙니다. ○ 쓸모있는 돌, 보배로운 돌이 되려면 돌은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닌 ‘신령한 집’의 한 부분이 되어야 합니다. ○ 베드로는 생명을 얻은 성도는 그 상태로 만족하지 말고 ‘신령한 집’ 으로 세워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 여기 ‘신령한 집’ 은 단수형입니다. 이를 영적으로 말하면 보편적인 교회, 즉 온세계의 교회가 하나님 안에서 한 교회입니다. 그리고 지상의 관점에서 말하면 ‘신령한 집’ 이란 눈에 보이는 성전 곧 지역교회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는 모든 성도 각 사람은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연합을 이루어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많은 신자들에게 교회란 '나는 교회 안에 무엇인가' 가 아닌 '교회는 나를 위한 무엇인가' 인 듯합니다.
◉ 저는 최근에 어려서부터 수십년을 몸 담은 교회를 옮겨다니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교회를 떠나 자신에게 도움을 주는 교회, 잘해주는 교회를 찾아다닙니다. 그러다가 일하는 직장이 멀어지면 교회를 옮기고, 이사해서 교회가 멀어지면 교회를 옮기고, 수천 수백명이 모이는 큰 교회를 찾아 예배를 드립니다. 큰 교회는 예배당 바닥과 천정이 반들거리고 웅장합니다. 멋진 성가대가 있고, 예배시간이 정확하고 엄숙하게 지켜집니다. 예배를 드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멋진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그 사람에게 정작 교회에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 가운데 껴서 빈자리를 찾아 예배드리고 예배를 마치자 마자 집으로 혹은 세상의 일로 교회를 떠나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익명의 그리스도인‘ 이라 말합니다. ○ 어떤 이는 자신의 편리함을 위해 인터넷이나 방송을 통해 예배하는 것으로 신앙의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철저히 배제하는 신앙 생활에 만족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어떤 짐도 부담도 책임도 지고 싶지 않고, 간섭도 없이 나홀로 교인이 되고 싶어합니다. ○ 이런 사람에게는 진정한 공동체로서의 교회는 없는 것입니다. 성도가 함께 신령한 집으로 세워져가려면, 교회에 등록을 했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요. 나홀로 예배드렸다고 얻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한 믿음으로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교제하는 삶을 살 때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연합을 이루는 신령한 집을 세우는 것입니다.
○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신령한 집’에서 거룩한 제사를 드릴 제사장이 되라. 말합니다. 기독교와 유대인들과 가톨릭의 가장 큰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만인 제사장(萬人祭司長)’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유대교이든 가톨릭이든 죄인된 인간은 하나님 앞께 나아가 자신의 죄를 사해 달라고 직접 요구할 수 없습니다. 사제를 통한 간접적인 만남만을 가질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다릅니다. 구약 시대 성도들은 오직 레위지파에서 세워진 제사장의 중보를 통하여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으나, 예수 그리스도 이 후로 모든 자가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① 제사장은 백성의 죄를 사해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백성은 직접 하나님을 뵈올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갈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그러나 주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대신 죄의 십자가를 지셨으니 예수의 이름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존전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죄 뿐아닌, 다른 이들을 위해 하나님께 나아가 죄를 사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은 죽어가는 순간에 말하기를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하고 자니라 했습니다. [요한복음 20:23] 에서는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② 제사장은 백성을 대신하여 백성의 요구를 하나님 앞에 구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을 위하여 세상을 대신하여 기도를 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을 구원하는 교량이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무엇으로 세상의 빛이 되고 세상의 소금이 되겠습니까? 가진 것도 힘도 없고 지혜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세상과 똑같이 더럽고 부끄러운 자들입니다. ○ 그러나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힘입어 직접 하나님 앞에 은혜를 구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 과거의 제사장이 목사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오늘날의 제사장은 바로 나입니다.
[히브리서 4: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마태복음 18: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③ 제사장은 백성을 가르치는 나라의 선생이었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의 국민의 평균학력이 대학이라는 누군가의 말을 듣고 웃었습니다. 대한민국에 대학을 나오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는데 그 판단하고 행하는 것을 보면 어린아이보다 못하고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참으로 예수님을 아는 것이 대학을 나온 사람보다 낫더라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로마서 12:1]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 제사장은 제사를 드리는 자입니다. 우리 각자는 ‘신령한 집에서’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야 합니다. ‘신령한 제사’란 ‘영적인 제사’ 와도 같습니다. 성령의 감동하심을 따라 드리는 신약 시대의 예배를 의미합니다. ○ 일주일에 하루 주일에 교회에 가서 입으로 드리는 예배만으로 거룩한 산 제사, 영적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나의 전 삶과 온 몸으로 드리는 제사가 될 때 진정한 산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날마다의 말씀과 기도 그리고 실천이 따라야 합니다.
○ 사도 바울은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라 했습니다. 날이면 날마다 핸드폰을 뒤지는 사람에게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산 제사’를 말하면 웃을 것입니다. ‘거룩한 산 제사’ 는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하는 삶입니다. [2절]에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했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일입니다.
[베드로전서 2:6]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요한계시록 5:10]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 주님은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셨다 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인생의 집을 짓는 건축자와 같습니다. 모든 건축행위의 출발은 모퉁잇돌에서 시작합니다. 주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항로를 인도하는 선장이시오.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영광의 집의 기초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 예수님은 이 땅에서 사람들에게 철저히 외면 당하시고, 범죄자로 여김을 받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평가는 달랐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버리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주 예수님을 ‘택하셨고’ ‘보배롭게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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