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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하 20:1-12 <오직 주만 바라>
역대하 20:1-12 <오직 주만 바라>
남유다 제4대 왕 여호사밧의 행적을 다룬 17-20장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먼저 17장은 국방을 강화하고 율법 교육을 시행하는 등 여호사밧이 믿음의 선정으로 여호와의 축복을 받아 남유다가 솔로몬 이후 최전성기를 구가하였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20장]에는 1-30절까지 남유다가 당시 요단강 동편 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모압 연합군에게 침략 당하는 기사가 나옵니다. 이는 [18장]에서 남유다의 여호사밧왕이 북이스라엘의 아합왕과 동맹하여 북쪽의 아람 나라 길르앗 라못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을 일으켰는데 그런데 오히려 이 전쟁에서 북이스라엘의 아합왕은 죽임을 당하고 여호사밧왕은 구사일생 목숨을 구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남유다가 전쟁의 패배로 국력이 약화된 틈을 타서 요단강 동쪽의 모압과 암몬이 다윗 통치 이후 위축되었던 자신들의 세력 회복을 위하여 남유다 본토를 침략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전쟁의 발발은 국가간의 힘의 대립과는 별개로 명백히 본서 [19:2]에 말한 선지자 예후의 예언의 성취로 하나님의 징계였던 것입니다.
[역대하 19:2] 하나니의 아들 선견자 예후가 나가서 여호사밧 왕을 맞아 이르되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
[20:1]에 이 전쟁의 시점을 ‘그 후에’ 로 표현하고 있는 것도 징계임을 암시합니다.
[역대하 20:1] 그 후에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들이 마온 사람들과 함께 와서 여호사밧을 치고자 한지라
주변국이 모여 연합국의 형태로 침략해 왔는데 전쟁을 주동한 국가는 모압입니다. 요단강 동쪽의 암몬이 함께 하였고, '마온'은 아람어 '마안'인데 페트라 남서쪽 약 12마일 지점입니다. [22절]에서는 그들을 '세일산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에돔의 국경부근에 거하던 사람들입니다. [2절] "하사손다말 곧 엔게디에 있나이다." 이 말은 엔게디는 사해의 서안으로 모압, 암몬, 마온 연합군이 에돔 땅으로부터 이미 바다를 건넜음을 말합니다. 패전 이후에 여호사밧왕이 전열을 정비하기도 전에 선지자 예후의 예언 그대로 이전에는 조공을 받치던 나라들이 반역하여 쳐들어 온 것입니다. 전세가 아주 급박하였습니다.
○ 여호사밧은 단지 두려움에 사로잡혔지만 다가오는 재난을 앉아서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즉각적인 조처를 취하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조치가 일반 상식을 초월합니다. 그의 조치는 군사적 대응이나 정치적 타협과 같은 인간의 지혜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행한 것은 순수한 신앙적 조치였습니다.
[역대하 20:3]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하매
○ 국가적 위기에 처하여 여호사밧은 전국에 금식을 선포하였습니다. 여호사밧 왕은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여호사밧의 두려움은 동방의 왕들의 침략만은 아니었습니다. 여호사밧왕이 두려워한 것은 모압 연합군의 침공을 불러온 것이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라는 것입니다. 이 전쟁이 자신의 죄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라면 그 결과는 너무나 뻔한 것입니다.
● 사람이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면 두려움이 찾아오고, 부끄럽고, 자신감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을 알게하는 열매를 따먹고 무화과 잎으로 옷을 만들어 입고 숲속에 숨은 것과 같습니다.
○ 일찍이 여호사밧은 대대적인 종교개혁을 행하고, 당대의 율법교사들을 각지에 파견하여 백성을 가르쳤습니다. 이는 보기 드믄 선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한 때의 선행이 그를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 앞에 10가지를 잘하다가도 한 가지 죄를 저지르면 이 때문에 사람이 시험에 빠지고 약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는 반드시 하나님의 징계를 부른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 이는 다윗의 일생을 통하여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일생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높일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다윗일지라도 방심하여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하였을 때는 징계를 피하지 못하였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계시록 3:19] "무룻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역대하 20:6] 가로되 우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하늘에서 하나님이 아니시니이까 이방 사람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지 아니하시나이까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능히 막을 사람이 없나이다.
○ [6절]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의지하여 도움을 요청하는 여호사밧의 기도입니다. 여호사밧은 구체적인 간구에 앞서 기도의 대상을 부릅니다.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여' 기도의 대상은 매우 중요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기도의 대상은 사람이 만들어 낸 것일 뿐 본래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있지도 않은 대상에게 드리는 그들의 기도는 허무하고 무익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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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 앞에, #장승 앞에, #나무 앞에 절하는 사람들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에 맨 먼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부르라 하였습니다.우리는 내가 믿는 하나님을 세상의 수많은 거짓 신과 동일하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지금 하늘에 계신 전능하신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 여호사밧왕은 세계 열방이 하나님께 속했음을 믿었고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하며 세상의 역사를 바꾸실 수 있는 분임을 고백합니다. 여호사밧은 금식을 선포하므로 그가 믿는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 회복을 바란 것이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이 그에게서 멀어지지 않기를 바란 것입니다. 여호사밧이 금식령을 선포한 것은 강대한 적 앞에서 지켜달라 도움을 구하는 것 만이 아닌, 죄의 자복이며 하나님의 징계 가운데 긍휼과 자비를 구한 것입니다.
○ 레위인 아하시엘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역대하 20:15] 야하시엘이 이르되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과 여호사밧 왕이여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 야하시엘은 백성과 왕을 향하여 ‘전쟁에 큰 군대를 양성하고 많은 군비를 갖추었다고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했습니다. 선지자는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 했습니다. 여호사밧은 선지자와 레위인 제사장들의 말을 헛되이 듣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듣기 싫은 소리를 들어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드렸습니다. 그리하여 여호사밧왕은 하나님 앞에 자신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있음을, 전쟁이 하나님께 속한 것을 믿고 있음을 증명해야 했습니다.
[역대하 20:17]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대열을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내일 그들을 맞서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매 [역대하 20:19] 그핫 자손과 고라 자손에게 속한 레위 사람들은 서서 심히 큰 소리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니라
○ 야하시엘의 말대로 여호사밧은 모압 암몬 마온 연합군 앞에서 대열만을 갖추고, 마주 나가며, 레위인으로 찬양대를 구성하여 심히 큰 소리로 찬양합니다. 이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대처입니다. 지금 이런식으로 전쟁에 나서는 장군이 있다면 참 황당한 정신 나간 짓이라 할 것입니다.
○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라 했습니다. 그의 말대로 남유다는 별로 싸우지도 않았습니다. 저들은 저들끼리 서로 싸우다가 진멸하기까지 패하였던 것입니다.
○ 이 사건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은 여호사밧의 믿음을 시험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물리친 이 사건은 어떤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을 믿는 신앙적 자세를 견지하라는 말씀입니다. 장차 더 큰 위기가 다가온다 하더라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 그러나 [20장] 끝 부분에 여호사밧 말년의 남북 왕국의 해상 무역 동맹 실패(35~37절)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아합과 동맹으로 죽음의 위기를 격었던 여호사밧이 또다시 실수를 또 다시 되풀이한 여호사밧의 인본주의적이고 불신앙적인 측면을 보여줍니다.
여호사밧왕은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왕과 함께 에시온게벨에서 배를 만들어 오빌의 금을 가져오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를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셨고, 배들은 모두 파선 되었습니다. 여호사밧왕은 아합왕과 같은 사악한 왕과의 군사적인 동맹을 미워하신다고 생각하였지만 경제적인 협력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 인간은 늘 실수가 많고 허물이 많은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이런 위기를 통하여 더 큰 축복의 기회가 되게 하시며 우리의 믿음을 견고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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