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5:1-10   <참 포도나무>

1절을 보면 주님은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포도나무에, 하나님을 포도원을 가꾸는 농부에 비유하셨습니다. 그런데 포도나무는 구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합니다. (사 5:1,2) 구약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포도원에 심고 가꾸신 포도나무와 같았습니다. 하지만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기대와는 달리 좋은 포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불량한 ‘들포도나무'로 표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처음 이스라엘을 택하실 때, 모든 세상 민족 가운데 가장 볼품없는 민족의 하나였습니다.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는 민족으로 특별한 문명이나 학문도 갖지 못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오직 아브라함과 맺으신 당신의 약속에 근거하여 그들에게서 풍성한 열매를 기대하시고 그들을 택하사 광야에서 기적을 베푸시고, 연단하시며 그들에게 다른 민족이 갖지 못한 율법을 주시고 선지자들을 보내 주셨으며 시시때때로 각양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들은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하나님이 싫어하서는 우상승배, 외식, 형식주의와 같은 들포도만을 맺은 것입니다.

○ 그래서 신약에 이르러 농부이신 하나님은 그들을 포도원에서 제하여 버리시고 새로운 포도나무를 심으셨으니 그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 오늘 예수께서도 자신을 ’참 포도나무'에 비유하심으로써, 온전한 순종과 헌신을 드려 포도원의 주인 되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좋은 열매를 맺으려 하신다는 것입니다. ○ 그리고 이제 더 나아가 가지인 자신의 백성을 부르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 성도를 ‘포도나무의 가지’ 로 비유하시어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루므로 비로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좋은 포도나무 백성이 되어야 하리라는 것입니다.

○ 농부가 포도나무를 심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좋은 재목을 얻기 위함입니까? 아니면 조경수로 사용하기 위함입니까? 아닙니다. 포도나무는 좋은 재목이나 조경수로는 사용할 수 없는 지극히 볼품 없는 나무입니다. 그러나 그 나무가 만들어 내는 열매 하나 만큼은 기가 막힙니다. 포도열매는 사람들에게 농부에게 큰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이것이 농부가 포도나무를 심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농부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포도나무를 가차없이 제거해 버립니다.

○ 예수님의 외모는 실로 초라하여 진정 볼품없는 포도나무의 모습과도 같았습니다. 그는 가진 것도 없었고 학문적 배경도 없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예언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53: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앙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홈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재미 있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의 저자 존 브라이트는 이사야의 이 예언의 대상이 이스라엘 국가를 의미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도 구약의 포도나무를 알고 계셨던 듯 싶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참 포도나무’라 말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이 예언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가 당한 고난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2절]에 보면 주님은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가지'는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5절]에 주님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성도라고 불리는 사람들 중에서 하나님께 버림 받는 자들도 있을 것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예수를 ’주' 라고 부른다고 하여 다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무릇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맺지 못하면 주님으로부터 잘려나가는 심판을 당하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영원한 멸망을 의미합니다.

○ 가지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그저 줄기에 붙어 있는 것으로 자기 할 일을 다한 것이 아닙니다. 가지는 열매를 맺어야 그 역할을 다하는 것입니다.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는 줄기에 붙어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붙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지는 열매를 맺을 때 비로소 줄기에 붙어 있음을 알 수 있는 있는 것입니다. 사실 가지가 열매를 맺지 아니하고 줄기에 붙어 있기만 하면 오히려 열매 맺는 다른 가지에 피해만 입힐 뿐입니다. 그래서 농부는 열매 맺는 가지로 열매를 더 맺게 하려 열매 맺지 않는 가지를 가차없이 제거해 버리는 것입니다.

○ 그렇다고 이것이 견인(堅忍) 교리를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견인교리란 하나님이 한번 택하여 구원한 사람을 어떤 경우에도 다시 버리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주의 해야 할 것은 성도인 체하면서 성도로서의 역할을 하지 않는 거짓 성도를 하나님께서 버리신다는 것입니다. 참 믿음은 그 열매로 알 수 있습니다.

○ 가룟 유다는 12제자 중에 속한 자였는데 믿음을 버리고 지옥의 길을 갔는데… ‘믿음은 잃을 수 있는 것이냐’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표면적 유대인이 있고 이면적 유대인이 있으며, 참 믿음이 있고 거짓 믿음이 있습니다. 다만 사람이 이를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자신이 믿음이 있는 줄 알았는데 ”참 자신의 믿음이 형편 없구나“ 하고 깨닫는 때도 있습니다. 결국 참 믿음과 거짓 믿음의 판정은 그 열매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 믿음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아름다운 신앙의 열매들을 맺으므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신앙의 열매들은 과연 무엇입니까? ① 먼저 회개의 열매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3: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 신자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죄인, 부족한 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지, 얼마나 이웃에 무관심하고 자신만을 생각하는 존재인지, 얼마나 주의 말씀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며 살아가는지를 알고 회개하여 돌이켜야 합니다. ②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새로운 품성을 가진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인내와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입니다(갈 5:22,23). 기쁨이 없는 삶에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마음에 평화가 없는 자가 마음에 평강이 임해야 합니다. 자비와 긍휼이 없는 자가 긍휼이 넘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③ 그리고 마지막으로 선교와 봉사의 열매가 있습니다. 아무도 가지않는 산길의 꽃 한송이도 꿀벌을 부르고 향기를 뿜어 냅니다. 묵묵히 수고하는 농부의 땀이 이 땅에 생명의 알곡을 생산하며 사람들에게 평화를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웃을 위한 봉사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의 이웃과 자녀들을 진리로 이끌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아 우리의 삶 속에 과연 이런 신앙의 열매들이 있는지, 아니면 잎만 무성한 저주 받은 무화과나무는 아닌지 살펴야 합니다.

[요한복음 15:4,5]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말씀은 문자 그대로 의식주의 문제나 세상의 문물을 즐기며 만들어 가는 등, 세상에 살아가지 못한다는 말씀이 아니지요. 그 진정한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빛과 생명, 진리와 사랑의 진정한 열매를 맺을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 저는 어떤 목회자가 “소수자를 위한 차별금지법을 기독교인이 왜 막느냐” 하는 소리를 듣고 경악한 적이 있습니다. 동성애자가 저들끼리 결혼을 하든, 저들 하고 싶은대로 사는데 누가 뭐랍니까? 문제는 차별금지법이 동성애자가 목회자가 되고 동성애자가 교회당에서 결혼식하는 것을 막아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교회에서 성경에 반한다고 동성애를 금하는 설교를 하지 말라는 반기독교법인 것입니다.

○ 정경심교수가 자기 딸의 스팩을 조작하여 대학에 입학하여 세상의 분노를 일으켰는데 조국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는 여론이 죄를 만든 것이다. 검찰의 과잉 수사다” 말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어떤 일반인은 “그런 일은 학부모라면 다 하는 일 아니냐?”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지금 세상은 죄를 죄라고 말하지 못하게 하는 세상입니다. 지금 세상은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하는 세상입니다. 옳고 그름의 기준도 없는 세상입니다. 이는 사탄 마귀가 세상을 어둠에 빠뜨린 것입니다.

[6]에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그리스도 안에 거하지 않는 세상은 결국 그 자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이룬 모든 것들 역시 불에 타 사라질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사람들의 폐부를 살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요한복음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그 조건이 “너희가 내 안에 거하면”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입니다. 실제로 이 두 말은 한가지입니다. 우리가 주의 말씀을 붙들고 놓지 말아야 합니다. ○ 이는 주의 말씀을 늘 가까이 읽고 삶 속에서 주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주께서 지금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주의 뜻이 무엇인가?” 귀를 기울이는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따라 지키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가지와 줄기가 연합하여 한 그루의 포도나무가 완성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기뻐하시며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신다 했습니다. 주님과의 소통이 이루어지고 주님과 일체된 삶을 살게 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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