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8:1-8    <불의한 재판장>

[1절]에 보면 주님께서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유로 가르치셨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낙망하다’ 이 말은 ‘모든 기력이 다하여 피곤하고 지친 상태’ 를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성도들은 왜 낙망하게 되는 것입니까? ◯ 사람은 자기가 원하고 도모하는 일에 구하여도 실패했을 때 낙망하게 됩니다.

[누가복음 11:5-8]에는 ‘한 밤중에 찾아와 강청하는 친구의 비유’ 가 있습니다.

이 비유는 친구의 간청을 들은 친구가 떡을 내어주는 데 마지못해서 들어주었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비유를 잘못 읽으면 마치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 응답해 주시는데 매우 인색한 하나님으로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비유가 말하는 바는 [기도 응답의 확실성] 입니다. 친구라면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으니” 밤중에 일어나는 것이 싫어서 거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 벗이 아닐지라도 강청함을 인하여 요구대로 주었으리라 하셨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하나님은 친구보다도 육신의 아버지보다도 나의 사정 형편을 더 잘 아시고 좋은 것으로 채우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누가복음 18:2-8]은 ‘불의한 재판장’ 비유입니다. 여기 등장하는 재판장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자였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주 세속적인 마음을 지닌 자로서 뇌물을 받고 악인들을 두둔해 주는 그런 재판관과 다르지 않음을 말합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 라는 말까지 있습니다. 또 사람을 무시한다는 것은 사람을 친절과 호의로 대하지 않고 교만한 마음과 권위의식을 갖고 사람을 대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재판장에게 한 과부가 공정한 재판을 하여 자기의 원한을 풀어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입니다. 아마 과부는 자기에게 해를 입힌 악한 자에게 벌을 줄 것을 요구했거나, 악한 자에게 탈취 당한 재산이나 권리를 되찾아 줄 것을 요구했을 것입니다. 그녀는 달리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누가복음 18:4,5]은 불의한 재판장이 과부의 청원을 들어주었다는 내용입니다. 그 재판장은 과부가 매일 찾아와 청원하는 일을 괴롭게 여겼습니다. 결국 이 재판장은 과부의 청원을 들어줍니다. 이 불의한 재판장은 그 과부가 불쌍해서 도와준 것이 아니라 자기가 괴로움을 당하기 싫어서 도와준 것입니다. ◯ 그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불의한 재판장입니다. 불의한 재판장도 과부의 열성과 집념에 그녀의 청을 들어주었습니다. 하물며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들어주시지 않겠습니까.

[누가복음 18:6,7]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 하나님은 자녀의 기도를 외면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68:5] 그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 아랍 소년이었던 '무사 알라미'는 케임브리지에서 교육을 받고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갔습니다. 마침 그는 정치적 혼란으로 모든 가진 것을 잃었습니다. 그는 요르단을 넘어 여리고 변방으로 갔습니다. 요르단 계곡 양쪽에는 황량하여 메마른 사막이 끝도 없이 펼쳐졌습니다. 이 뜨거운 사막에서는 몇몇 오아시스를 제외하면 아무 것도 자랄 수 없었습니다. 비참한 삶만이 무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무사 알라미는 부족의 어른들께 물었습니다. "지하수를 파면 어떨까요?" 그 말을 들은 모든 사람들은 오랫동안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 이 뜨거운 사막에서 지하수를 찾으려하다니. 족장들은 한결같이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정부의 의견도 그랬고, 해외의 과학자들도 모두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무사는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는 홀로 사막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얼마후 여리고 난민 수용소에서 가난에 찌든 몇 명의 피난민들이 나와 같이 일을 했습니다. 샘을 파는 장비가 있느냐구요? 그건 당치도 않은 말입니다. 그들이 가진 것이라고는 겨우 곡괭이와 삽 몇자루 뿐이었습니다.

이 불굴의 넝마주의들이 날이 바뀌고 달이 바뀌어도 계속 파는 동안 그들을 바라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천천히, 태초 이래로 한 번도 물을 찾기 위해 파본 적이 없는 그 사막을 깊이 깊이 파들어 갔습니다. 사람들은 조롱했으나 [마태복음 28:18] “땅과 하늘의 권세를 지니신 주님”을 의지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6개월을 파들어 가던 어느 날 드디어 모래는 젖기 시작했고, 마침내 생수가 뿜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에 둘러섰던 아랍 사람들 가운데 한사람도 웃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환호성을 터뜨린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기쁨에 넘쳐서 울고 있었습니다. 고대의 사막에서 물이 발견된 것입니다! 근처 마을의 족장인 늙은 노인 한분이 이 놀라운 소식을 듣고 몸소 달려왔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사, 정말 물을 찾았나? 어디 좀 보여주게. 맛좀 보세." "정말 시원하고 맛있군. 하나님 감사합니다." 여러 해가 지난 후 무사 알라미는 길이 3마일에 폭 2마일이 되는 농장에 15개의 샘으로 물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그의 농장에는 갖가지 채소와 바나나와 무화과, 그리고 감귤등이 재배되고 있으며, 그가 지은 학교에서는 학생들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람은 곧 잘 현실을 보고 좌절합니다. 불가능에 도전하라.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 얼마전 국립박물관에 간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신석기 시대의 배가 전시된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저는 있었으니 찾았겠지 하며 그것을 그리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한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2003년 9월 12일. 태풍 ‘매미’가 한반도를 강타했습니다. 남부지역을 지나, 7시간만에 동해로 빠져나간 태풍의 위력은 대단했습니다. 낙동강에서 4km 떨어진, 경남 창녕군 비봉리 배수장. 태풍 때문에 이곳도 침수되었습니다. 그런데 물이 빠지고 나서 그곳에서 귀중한 신석기시대의 유물을 발굴하게 됩니다. 그때까지도 신석기 유적은 대개 바닷가에 있어 제대로 보존된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원형이 잘 보존된 도토리, 가래, 솔방울, 조개무지와 빗살무늬 토기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대한민국에서 발견하지 못한 것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일본에서도 발굴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 나오지 않은 신석기시대의 배였습니다. 배라는 것은 나무로 만든 것이라 저습지 아니면 발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국립진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 임학종씨는 배를 찾고 싶었습니다. 단원들을 격려하며 계속 찾았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고대하던 성과는 없었고 몇 달이 지나도 한여름에 물구덩이 안에서 발굴단원은 지치고 힘들게 수고하였지만 배를 찾을 가능성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시원한 포크레인에서 쉬는 기사를 보며 기사를 부러워하는 단원들에게 임실장은 배를 찾는 사람에게 포크레인을 사주겠다. 약속까지 하며 찾고 싶었습니다. 어느날 임학종씨는 꿈에 선명하게 십자가가 보이고 그 위에 끈이 보였습니다. 끈을 따라 갔더니 배를 찾았습니다. 꿈이었습니다. 그날 오후에 발굴단원 중에 한 사람이 집에 일이 생겨 집에 다녀와야 했고 임학종씨가 그 자리에 투입되어 작업하는 과정에서 길이 3m 되는 통나무로 된 기원전 6000년경의 신석기 배를 찾은 것입니다. 그 신석기시대의 배를 찾는 영광을 자신이 갖게 된 것입니다.

◯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집을 떠나 가나안 땅 이르렀지만 그 곳에는 이방인들이 있었고 발 붙일 땅이 없었습니다. 기근을 당하여 애굽까지 내려갔고 그곳에서 목숨을 구하려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거짓말하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그가 큰 부를 이루어 가나안에 돌아왔지만 거할 곳이 좁아 조카 롯과 동서로 갈라서야 했습니다. 어느날 동방의 왕들이 쳐들어와서 롯을 포로로 잡아갔다는 소식을 듣고 목숨을 걸고 온 집안의 하속들을 거느리고 가서 롯을 구해옵니다. 그에게 환상 중에 여호와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창세기 15:1,2]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 외적을 물리치고 가나안 땅에서 많은 부를 일구었으나 그에게는 여전히 이루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후사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는 실제로 그는 낙망하여 있던 것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을 후사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되

[창세기 15:4,5]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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