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요한복음 4:1-14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4:1-14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유대인들은 갈릴리 지역과 유대 지역을 왕래할 때 두 지역을 잇는 가장 빠른 경로인 사마리아 지역을 통과하지 않고 요단강 동쪽의 땅으로 멀리 우회하였습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이 종교적 혈통적으로 혼합된 사마리아를 부정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아무도 가고 싶어하지 않는 사마리아로 지나가는 길을 굳이 택하였습니다. 이는 단순히 갈릴리로 가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그곳에도 복음을 전하여 잃은 자들을 찾기 위함이었습니다.
○ 지금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고 그의 제자들이 전한 성경말씀을 믿고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주님이 가신 길이 십자가의 길이었다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이 공생애의 마지막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마가복음 8:31]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하리라
이 때도 제자들은 주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어떤 사람도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여야 하리라는 말씀을 안 사람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세례요한도 예수님의 12제자들도 모두 하나님의 나라가 곧 임하리라 기대했습니다. 저의 아버지가 늘 신기하게 여기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사야 53장]에 예수님의 고난의 모습을 어쩌면 그렇게 똑같이 묘사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이 이땅에 계시는 동안에 호의호식 하였다면 일반 대다수의 교주들이 그랬듯이 세상을 미혹하였던 사람 중의 하나라 여겼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므로 대중을 끌어모으고 그들이 호의호식 하였다면 저는 저들의 증거를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들은 모두 이 증거 때문에 고난을 받고 순교의 길을 갔습니다.
하나님이 왜 자신의 아들을 보내어 십자가의 제물이 되셔야 했는가? 저는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방식이고 구원의 방식인 모양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저 높이 하늘에서 고난 당하는 나를 보시며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하시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고난 중에 함께하시는 분이십니다.
[히브리서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 요청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여인에게 물을 청하신 것은 실로 놀라운 일입니다. 보통의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을 부정한 사람으로 여겨 상종하기를 거부했고 사마리아인들도 유대인을 더러운 탐욕을 가진 사람들로 취급하였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자에게 하신 요청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쉽게 들어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고대 근동에서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물을 대접하는 것은 미덕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민족적 편견이 있어 예수의 요청을 들어주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 성도들 가운데 다수가 신앙 생활에서 실패하게 되는 이유는 예수께서 지금 자기에게 요구하시는 것을 알려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혹은 알려고도 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편견이 있어서 이고, 마음이 열리지 않은 까닭입니다.
◉ 예수께서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배에서 나와 그물을 씻고 있는 시몬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요구하신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직업이 어부인 그로서는 성가신 일이지만 못할 일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여전히 편견과 고집, 자신의 눈 앞에 이익에 사로잡혀 있었더라면, 그는 그물을 내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 그가 주의 가르치는 말씀을 듣고 마음이 열려 그물을 내릴 마음을 가진 것입니다. 그 결과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룰 잡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요한복음 4:1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 여인은 지금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분이 유대의 랍비 정도라고 생각했을 뿐 그리스도라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습니다. 여인이 하나님의 예비하신 축복을 알고 자신 앞에 계신 분이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지금 헛되이 시간을 낭비하고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 예수를 보고 그 분이 그리스도이심을 안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예수의 열두 제자들도 예수의 그리스도 되심을 알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베드로가 예수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 라고 고백하였던 것도 예수님의 공생애 마지막 가이사랴 빌립보 지경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 예수께서 가시는 곳마다 사람이 인산인해를 이루어 그의 말씀을 경청하며, 그분이 행하시는 놀라운 일들을 목도했으나 예수를 메시야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인간적인 편견 때문이었습니다.
◯ 인간 예수만 알고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사회봉사와 자선, 난민과 인권문제, 노동자들의 권익에 깊은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데 힘을 씁니다. 이를 교회와 성도의 자세라 생각합니다. 물론 이는 귀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귀한 일이 있습니다. 이들은 때로 교회가 거룩하지 못하다. 교인이 더 이기적이다 말하며, 정의를 말하지만 용서와 긍휼을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교회라는 곳이 그들과 마찬가지로 죄인들이 모여 있는 곳, 주님의 사랑을 알아가는 곳, 사람이 변화되어 가는 곳임을 알지는 못합니다.
○ 역사상 가장 많은 부를 누린 사람을 꼽는다면 단연 솔로몬일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복을 받아 엄청난 부를 누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세상의 모든 것을 가졌음에도 참된 만족을 얻지 못했습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1:2). 이것이 부귀 영화를 누린 그가 인생 말년에 한 고백입니다. 인생의 갈증은 돈으로 풀 수 있는 것이 아니며,지식이나 권력,명예,육체적 향락으로 해갈하는 것도 아닙니다. 세상에 있는 어떤 것으로도 채워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인생의 목마름입니다. 예수 안에 인생의 문제들에 대한 근본적인 해답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4: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 사마리아 여인은 야곱이 자신들에게 남겨준 오랜세월 마르지 않는 깊은 샘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네가 자랑하고 의지하는 이 우물도 너의 인생의 목마름에서 해갈시키지 못할 것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의 몸은 70% 이상이 수분으로 되어 있어서,충분한 양의 물을 마셔야만 정상적으로 활동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물부족으로 타들어가고 있습니다. 지금 중국과 동남아시아, 이집트와 수단 에디오피아 여러 나라가 물 때문에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사하라사막과 고비사막이 커지고 있습니다. 수십년 전에는 비옥하던 중국의 동북삼성이 사막화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내몽고 지역도 역시 모래사막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선사이래로 인류는 물이 있는 곳을 따라 번영했고 문명을 이루었습니다. 물이 있다는 것음 풍요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 세상의 과학기술은 지구의 목마름을 벗어나고자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물은 잠시 육신인 갈증을 해소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지만 영혼의 갈증,인생의 갈증을 푸는 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긍휼과 관심이 떠난 곳에는 제아무리 물부족을 해소하는 기술을 전수하고 가르친다 하더라도 물부족을 해결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찾아야 할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의 긍휼과 자비가 임하여서 그 땅에 물 문제도 해결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엘 2:23]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예전과 같을 것이라
[요한복음 4: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 이라는 표현은 [요한복음 7:37,38]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신 것처럼 예수를 믿는 자들이 받게될 성령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16절]에 예수께서는 사마리아 여자에게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참으로 갑작스러운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는 예수께서 여인에게 구원의 생수를 주기 위한 꼭 필요한 과정이었습니다. ○ 그녀는 지난날 자신의 더 나의 삶을 위해 결혼과 이혼, 결혼과 이혼이라는 5차례의 순탄치 않은 잘못된 선택의 생활을 해왔습니다. 인기가 있고 멋진 남자를 찾아 보았을 것입니다. 돈 많은 남자를 찾아 보았을 것입니다. 권세와 명성이 있는 남자를 찾아보았을 것입니다. 그녀는 다섯 번이나 이혼을 한 경력이 있었고 지금은 여섯번째 남자와 살고 있는 것입니다.
○ 그녀는 그녀의 실패한 인생을 다시는 말하고 싶지 않고, 기억하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지역 주민들이 그녀를 행실이 더러운 여인으로 점찍고 누구도 그녀를 가까이하려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인은 남들이 돌아다니지 않는 시간인 정오에야 은밀하게 물길러 나온 것입니다.
○ 그런 그녀가 예수께 그런 물을 내게 주어 목마르지 않게 해 달라고 청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정직해져야 합니다. 진실로 나의 목마름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에게는 모든 일이 지난 일이요. 용서 받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나의 목마름을 해결할 참 길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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