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로마서 9:14-23 <긍휼의 그릇>
로마서 9:14-23 <긍휼의 그릇>
[로마서 9:11,12]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어떻게 사람이 낳기도 전에 택하심을 받고, 자신이 잘 잘못이 있기도 전에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그 사람의 운명이 정해진다는 말입니까? 우리는 이런 성경의 말씀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은 사랑하사 구원받을 자로 선택하시고 어떤 사람은 미워하사 그냥 버려두시는 선택(選擇)과 유기(遺棄)에 대하여 ‘하나님의 독재가 아닌가? 선택과 유기가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속한 일이라면 어떻게 하나님이 불의한 자들의 죄를 허물할 수 있겠느냐’ 는 반론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 선택(選擇)과 유기(遺棄)를 행하시는 하나님이 공의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18절]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신다.
[출애굽기 33:19]의 이 말씀은 출애굽이라는 큰 결단을 하고 모세를 따라 광야에 나온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배반하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숭배를 하자 하나님이 광야에서 멸절하려 하신 때 말씀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왜 데리고 나오셨습니까?” “왜 출애굽 하라 하셨습니까?” 원망할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지음받은 인간이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신에게 어려운 상황이 닥치거나 불이익을 당하면 “하나님,왜 이렇게 하셨습니까?” 라고 항변하며 하나님이 자신에게 복을 주시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말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잘못된 선택과 결정입니다. ○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세상에 우연은 없다 운명도 없다’ ‘오늘의 축복과 고난은 모두 자신의 선택과 결정에 기인한다’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애절한 구원을 바라는 손길을 외면하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기를 바라지만 구하지 않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은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 하나님은 사람에게 눈과 손과 발을 주셨고,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 사람은 자신의 선택과 결정을 대단하게 여깁니다. 하나님도 이를 귀하게 보십니다. 그러나 사람의 선택과 노력은 그 힘이 아주 제한적인 것입니다. 동시에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하나님의 의지을 가지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발아하는 씨가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리지만 하늘이 비를 주지 않으면 아무런 결실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구원의 여부는 하나님의 선택에 있습니다. 지나가는 비도 때를 따라 그 지역을 따라 내리는 곳이 있고 내리지 않는 곳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강권적인 손이 이 땅의 모두를 구원의 자리로 인도하시기를 늘 간구합니다.
○ 빌라도는 법정에서 예수님 앞에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말하자 주님은 빌라도에게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하였습니다. ○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사람을 살고 죽는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은혜와 긍휼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 바울은 유기(遺棄)의 대표적 실례로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허용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강퍅하게 버티던 애굽의 바로(왕)를 예로 들었습니다. 바로가 처음부터 순순히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이스라엘을 해방시켰다면 이스라엘 백성들과 애굽인들은 열 재앙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권능을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바로가 끝까지 강퍅한 자세로 하나님을 대적했기에 하나님은 장자를 죽이기까지 하심으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무한하신 권능을 보고 믿도록 하신 것, 출애굽의 역사가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로 이루어진 것임을 확신할 수 있게 하셨던 것입니다.
◉ 지금 김정은이 북한의 인민을 죽음으로 내몰며 핵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 김정은이 개인의 결단이라 생각하십니까? 지금 하나님이 김정은의 생명을 연명시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국방과 경제가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가게 된 요인 가운데 하나가 북한 땅에 공산당이 들어섰다는 것입니다. 이는 대한민국이라는 열매를 거두기 위한 원가지를 꺽으신 것과 같습니다.
[로마서 11:24]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슬러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으니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받으랴
[로마서 11:32]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 구약의 시대에 바로의 완악함으로 인해 이스라엘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신 것처럼 신약의 때에는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인해 열방을 구원에 들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우리에게 열방을 구원하라 하십니다. 이것이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이며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를 바란다’ 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경고하시기를 높은 마음을 품지 말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하셨습니다.
○ 사람이 죄 가운데 죽고, 어둠 가운데 죽고, 재난 가운데 죽는 것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강퍅하여 빛 가운데 나오기를 원치 않습니다. 인류는 아담 이후로 죄에 속한 자가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의 몸에는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암의 유전자가 있듯이 사람은 조상으로부터 각종 죄의 유전자를 물려받았습니다. 그래서 [시편 78:8]에는 “그들의 조상들 곧 완고하고 패역하여 그들의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며” 라고 말합니다. 사람의 속에는 각종 죄의 뿌리가 숨어있습니다.
[디모데전서 6: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여기서는 “부하려 하는 자”에 한하여 말씀하고 계시지만…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을 모르고 눈이 어두워 길 잃은 양과 같이 자신의 행복을 위하여, 만족을 위하여,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자신의 길을 간 사람들을 말합니다.
○ 인류는 아담 이후로 목자 없는 양, 길 잃은 양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종교심이 많고, 세상에서 아무리 많은 ‘선행을 쌓았다’ 자신을 ‘의롭다’ 말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보실 때 우리는 다 부끄러운 죄인일 뿐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의 긍휼하신 은혜로 구원 얻는 존재인 것입니다. 누가 긍휼하심을 입겠습니까?
[이사야 45:9] “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이와 더불어 다툴진대 화 있을진저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너는 무엇을 만드느냐 또는 네가 만든 것이 그는 손이 없다 말할 수 있겠느냐”
○ 여기서는 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존재라는 했습니다. 이를 달리 말하면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만한 것이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창조될 때부터 하나님 앞에 내세울 것이 없는 존재입니다. ‘아담’이란 ‘흙’이라는 의미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무가치함은 ‘한 줌 진흙’ 과도 같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구하기 쉬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흙일 것입니다. 그런 ‘진흙’이 무엇 자랑할 것이 있고 무엇을 이루고, 무엇을 쌓으려고 한단 말입니까? 인간의 수고들은 잠시 후면 바닷물에 쓸려갈 모래성과 같은 것들입니다.
[로마서 9:23]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 하나님의 귀한 그릇입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보배로운 예수 그리스도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를 보배로 비유하여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고후 4:7)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질그릇같이 천하고 깨어지기 쉬운 존재요 또 흠 많고 점 많은 존재이나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귀한 존재, 보배로운 존재, 쓰임 받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자기를 낮추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6:7]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구약 [열왕기하 4장]을 보면 선지자 엘리사가 과부된 선지 생도의 아내에게 도움을 준 기사가 있습니다. 선지 생도가 일찍 죽은 까닭에 과부된 선지 생도의 아내와 그 자녀들은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엘리사는 그 가정에 찾아가 가진 것이 무엇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과부는 집에 기름 한 병 밖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엘리사는 과부와 두 아들에게 동네의 모든 빈 그릇을 빌려오라고 명합니다. 그리고 그 빌려온 그릇에 기름을 부을 것을 명합니다. 그러자 한 병 밖에 되지 않던 기름은 온 동네에서 빌려온 그릇들을 다 채우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 과부와 아들들이이 온 동네에서 빌려온 빈 그릇들은 바로 ‘영광 받기로 예비된 그릇’ 들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장차 천국의 영광을 우리에게 주기 위해서 예비하고 계시는 분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비어 있는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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