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4:1-8   <의롭다 여기심>

◉ 저는 얼마전에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읽으며 아 우리도 이런 때가 있었구나 새삼 알았습니다. 박지원은 다들 아시다시피 조선 후기에 청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사람입니다. 그가 압록강을 지나 북경으로 가는 길에 경험을 기록하고 있는데 그가 가는 곳마다 한문 몇 귀절을 써 주면 이를 본 사람들이 그에게 숙소를 제공하고 술과 밥으로 대접하더라 기록했습니다. 그랬습니다. 조선의 개화기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한자 글귀 조금 아는 것으로 위세를 부리고 자랑하였는데 많은 사람이 배운 사람을 우러러 보았던 것입니다. 몇 자 아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헛되고 헛되니하고 노래한 사람이 솔로몬입니다. 그는 모든 학문과 지혜 부귀를 누린 자이고 다윗의 하지 못한 성전건축을 마친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우상숭배하는 이방여인들을 부인으로 맞아 나라의 분열의 씨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도 결국 헛되게 산 사람입니다. 우리는 참된 힘과 축복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잘 붙잡아야 합니다. 

○ 아브라함은 유대인들이 가장 자랑스럽고 영광스럽게 여기는 인물입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을 선민 이스라엘의 조상으로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는 것을 구원받는 것으로 생각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진실되게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구원을 얻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로마서 4:1]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된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아브라함의 혈통은 인류 역사에서 보기 드문 존귀한 혈통입니다. 그는 셋과 에노스의 믿음의 혈통을 이어받은 노아의 아들 셈 계열의 10대 손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가 의롭다함을 얻은 근거로 그의 혈통과 인품 그의 신앙적 수고를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는 육신적 노력으로 하나님에게서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입니다. 성경에 기록이 있다면 아브라함에게 ‘의롭다 잘했다’ 하신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이 귀한 것입니다. 사람은 다 완악하고 죄 많고 부끄러운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구원 받는 길을 주셨으니 이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4:4,5]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 바울은 정당한 임금을 받는 일꾼을 예화로 들고 있습니다. 포도원 주인이 어떤 사람에게 얼마의 임금을 주기로 약속하고 포도원에 들여보냈다면 그는 그 사람에게 약속된 임금을 지불할 의무를 질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 포도원 예화에서는 ‘일하는 자’ 의 수고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바울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의가 수고의 댓가가 아니라 은혜로써 주어지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이 말씀에는 두 가지 아주 중요한 명제가 담겨 있습니다. 첫번째 명제는 일한 것이 없어도 이고, 두 번째 명제는 경건치 않은 자입니다. 하나님은 일한 것이 없더라도, 경건치 않은 자일지라도 관계치 않는다. 하나님 앞에서는 '사람이 얼마나 수고하고 얼마나 일했느냐' 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가 지금 하나님 안에 있느냐 하나님을 믿느냐 이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 하나님은 아무에게도 빚진 적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오히려 한 일도 없는 자에게도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 아브라함은 자기 힘으로는 결코 의롭게 될 수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일을 안 하는 자’ ‘못 하는 자’ ‘불능한 자’였습니다. 그가 아내를 누이라고 팔았지만 하나님이 그의 아내를 구원하여 돌려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기근으로 애굽땅에 내려갔지만 하나님은 애굽의 백성들로 그를 두려워 하게 하였고 아브라함 자신이 수고하지 않은 거대한 부를 이루어 남방 땅으로 돌아오게 했습니다. 그의 힘으로 동방의 왕 그돌라오멜에게 포로로 잡혀간 롯을 구해낼 수 없었습니다. 그런 그가 전쟁에서 이긴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간섭이었습니다. 그가 약속의 자녀를 얻기를 바랐지만 그는 이미 다 늙은 노인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하나님 앞에 의롭다 여김을 받았습니다. 무엇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았습니까? 그가 여호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창세기 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 주 예수님이 하루는 세관을 지나가시다가 마태를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니 따랐다 했습니다. 평생에 이스라엘 백성의 미워하는 일만 하던 마태, 모두의 손가락질을 받던 마태를 주님이 부르신 것입니다. 마태는 자신을 불러주신 예수님이 고마워 잔치를 벌였습니다. 잔치에 세리와 죄인들이 몰려왔습니다. 거기에 예수님도 함께 하셔서 음식을 드셨습니다. 그 후에 마태로 인해 많은 죄인과 세리들이 함께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에 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주님이 좋습니다. 잘한 것 하나 없고 못나고 무능한 마태와 같은 나를 불러주신 예수님, ‘내가 너를 안다’ 하시는 주 예수님이 좋습니다. 

○ 인간적인 자랑으로 하면 유대인 가운데서 누구도 사도 바울의 배경과 그의 수고와 공로를 따라올 자 없습니다. 그는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요 율법의 의로 흠이 없었습니다. 그는 유대 최고의 율법 학자인 가말리엘에게서 배웠습니다. 헬라 철학에 정통했습니다. 로마 시민권을 가졌습니다. 그런 그가 이런 것으로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바울은 그가 가진 모든 외적인 스팩들과 배경들을 배설물과 같이 여겼다 했습니다. 사람은 사람들 앞에서 육체적인 것으로 자랑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육체적인 자랑을 높이 평가하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1: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 여러분은 대한민국이 10대 무역국에 들어간 것이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서는 것이 우리 국민의 노력과 총명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떤이는 교육열이다 어떤이는 일제식민의 경험이다 어떤이는 미국의 원조다 다양하게 말하지만 저는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는 무수한 위기가 있었습니다. 국민이 노예의식과 부패에 찌든 대한민국의 성장과정에 수 많은 위기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지금도 세상의 온갖 재해 가운데서 보호받고 있는 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도우심입니다. 하나님이 다시금 우리에게 기회를 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 다윗은 모든 조건을 갖춘 왕이었습니다. 시인이요,음악가였습니다. 장군이었습니다. 그에게는 많은 대적자들이 있었지만 원수들은 그 앞에서 패하여 물러갔습니다. 전쟁을 했다 하면 백전백승이었습니다. 그의 나라는 나날이 확장되었고, 그의 왕위는 세월이 흘러갈수록 견고해져 갔습니다. 물론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내려주신 은혜를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가 이루어낸 이런 업적으로 그를 의롭다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밧세바의 일로 하나님께 대하여 죄를 범하기 전까지는 이것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죄를 숨기고 고민할 때, 비로소 이것을 알았습니다. 다윗은 이 일로 말미암아 하늘의 복의 문이 닫힌 것과 자신이 징벌받아 마땅한 존재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 앞에 죄를 회개하고 자복할 때 말없이 받아 주시는 하나님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 이었습니다. 다윗이 노래합니다. 

[시편 32:1]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 저희 아버지가 지금 93세이십니다. 지금은 몸이 불편하여 주일예배에 참석하지 못하십니다. 그래서 제가 갈 때마다 예배를 드립니다. 저는 저 나름대로 제가 가진 사명을 일반으로 많은 사람이 깨닫지 못하고 있는 성경을 해석하여 성경을 깊이 깨닫도록 도움을 주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성경의 무오성(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일성(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일관성)을 알려 주는데 힘을 쓰고 있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저와 예배드리는 것을 너무 기뻐하십니다. 그동안 교회를 멀리하던 저의 형님도 성경말씀의 해석을 듣는 것을 좋아하고 예배에 참여합니다. 저의 아버지가 예배를 마치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을 대하는 시간처럼 귀하고 기쁜 시간이 없다. 하루에 최소한 5장의 성경을 읽으려고 노력한다” 하셨습니다. 그 연세에 눈이 침침하시지만 그래도 성경을 읽으시는 저의 아버지를 보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참 대단하다고 여깁니다. 저의 아버지는 저의 가장 큰 기도의 후원자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내가 주 예수의 보혈을 힘입고 나올 때 내 모습 이대로 인정하시고 의롭다 선언해 주시는 고마우신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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