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예레미야 9:23-26 <이것을 자랑하라>
예레미야 9:23-26 <이것을 자랑하라>
[예레미야 9:2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본문 [23절]에는 자랑하지 말 것 세 가지를 말씀하시고 [24절]에서 자랑해야 할 것 세가지를 말씀하시는데, 자랑하지 말아야 할 것은 ‘사람의 지혜’ 와 ‘용맹’ 과 ‘부함’이고 자랑해야 할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인데, 즉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 세상의 가치가 무엇입니까? 세상 지혜와 힘과 재물입니다. 이 세 가지는 일반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장 우선시하는 것, 갖고 싶어 하는 것들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것들로 자신들의 삶을 평안하게 하고 자신들이 어려움에 처하게 될 때에 자신들을 구원하여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것들을 자랑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런 것들을 신뢰하거나 의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그들의 삶을 평안하게 하거나 어려움에 처하게 될 때에 진정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물론 지혜와 힘과 재물이 인간의 삶을 평안하게 하고. 어려움이 닥칠 때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지혜와 힘, 재물은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분명 유익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풍족한 재물을 주기 원하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인간이 절대적으로 의지할 만한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종종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줍니다. 또한 그것들은 인간을 참된 구원으로 이끌지도 못합니다.
○ 재물을 모은 사람이 질병이 있기도 하고 자녀가 곁길로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연예인 스타로 명성을 떨쳤던 사람이 일순간에 가정이 파탄나고 사기를 당하고 모든 것을 잃고 노숙인으로 살아가는 것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모든 것을 다 주시지 않습니다.
◉ 우리는 지혜와 힘과 재물에서 각각 탁월한 능력을 보였던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삼손과 솔로몬입니다. 우리가 알 듯 삼손은 나귀 턱뼈 하나로 일천 명을 죽일 정도의 괴력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자기 힘만 믿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났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솔로몬은 지혜와 부를 두루 갖춘 왕이었습니다. 처음에 그는 겸손하였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여 총명과 지혜을 얻은 왕이되었습니다. 그는 많은 재물도 모았고 누렸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자기 지혜와 부요함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났다가 나라가 둘로 분열되는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습니다. 이는 사람이 온전한 존재가 아님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결국 삼손이나 솔로몬이나 자신의 힘과 지혜로 자신과 나라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 우리는 하나님을 찾지 않는 사람들도 자신의 힘으로 형통하고 세상에 낙을 누린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 다윗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공평함을 의심하게 했습니다. 훗날 다윗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시73)
[예레미야 9:25,26]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면 할례 받은 자와 할례 받지 못한 자를 내가 다 벌하리니 곧 애굽과 유다와 에돔과 암몬 자손과 모압과 및 광야에 살면서 살쩍을 깎은 자들에게라 무릇 모든 민족은 할례를 받지 못하였고 이스라엘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였느니라 하셨느니라
예레미야는 임할 종말의 심판을 예언하면서 그 예언의 출처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이 예언은 반드시 성취되리라는 말씀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심판의 대상이 누구입니까? ‘보라 날이 이르면 할례 받은 자와 할례 받지 못한 자를 내가 다 벌하리니’ 라 했습니다. 할례 받은 자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을 가리키고, 할례 받지 못한 자는 이방인을 가리킵니다. [26절]에 심판 받을 민족 중에 제일 먼저 유다가 나오고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을 말씀하십니다. 왜 유다와 이스라엘을 포함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이스라엘이 마음에 할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무할례자인 이방인들과 동일하게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 어떤이들은 누군가의 장례식에서 그 사람이 세례를 받았다. 그 사람이 이전에 교회에 다녔고 영접기도를 했다. 그러니 천국에 가지 않았겠는가! 위안을 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외적으로 ‘교회를 다녔다. 예배에 참석했다. 세례를 받았다’ 이는 모두 외적인 모습에 불과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할례는 하나님의 백성의 외적 표징일 뿐 구원의 보장은 아닙니다. 할례를 행함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세상사람과 구별되었다는 표식에 지나지 않습니다. ○ 할례는 오늘날 세례와 같이 주의 백성으로의 서약과 같은 외적인 상징입니다. 할례 이후에 외적인 상징에 부합하는 마음의 할례가 없다면 이는 거짓 껍데기에 불과한 것입니다. ○ 하나님이 원하신 것은 백성들이 할례를 행함과 동시에 세상에서 사는 방식, 생각하는 방식, 가치관에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백성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하나님의 백성이라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이방인과 동일하게 세상의 지혜와 힘과 부귀를 자랑하며 살아간 것입니다.
[예레미야 4:4]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분노가 불 같이 일어나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
○ 이스라엘 나라는 역사적으로 멸망을 두 번이나 겪었습니다. 한 번은 B.C. 586년 바벨론에 의한 예루살렘의 멸망이고 다른 한 번은 A.D. 70년 로마에 의한 예루살렘의 멸망입니다. 그들은 선민으로서의 표식인 할례도 있었고 하나님의 성전도 있었지만 그것이 그들을 구원하지 못하였습니다. 예레미야 시대와 마찬가지로 유다 백성들은 육체의 할례는 받아 표면적으로는 "선택된 백성이다" 말했지만 실제로 그들은 여전히 마음의 할례를 받지 않아 이방인과 다름이 없었던 것입니다. ○ 주의 백성은 형식적인 종교행위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을 것이라는 허황된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사람들의 동일한 행위 가운데에도 그 동기가 다를 때가 많습니다. 사람이 동일하게 예배를 드리고, 봉사를 하고, 자선을 행하고, 열심히 배움을 구하여도 속으로는 자신의 영광과 칭찬을 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비록 세례를 받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표식이 있고 웅장한 교회에 출석을 한다 해도 진정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면 그 역시 멸망으로 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내면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예레미야 31: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구원의 진정한 증거는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 제가 지금 바이든 대통령을 안다 말하면 모두들 웃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이든 대통령은 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된 자의 진정한 특징은 하나님과 나의 인격적인 만남입니다. 그 인격적인 만남은 내가 너를 알고 네가 나를 아는 것입니다. ○"그들의 속에 두며" "마음에 기록하여" 란 전에는 하나님의 법이 우리 몸 밖에 있었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법이 내 안에 있어 자원하여 하나님의 안에 거하기를 원하는 마음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닌 인격적인 만나는 관계가 되기를 원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호세아 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 하나님을 자랑하는 사람은 세속적인 가치를 좇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아는 것을 자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키며 심판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두려워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라면 일을 당할 때 두려워 하거나 낙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라면 황급하게 내 방식을 찾아 서두르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 마음에 평강이 있고 하나님이 친히 행하시는 것을 볼 것입니다.
◉ 스펄전 목사님이 자기가 돌보는 런던의 고아들을 위해 300파운드를 모금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던 중 “그 돈을 조지 뮬러 목사에게 갖다 주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오! 주님,저희 고아들도 이 돈이 필요한데요” 그러나 그 음성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네,주님. 순종하겠습니다” 스펄전 목사는 그 돈을 들고 뮬러에게 갔습니다. 그 시간 뮬러는 무릅을 끓고 기도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조지, 하나님께서 내가 모금한 300파운드를 당신에게 주라고 해서 가져 왔소” “스펄전 목사님, 저는 지금 바로 300파운드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중이었는데요” 두 사람은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함께 기뻐했습니다. 스펄전 목사가 사무실에 돌아오니 책상 위에 편지가 하나 와 있었는데 300기니의 헌금이 들어있었다. “주여, 제가 헌금한 300파운드에 이자까지 보태서 주시는군요!” 그는 감격하여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며 하나님을 경외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을 기쁨을 주십니다. 우리가 자랑할 것은 인간의 지혜도 용맹도 재물도 아니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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