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3:7-16   <영적 지도자>

[히브리서 13:7]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

첫째로 영적 지도자는 ‘하나님의 말씀’ 곧 ‘진리의 지식’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는 [9절]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에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또 그것을 교훈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영적 지도자의 가장 큰 임무가 무엇입니까? 세상에 하나님의 말씀을 몰라 죄악과 혼란의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뜻을 바르고 정확하게,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 이를 위해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탁월해야 합니다. 광부가 깊은 갱도에서 금은보석을 캐듯이 늘 진리를 캐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날마다 성경을 읽고 묵상을 하며, 말씀에 익숙하고, 성경 공부를 해야 합니다. 물론 세상적 지식을 쌓는 것도 등한시하면 안되겠지만, 영적 지도자는 반드시 영적인 지식을 겸비한 사람이라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라고 하였는데, 여기 누구의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라고 하신 것입니까?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입니다. ○ 우리 각 사람은 자신의 신앙의 멘토(mentor)가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선배들의 신앙을 봄으로 해서 우리는 더 확고한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나 혼자 노력해서 성공하고 잘먹고 잘 살겠다고 해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 지도자는 또한 자신의 신앙의 멘토(mentor)가 있어 그의 믿음을 본받아 전쟁과 질병, 재난과 경제의 불황 등 그 어떤 위기라도 헤쳐나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를 통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의 신실함을 삶으로 증거해야 합니다. 

○ 그렇다면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이 마음을 굳게 하여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근거는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8절]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근본 하나님 자신이시요(빌 2:6), 구원의 빛이시며(요 1:4),길이요 진리(요14:6)가 되신이십니다. 한 분 예수님만이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요 믿음의 근거요 믿음의 본을 보이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그 분을 알고 그 분을 의지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종교 개혁자 칼빈(Calvin)은 이같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바른 믿음 안에서 요동치 않고 서 있을 수 있는 오직 유일한 방식은 기초를 붙잡는 것이다. 그 기초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지 아니하는 자는 허망한 것만을 붙잡을 것이다.” 했습니다. 

[히브리서 13:9]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식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식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 

여기서 ‘식물’ 이란 인간이 매일 먹는 음식물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레위기 11장에는 먹을 음식과 먹지 못할 음식에 대한 무수한 ‘음식 규례’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 구약의 규례들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가져야 할 정결함을 교훈하는 것이지 결코 그 율법이 인간의 심령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이나 이슬람인들은 먹고 마시는 외적인 것들, 옷입는 것으로 사람을 규제하고 정신을 지배하려 합니다. ○ 유대교인들은 종종 자신들에게는 있는 제단이 그리스도교에 없는 것을 보니 그리스도교는 분명 거짓 종교임에 틀림없다고 비난했습니다. 이에 대한 답으로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에게는 땅 위에 있었던 모든 제사장보다 탁월하신 대제사장이 계시며, 또한 제단도 있다” 했습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불완전하여 잊혀지고 썩어지고 사라지는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시대에는 반복해서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날에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자신을 드림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 그러므로 이제 웅장한 건물과 형식적인 예배, 외모와 물질, 사람을 의지하는 신앙을 벗어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만을 의지하여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많은 한국교회가 가르치는 자의 권위를 나태내기 위하여 강대상을 높이고 강대상 위에는 성경책을 펼쳐놓아 제단을 성스러운 모습으로 꾸며 놓기도 합니다. 이는 어린아이를 강압적으로 대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는 믿는 모든 신자가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의 직분을 가졌음을 자각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들입니다. 

◎ 허드슨 테일러는 중국선교에 대한 열망이 불타고 있었습니다. 1850년 5월 중국선교를 위한 첫 준비로 의학공부를 시작했는데 동시에 테일러는 '중국에 가게 되면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영국을 떠나기 전에 하나님의 도우심과 공급을 받는 영적 훈련을 받아야 하리라' 생각을 하고 헐이라는 곳, 빈민촌에 방을 얻어 어려운 환경에 적응하며 어떠한 어려움이 온다해도 사람을 도움을 청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겠노라고 결심했습니다. 어느 토요일 테일러는 하루종일 전도와 심방을 하고 밤 10시에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때 어떤 남자가 찾아와 죽어가는 자기의 아내를 위해 기도를 부탁하였습니다. 테일러가 그 사람을 따라서 심방을 가보니 초라한 방에는 다섯명의 아이들이 영양실조에 걸려 있었고 냄새나는 돗자리 위에 갓난아이를 품에 안은 한 여인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테일러는 주머니 속에 있는 은화를 의식하면서 속으로 '크라운 은화 대신에 잔돈이 있었다면 기쁜 마음으로 1실링을 줄 수 있었을텐데'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은화를 통째로 준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당장 내일 먹을 끼니조차 없는 형편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양심은 날카롭게 그를 꾸짖었습니다. '이 위선자야, 구원 받지도 않은 이들에게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라 말은 잘하면서 네 주머니 속에 은화는 통째로 줄 수 없단 말이냐!' 이런 숨막히는 갈등 때문에 기도를 제대로 못하고 일어서려는 순간.. 그의 마음 속에는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라'는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결국 그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은화를 그에게 주면서 신실하신 하나님을 증거하고 돌아왔습니다. 다음날 아침 끼니가 없어 걱정을 하고 있는데 집주인이 소포 꾸러미를 하나 건네주는 것이었습니다. 놀랍게도 그 속에는 금화 한 개가 들어있었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서 훗날 그가 선교현장에서의 수많은 역경 가운데서도 굴복하지 않고 기도로 승리하는 비결을 얻었습니다. 

[히브리서 13:12]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았다’ 이 말은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는 아름다운 발걸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레위기 16장]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죄를 위하여 일 년에 한 번 속죄하는 대속죄일이 나옵니다.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은 지성소까지 들어가 하나님의 언약궤 위에 속죄의 피를 뿌려 백성의 죄를 속했습니다. 그리고 짐승의 고기와 가죽 모든 것을 영문 밖에서 불 살랐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대속죄일의 제물로서 백성의 죄를 대신 지고 성문 밖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로써 구원이 온 백성에게 이르게 된 것입니다. 

[13절]에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라고 했는데 여기 ‘우리는’ 이란 말은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 ,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 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나이가 많든 적든 어떤 직종의 사람이건 간에 영적인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 ‘능욕을 지고’란 부끄러움을 감수해야 함을 말합니다. 우리가 이 시대의 사람과 함께 먹고 마시고 즐긴다면 그들은 우리를 친구로 여길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이름을 말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얼마든지 우리를 받아주고 환영할 것입니다. 그들이 다만 원하는 하나는 예수 이름을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를 따르는 자에게는 온갖 손가락질과 핍박이 있게 마련입니다. 예수님이 가신 길은 사람들이 가기를 꺼리는 곳, 차별이 있는 곳, 가난과 질병이 있는 곳, 죄에 포로가 된 자들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과 함께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영문 밖’ 이란 표현은 이스라엘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진 밖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신 곳은 유대인들이 거룩하게 여기고, 화려한 종교 의식이 거행되는 예루살렘 안에서가 아니라 그들이 속되다고 여기는 영문 밖에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란 당시 사람들이 수치와 저주의 장소로 생각했던 곳입니다. 성도가 주님을 만난 곳은 ‘영문 밖’입니다. 

영적 지도자는 인생의 모든 일에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영적 지도자의 바른 교훈은 말이나, 행위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으로 된다 했습니다. 

[스가랴 4:6]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 한 성도가 주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네가 나의 일에 함께 하겠느냐?” 그러자 성도는 “주님 제가 주의 일에 최선의 힘을 다하겠습니다” 했습니다. 그날 밤에 또 다시 주께서 그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었는데 “네가 나를 위하여 무슨 최선의 삶을 살겠느냐? 나의 일에 함께 하겠느냐? 물었을 뿐이다” 라는 말씀을 들었답니다. 

○ 영적 지도자가 자신을 특별한 사람, 훌륭한 지도자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영적 지도자는 자신이 진리를 구하는 자인지, 소망 가운데 있는지, 믿음으로 살아가는 지… 자신의 모습을 살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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