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 1:17-2:10   <기도하는 요나>

[요 2:1]은 요나가 물고기에 삼킴을 당함으로 사실상 죽은 목숨이 구원 받아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를 드린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9절]은 1인칭 직설법으로 서술하고 있는 기도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2절]부터 [6절 상반절]까지는 물고기에게 삼켜지기 이전 그가 바다에 빠져 사경을 헤멜 때에 바다 속에서 간구한 것이며, [6절 하반절]부터 [9절]까지의 기도는 물고기 뱃속에서 드린 기도의 내용입니다. 

[요나 2:5] 물이 나를 영혼까지 둘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워싸고 바다 풀이 내 머리를 감쌌나이다. 6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 놀라운 것은 지금 요나가 기도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배 안에서 풍랑을 만나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에는 잠만 자고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지만, 바다에 던져진 이후로 하나님에 대한 태도가 바뀐 것을 봅니다. 사람이 배부르고 편안하면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하는 사람을 징계하십니다. 직면한 죽음의 위기가 사람을 낮추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의 진실한 기도에 응답하시어 하나님을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시편 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요나 2:2]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 요나가 당한 고통은 두 가지였을 것이다. 그가 말하는 '스올'은 지옥, 무덤, 음부 등을 의미하는 히브리어이지만 여기서 요나가 말하는 스올은 분명 자신이 물고기에게 삼킴을 당하기 전에 그가 빠졌던 사나운 파도가 있는 깊은 바다이며 그 후에는 그가 머무르고 있는 질식의 고통이 있는 물고기의 뱃속일 것입니다. 그리고 요나는 두 상황 모두에서 하나님께 간구했을 것입니다. 요나는 바람 부는 바다의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구원의 유일한 가능성이신 여호와께 간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기도는 마침내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말하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그에게 구원은 아직 미완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제 자신의 음성을 들으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구원의 黎明을 본 것입니다. ○ 우리는 기도하므로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들으셨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아니하고 어찌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들으셨는지, 듣지 않으셨는지 알겠습니까? 

[요나 2:3]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에 던지셨으므로” 

실제로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진 이들은 배의 선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요나는 자신을 바다 깊은 곳에 던진 이가 선원들이 아닌 '여호와 하나님' 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 자신의 일에 친히 간섭하시는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의 배후에서 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지금까지 요나는 “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며 달과 별로 밤을 주관하게 하신 하나님, 폭풍까지도 주관하시는 하나님, 인생의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이는 요나가 말씀으로만 듣던 하나님입니다. 귀로 듣기만한 하나님, 머리로 생각만한 하나님, 이런 하나님은 관념적인 하나님일 뿐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은 나의 일이나 세상사에 어쩌다가 관여하시는 분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세상의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이 자연현상이며 우연이며 진화의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작은 신음에도 귀를 기울이시는 분이시며 나의 생각을 통찰하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결혼식날 비가 오는 것, 바람이 부는 것, 화창한 것 모두 하나님의 하시는 일입니다. 

[아모스 4:7] 또 추수하기 석 달 전에 내가 너희에게 비를 멈추게 하여 어떤 성읍에는 내리고 어떤 성읍에는 내리지 않게 하였더니 땅 한 부분은 비를 얻고 한 부분은 비를 얻지 못하여 말랐으매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 야곱의 아들 요셉은 형들이 그를 죽이기 위해 구덩이에 던진 일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45: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했습니다. ○ 예수님이 말씀하신 비유 중에 집을 떠난 탕자는 집에 돌아와 아버지를 향하여 [누가복음 15:21]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선을 행하고 축복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나 사람이 죄를 짓고 에덴 동산에서 떠나야 했던 것이나 모두 사람의 선택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이 둘 다 하나님의 열어놓으신 길이며,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요나 2:4]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 요나는 자신이 '쫓겨났다' 말하고 있습니다. '쫓겨났을지라도' 이 말은 자신이 선지자직이 박탈되었음을 암시하는 말입니다. 실제로 선지자 직분을 내버린 것은 요나 자신이 아닌가요? 그런데 왜 요나는 여호와의 목전에서 '쫓겨났다' 말하는 것인가요? 이는 자신의 불순종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떠났지만 동시에 이는 하나님의 하신 일과도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늘 자원하는 심령을 기뻐하십니다. 사람이 떠나고자 한다면 언제든지 떠날 길을 열어두십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쫓겨난 자와 같았습니다. ○ 이와는 달리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전도자를 성에서 떠나시게 하시기도 합니다. 바울은 전도여행을 하는 중에 그 성읍 사람들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배척하므로 그 성읍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쫓겨난 것이 아니고 새로운 여정으로 인도하시고, 보호하신 것입니다. 

○ 사람이 자신의 의지와 관계 없이 좋든 싫든, 환경이 허락하지 않고 각종 이유로, 떠나지 않을 수 없는 때가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징계이며 추방일 때가 있고, 또 이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며 축복의 길인 때가 있습니다. ○ 그런데 사람이 지금 가는 길이 하나님의 징계로 쫓아내심인지 축복의 길인지 어찌 알겠습니까? 자신의 고집과 죄로 인하여 일어난 일임에도 사람은 늘 자신을 속이며, 자신을 의롭게 여기며, 환경을 탓하고 사람을 원망하며 자신을 정당화 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 자신의 길을 갈 때 하나님은 침묵하십니다. 그렇게 요나가 다시스로 가는 길에 배를 순적히 만나고, 순풍이 불어, 가는 길이 형통하고 신세계의 소망이 넘쳤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축복과도 같고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길과도 같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가는 길을 알지 못합니다. 

○ 중요한 것은 사람이 하나님께 징계를 당하여 쫓겨 났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여전히 주의 뜻과 길을 구하는 자세가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입니다. 요나는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여 모두에게 재앙이 임하였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요나는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그는 다시 하나님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말합니다. '주의 성전'은 문자적으로 예루살렘 성전을 지칭하지만 여기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이 계신 곳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무조건적으로 따르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그의 생명을 귀히 여기셨고 그의 간구를 들으셨습니다. 그가 아직 살아있는 것입니다. 결국 요나가 발견한 하나님은 

[요나 4:2]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 교만한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당할 때, 그리고 자신의 죄악이 드러날 때, 오히려 마음이 강퍅해져서 자신을 돌이켜 회개할 줄을 모르고, 자신을 변명하며 자신의 뜻을 고집하는 사람입니다. ○ 출애굽기의 기록에 애굽 왕 바로가 그랬습니다. 바로는 10가지 재앙이 임하여 하나님의 권능을 보면서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앗습니다. 그가 하나님에게 매를 맞았는데도 하나님 앞에 죄를 뉘우친다는 것은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스스로 멸망의 길로 가는 어리석은 자였습니다. [계시록 16:10.11]에서는 어리석고 완고한 자들이 하나님으로부터 극렬한 재난이 주어지는 현장에서도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아픈 것과 종기로 말미암아 크나큰 고통을 당하고 있음에도 ‘하늘의 하나님을 비방하고 그들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더라’ 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나 2:8,9]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모든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9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 그러나 

모든 사람이 자신의 재물과 시간, 자신의 자유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누구나 사람들은 매사에 자기 생각 대로,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고집과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선택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에만 구원의 길, 소망의 문을 열 수 있음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요나 2:10]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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