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7:9-17   <장로들과 네 생물>

[계 7:1-8]에서는 인침 받은 백성을 지파별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기 12라는 숫자는 이스라엘에서 완전수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12이기도 합니다. [계7장]에서 구원의 인침 받은 백성의 수가 144000이라고 나오는데 이 숫자는 12의 제곱으로 만들어진 숫자로 구원 받은 모든 백성을 가르키는 숫자입니다. 

[요한계시록 7:11]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계 7:11] 이하에서는 이들과 함께 경배하는 천사와 장로 생물들이 나옵니다. 지금 경배하는 자들이 천사 보좌 장로 네 생물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4:3] 그들이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 여기서 장로는 예루살렘의 열두 문과 열두 기초석에 해당하는 ‘성의 기초석’에 해당하는 사람들입니다. [계4장]에서 ‘천사’는 면류관을 쓰고 있지 않았지만 이들은 이들은 ‘보좌’에 앉아 ‘면류관’ 까지 쓰고 있음을 봅니다. 이들은 하늘나라에서 왕적 지위까지 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땅에서 제사장 역할을 수행한 것을 봅니다. (벧전 2:9)에서는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이라 했습니다. 

[계5:8]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 우리는 144000의 구원받은 자들과 구분하여 24장로를 말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임하시는 날 그의 오른편에 앉은 자들일 것입니다. 이는 마치 버가모교회의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 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하늘의 영광의 자리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을 극복한 자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끄러운 구원을 받는 자들이 되지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 

○ 한편 하나님의 보좌를 둘러싸고 있는 이 네 생물은 말그대로 살아있는 피조물입니다. 이들 피조물을 영적 존재라고까지 말하는 것은 많은 오해와 논란을 가져올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들을 천사로 보기에는 본문에서는 경배하는 천사들을 달리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일까요? 본문에 보좌가 모든 권세를 ‘의인화’한 것으로 볼 때, 생물은 하나님의 영의 지배를 받는 생명을 가진 피조물, ‘만유’라 보면 무난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넷이라는 숫자도 동서남북 사방 온누리를 의미하지요. 모든 만물이 장로들과 함께 보좌에 앉으신 이에게 경배하는 것입니다. 

[계시록 4:9] 그 생물들이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릴 때에

이 생물들은 구약의 [에스겔1장]에 언급된 네 생물들을 연상시킵니다. 에스겔서에서는 네 생물이 각각 사람, 사자, 송아지, 독수리의 네 얼굴을 가지고 있다 했는데, 본문 [7절]에 언급된 네 생물은 그 순서가 달라 사자, 사람, 송아지, 독수리의 순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각각 하나의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네 생물이 나오는 순서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이 얼굴들이 갖는 상징적인 의미에 주의해야 합니니다. 사자는 모든 동물계에서 가장 강한 위엄을 가진 자입니다. 송아지는 힘과 충성, 인내를 사람은 지혜와 이성을 독수리는 날아오르는 활력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향해 영광을 돌리는 네 생물의 얼굴과 같이 위엄과 지혜 명철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소와 같은 인내와 충성심이 있어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늘 하늘로 솟아오르는 독수리와 같은 열정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에스겔서의 순서와 달리 계시록에서 말하는 생물 중에서 사자의 얼굴을 먼저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강인함과 존귀한 자의 모습, 이는 인간의 지혜와 이성에 앞서는 것입니다. 그 무엇도 무서워 하거나 아쉬워 구걸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왜 세상의 사람들처럼 불황 전쟁 재난을 보면 두려워 합니까? 왜 사람 앞에 전도할 때 물건을 나누어 주고, 당당하게 나오라 말하지 못하고 애걸해야 하는 것입니까? 

[계시록 4:6]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들이 가득하더라

○ 본문에서 보이는 네 생물들은 앞뒤에 눈이 가득하다 했고, 에스겔서에서는 생물들을 따르는 바퀴에 눈이 가득하다 했고, 영을 좇았다 했습니다. 그리고 [9]절에서는 장로 천사와 더불어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 감사를 돌린다 했습니다. 네 생물의 앞뒤에 ‘눈이 가득하다’ 라는 것은 네 생물이 끊임 없이 깨어 있어 하나님을 섬기며 찬양하는 성도가 갖추어야 할 뜨거운 열정과 통찰력, 깨어있는 자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보는 눈이 있어야 하고 듣는 귀가 있어야 하고 세상과 사람을 보고 직관하는 통찰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이러한 통찰력을 얻는 방법을 아십니까?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계시록 7:10]에 구원받은 수많은 무리들이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크게 외쳤습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 많은 무리가 종려가지를 흔들며 ‘호산나’를 외치던 장면을 우리에게 연상시켜 주고 있습니다(요 12:13). ‘호산나’ 이는 ‘여호와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라는 의미입니다. 구원은 오직 어린양 한 분에게만 있는 것입니다. 

◎ 당시에 로마제국은 황제를 신으로 믿으라 했습니다. 요즈음 사람들은 돈을 신으로 섬깁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을 재능을 믿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주먹을 믿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부모의 백을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허망한 생각들입니다. 성경은 구원이 오직 하나님과 그리스도께만 있다 말해줍니다. 이는 한두 사람의 증언이 아니라 무수한 동서 고금을 망라한 구름같이 많은 사람들이 이를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이는 주를 믿는다는 이유로 세상의 박해를 받고 순교하여서 주님 곁으로 갔습니다. 

◎ 폴리갑(AD.80-165)은 본래 안디옥 출신으로 구전에 의하면, 서머나의 어느 과부가 폴리갑을 노예로 샀는데, 그가 너무 똑똑해서 그녀가 죽게 될 즈음에 폴리갑을 자유인으로 만들어 주었다고 합니다. 폴리갑은 젊었을 때 사도 요한의 가르침을 직접 받았고, 성격은 직설적이고, 정열적이었습니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 되었고, 86세 때에 순교했습니다. 로마황제를 신으로 섬기지 않는 폴리갑을 잡아온 호민관은 그가 고령임을 고려하여 죽음을 면해주려고 권고했습니다. “그대가 지금가이사 황제에게 경배하면 자유롭게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자 폴리갑은 “지난 86년 동안 나는 예수님을 섬겼소. 그러나 그는 한 번도 나를 버린 일이 없었소. 어떻게 그를 모른다고 하여 나를 구원하신 주님을 욕되게 할 수가 있겠소. 총독도 예수를 믿고 구원받으시오” 하였습니다. 결국 그는 벌거벗겨져서 산같이 쌓아 놓은 장작더미 위에 화협집행을 받았습니다.

○ 오늘날 이 땅에는 하나님과 그리스도 외에도 구원의 길은 얼마든지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세상의 사람들이 기독교를 혹세무민하는 종교라 말하고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을 어리석다 말하며 멀리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심지어 성경을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조차도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을 구원할 자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 1945년 해방 되기 얼마 전 金允燦 목사님은 만주에 가셨다가 돌아오는 길에 러시아 병사에게 붙잡혔는데 사방이 1제곱m 감방에 칼을 씌워서 가두더랍니다. 춥고 배고픈데 몇날 몇일이 되어도 아무도 돌아보지도 않고 먹을 것도 주지 않아 이제는 죽었구나 싶어 혼미한 중에 자신도 모르게 “주여 주여” 했는데 한 병사가 찾아와 당신 예수를 믿는가 손짓하며 묻더랍니다. 그렇다고 했더니 자신의 엄마도 예수를 믿는다 하며 러시아인들이 먹는 돌같은 큰 빵을 수시로 던져 주어서 먹고 살아났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외면하시지 않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우리는 힘써 해야 하지만 결국 우리가 의지하고 구하여야 할 한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계시록 7:13,14]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인간적인 방법으로 자기 죄를 씻고자 하는 자들을 향해 “네가 젯물로 스스로 씻으며 수다한 비누를 쓸지라도 네 죄악이 오히려 내 앞에 그저 있으리니”말씀하셨습니다(렘 2:22). 그렇습니다. 인간은 자기의 죄악을 스스로는 씻을 수 없고 마침내는 그 죄악으로 인하여 저주의 심판을 받고 영원한 멸망에 처해져야 할 가련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자기의 죄를 씻고 구원에 이르는 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 길이 바로 무죄하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이 인간의 죄 대신하여 지고 가신 것입니다. 우리의 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만 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ᅳ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는 이 말씀을 늘 기억하면서 즐거움으로 그리스도 예수 앞에 나아가 마음으로 감사와 찬양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구원의 진리를 모르고 세상에서 허망한 것들로 시간을 보내며 스스로를 구원하려 애쓰는 영혼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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