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2:1-11 <이 마음을 품으라>

[빌립보서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품으라 하시는데 이 마음이란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 입니다. 주님은 모든 일의 본을 이루신 분이십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갖도록 힘써야 합니다.

먼저 [1-4절]에서는 성도들이 교회에서 힘써야 할 요건들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2:1-2]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첫째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권면입니다. 교회에는 믿음이 약하거나 시험에 빠진 성도들이 있습니다. 믿음이 나태하여지고 약하여진 사람을 방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가르친 것처럼, 바울 사도가 교회에서 하던 것처럼 성도들도 서로를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권면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늘 나누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는 사랑의 위로입니다. ’위로'란 설득하고 격려하는 일입니다. 영육 간에 고통에 빠진 자에 대하여 실제적인 도움과 힘이 되라는 것입니다. 가까운 사이에 무심결에 무시하고 폄하 하는 말을 하기 쉽습니다. 상대에게 힘이 되는 말을 해야 합니다. 믿음의 말을 하며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가능하면 실제적으로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조심스럽게 사려깊은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교인들 중에는 물질적인 거래의 문제로 사람을 잃고 돈을 잃는 일들이 많습니다.

◉ 어떤 형제가 도움을 청하는 교우에게 돈을 뀌어주었더랍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그 사람 쓸거 다 쓰면서 자신의 빚은 갚지 않더라… 돈을 돌려 받는데 애 먹었다. 교우에 신뢰가 가지 않는다 한탄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는 사랑도 아니요 주님의 뜻에 따른 나눔도 아니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사랑에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을 사랑한 것처럼 성도들 서로가 연약한 가운데 있는 형제들을 사랑으로 위로하며 세우는데 노력해야 합니다.

셋째는 성령의 교제입니다. 성령의 교제는 교회의 필수 요건이며 힘의 원천입니다. 교회가 성령의 교제를 떠나 행하는 모든 인간적인 교제와 친목은 파당이 생기며 파당이 생기는 곳에는 분쟁이 생깁니다. 성도들은 성령에 의해서 교회의 일원이 된 사람들입니다. 교회는 성령의 인도와 도우심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만남은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만남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뜻을 떠난 친목은 인본적인 교제가 되고 교회에는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사도행전 13:2,3]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 사도바울이 속한 안디옥교회는 금식하며 기도할 때 들려주시는 성령의 지시에 순종하였던 것입니다.

○ 끝으로 긍휼과 자비입니다. 긍휼은 다른 사람의 사정과 형편을 마치 나의 일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정의와 율법이 아닌 긍휼과 자비입니다. 하나님의 자비가 아니었으면 우리는 이미 죽은 목숨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하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는 언제나 죄 많은 자, 어려움에 빠진 자를 바라보아 긍휼과 자비의 마음을 가지고 대하는데 힘을 써야 합니다.

○ 빌립보교회도 완전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교회 안에서의 분쟁은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는 데에도. 하나님의 일을 원만히 수행하는 데에도 큰 장애가 됩니다. 이는 사단의 기뻐하는 일입니다. 성도간에 일치를 이루는 데 힘써야 합니다. 교인들 간의 직업이 다르고 성별이 다르고 나이가 다르고 성장과 생활의 배경이 다릅니다. ○ 주님은 우리에게 주의 뜻을 따르는데 있어서 <한 마음>을 이루는 길을 알려 주셨습니다.

[로마서 12:16] “서로 마음을 같이하여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여 스스로 지혜있는 체 말라”

○ 스스로를 낮은데 처하고, 주장하는 자세를 내려놓음으로 교회는 한 마음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다툼은 다른 사람보다 나 자신을 먼저 내세우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들어줄 줄 알고 이웃의 처지도 생각해 줄 줄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 이란 일차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을 의미합니다. 물론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에 겸손의 마음 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의 능력도 있고, 지식도 있고, 인내와 믿음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우리의 신앙의 본으로 삼아야 할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첫째로 겸손한 마음을 말합니다. ○ 우리가 주의 제자가 되고, 주님의 마음을 배우는데 있어 첫걸음이 겸손입니다.

[마태복음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빌립보서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 그 분은 속성과 능력과 영광에 있어서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란 증거는 성경에 너무도 많습니다. 우선 그리스도께서 친히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증거하셨습니다

[요 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요한복음 12:45]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 주 예수님은 하나님만이 하시는 중풍 병자의 죄를 사해 주셨으며, 죽은 지 나흘 된 나사로를 살려내셨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셨으며, 폭풍이 치는 바다를 잔잔케 하시어 천지만물을 다스리는 분이시며 창조주이심을 보이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모든 능력의 하나도 자신을 위하여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병자를 고치시고 나를 따르라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이 땅의 물질이나 영광이나 야망도 갖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무덤도 빌리셨습니다. 실로 우리 주님께서는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인간으로 나셔서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어 우리의 형제와 친구와 이웃이 되어주셨습니다. 우리 인생들의 빛과 소망이 되어주셨습니다.

[빌립보서 2: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 주님은 자신을 비우시고 인간의 육체를 입으신 분이십니다.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이 말은 예수님은 자신의 사욕과 안일을 취한다거나 어떤 스스로의 목적과 계획을 갖고 행하지 않으셨음을 말합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의 마지막 단계였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예수님의 자신의 결정을 따른 것이 아닌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뜻만을 행하신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마지막에 십자가의 수난의 잔을 받으신 것이며, 희생 제물로 자신을 드리신 것입니다.

[빌립보서 2:9-11]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 예수 그리스도의 높아짐의 극치를 말합니다. 이보다 더 높아질 수는 없습니다. 높아짐의 비결은 놀랍게도 낮아지는 데 있습니다. ○ 사람들은 대개 높아지기 위해 자기를 높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과시하고, 없어도 있는 체하고, 몰라도 아는 체하며, 약해도 강한 체합니다. 또 섬기기보다는 섬김을 받으려 하고, 누구의 지시도 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 한경직 목사님이 숭실대학을 졸업한 후 윤치호선생의 재정지원(미화 100불)으로 미국유학을 떠났습니다. 그는 캔서스주 엠포리아대학에서 신학에 앞서 철학, 심리학 등의 인문학을 공부하였고, 그 후에 프린스턴신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하였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한 그는 예일대학에서 교회사 전공으로 신학박사과정을 준비하던 중 자신이 폐결핵에 걸린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폐병은 치료약도 없고 거의 죽는 병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공기 좋은 곳에 가서 요양하는 방법 밖에 없었지요. 다행히 미국결핵협회 회장이자 의사인 피터슨박사의 소개로 뉴멕시코주 장로교요양원에 입원하였고, 거기서 하나의 폐만 가지고 2년 동안 머무르며 기도와 묵상, 독서를 하며 지내는데, 기도 중에 공부 많이 하여 교수가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한 것을 뉘우치고, 하나님이 살려주시면 한국에 돌아가 단 3년 만이라도 복음전파하다 죽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는 1933년 아직 일제치하에 의주로 돌아와 목회를 시작하여 많은 교회를 세웠고 38선으로 분단된 이후에는 월남하여 가는 곳마다 또 많은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의 한국교회가 있게 된 것입니다.

[마태복음 5:14,15]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 하나님은 우리 등불을 등경 위에 높이 매달아 두기를 원하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모든 사람에게 빛을 비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대한민국을 높이시고 나를 높이시는 것은 나를 쓰시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의 마음을 비워 드린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비울 때 비로소 쓰임을 받는 것입니다. 나의 즐거움 나의 꿈 나의 생각이 강하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쓰시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주 안에서 그리스도처럼 자기를 비운 사람, 자신을 낮추는 사람을 들어 쓰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 앞에 그의 뜻을 구하고 겸비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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